영화감독 문신구 스크린 속 에로스를 만나다 21
당신의 전부를 <목구멍 깊숙이> 여자도 오르가즘·절정 느낄 권리 있다
2009-08-18 기자
사람은 몹시 슬프고 고통스러울 때에도 눈물이 나지만 반대로 몹시 기쁘고 좋을 때에도 눈물이 난다. 사상에 있어서 극좌나 극우가 동일한 얼굴을 하듯, 인간의 감정 또한 그 임계치수를 넘으면 본색(本色)을 잃게 마련이다. 혼 줄을 놓았다거나, 넋을 잃었다든지, 결국 미쳐버렸다는 표현들이 그 예일 것이다. 섹스의 오르가즘 즉, 쾌감의 꼭짓점인 기쁨의 형태도 고통의 모양을 하고 있다. 오르가즘이 극에 달할수록 더 괴로워하고, 쾌감이 더 할수록 더 큰 고통의 비명소리를 질러댄다. 사지를 부르르 떨면서도 더 강렬한 고통을 원하고, 금방이라도 숨이 끊어질 것 같은데도 “좀 더!”를 외치며 죽여주기를 원한다.
인간의 섹스행위는 종족번식의 목적이 우선이라 하지만, 대부분은 오르가즘의 희열을 추구하는 행복 수단으로 행해진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 행복한 오르가즘의 희열을 맛보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애를 쓴다.
“행복한 생활을 즐기시길!” 이 말은 애로영화를 세상에 있게 한 <목구멍 깊숙이(DEEP THROAT)>의 엔딩 장면에 나오는 감독이 관객에게 전하는 말이다. 성생활 잘하는 것이 행복이니 즐기고 살라는 말이다. 포르노는 금기이자 불법인 당시에 처음으로 스토리가 있는 포르노로, 단순히 성행위만 보여주던 저급한 포르노에서 제대로 줄거리가 있는 현대 애로 영화의 선구로 자리매김하며 숱한 화제와 기록을 남겼던 영화다.
이 영화의 스토리는 단순하다. ‘클리토리스(clitoris)’가 목구멍 안에 있는 여자를 그린 이야기다. 이 황당한 설정의 영화는 1972년 센프란시스코에서 처음 개봉 당시 벌어들인 돈은 고작 일만 달러 정도. 그나마 압력을 받아 곧바로 간판을 내려야 했다. 하지만 뉴욕에서는 무려 일년 동안 상영되었고 많은 여성들과 유명인사들이 관람을 하는 이변을 낳았으며, 영화가 상영될 당시 많은 연인들 사이에서는 ‘오럴섹스’가 대유행을 했다고 한다.
이 영화는 기존의 성애 영화와는 다르게 최초로 영화에 펠라치오(Fellatio) 장면을 보여줘 화제에 올랐다. 당시만 해도 정상체위를 벗어나는 섹스행위 자체가 죄악시되던 터라 구강성교를 영화에 표현하는 것은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영화는 또 최초로 여성의 엑시터시(ecstasy)를 그렸으며, 일반적으로 여성은 남자와 달리 오르가즘을 느낄 수 없다는 편견을 깼다. 그리고 여성은 질 보다 클리토리스를 자극함으로 인해 더 큰 성적만족감을 얻는다는 주장을 했다.
섹스천국을 사는 지금의 시점으로 본다면 아주 평범하고 지극히 건전하다 할 정도의 영화다. 하지만 여자의 몸에 클리토리스가 있는지 조차도 모르던 시기에, 이렇게 쇼킹하리만치 자극적인 영상과 함께 유머와 위트가 넘치는 영화는 개봉을 하자마자 엄청난 인기와 입소문을 타게 됐다. 은밀히 숨어서 보는 불법 영상이 아닌 당당히 극장에서 볼 수 있는 최초의 포르노 영화로 많은 언론과 평단, 무엇보다 여성운동가들이 앞 다투어 진정한 여성영화라는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극장 앞에는 여성 관객들이 장사진을 이루었으며 ‘엑스터시를 보장하라!’, ‘클리토리스를 인정해라!’ 여자도 오르가즘의 절정을 느낄 수 있으니, 여자도 질만이 아닌 음핵(클리토리스)인 예민하고 우수한 성감대가 엄연히 존재하고 있으니, 이를 인정하고 누릴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라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사회의 문화적 충돌로 적잖은 충격현상이 일어났고 기존세력의 저항 또한 만만치 않았다. 극장 앞엔 페미니스트들이 데모를 하고, 보수파 닉슨정부는 영화 관계자를 사회적 악영향을 미치는 ‘마귀새끼들’로 규정하고 전원 재판에 소환하여 주연배우를 파렴치 행위를 한 자로 구속하게 된다. 여론이 거세지자 상황은 반전됐다. 영화에 대한 관심은 더욱 커져 관객들이 극장으로 몰리는 기현상마저 벌어졌다.
예부터 여성의 성감대인 클리토리스는 죄악의 대상이었다. 금기이자 제거 대상으로 어린아이 때부터 잘리거나 불로 태우고 정조대를 채웠다. 여성의 엑스터시나 성감대(음핵)를 불결하게 생각했고, “클리토리스는 흥분을 시키는 원천임으로 제거의 대상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성의학자 이브 페룰(yves ferroul)은 ‘의사와 섹슈얼리티’란 책에서 여성의 음핵을 절제하는 수술이 18세기부터 시작 되었다고 한다. 사상가 프로이트의 연인이자 임상실험의 대상이기도 했던 마리 보나파르트는 음핵과 질의 합치를 위해 평생을 거쳐 여러 차례 음부를 잘라내는 수술을 시도 했지만 결국 실패한 삶을 살다 갔다.
영화 속 여자주인공(린다 러블레스)은 불감증으로 고민하던 중 병원을 찾아가지만, 의사는 성감대인 클리토리스(음핵)가 목구멍 안에 있어 오르가즘을 느낄 수 없다는 뜻밖의 이야기를 듣게 되고, 그때부터 시작되는 그녀의 펠라치오 탐험은 결국 진정한 오르가즘을 찾는데 성공한다. 여성의 성감은 음핵과 관계가 깊다. 여성 생식기 중에 가장 민감한 성감대이지만 찾기는 그리 쉽지가 않다. 다리를 벌리면 가장 먼저 볼 수 있는 게 소음순으로 꽃잎이나 닭 벼슬처럼 보이고, 음핵은 그 만나는 안쪽 위 질 입구에 위치하며 크기는 쌀알이나 크게는 완두콩만하다. 또 이 부위는 남성의 성기 귀두에 해당하며, 신경과 혈관이 발달되어 있어 자극을 받으면 부풀어지는 발기조직이다.
‘막장 유머’식의 억지 같은 설정을 황당하게만 볼 것은 아니다. 해부학적인 직설로 볼 것이 아니라 은유의 메타포로 받아들여야 할 필요가 있다. 섹스는 질로만 이루어지는 게 아니다. 오르가즘에 이르게 하는 예민한 성감대가 꼭 그곳에만 있어야 하는 것도 아니다. 또 나의 최고의 성감대가 반드시 클리토리스만이 아닐 수도 있고, 내가 절정을 느낄 수 있는 최상의 체위는 남과 다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더 중요한 건 여자도 엑스터시의 환타지를 누릴 수 있는 자유와 권리가 있으니, 정욕 억제를 위해 클리토리스를 자르고 정조대를 차야할 죄의 굴레를 짊어질 이유가 전혀 없다는 거다.
훗날 다큐멘터리 <인사이드 딥 스로트>에서 감독 다미아노는 <목구멍 깊숙이>는 성(性)해방의 영화라고 했고, 모든 관객들은 영화의 마지막 자막 ‘목구멍 깊숙이 당신의 전부를!’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최근 ‘섹스 매니아’라 자칭하는 잘 생긴 한 후배는 ‘죽이는 아이디어’로, 오른손 가운데 손가락 끝에다 성감대를 개발하고 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