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진룡-문형표 고교 동창생의 엇갈린 운명
‘소신의 아이콘’과 ‘부역자’
[일요서울 | 오두환 기자]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에는 직간접적으로 연루된 많은 가해자와 피해자가 있다. 최순실 씨, 장시호 씨, 김종 씨 등이 가해자라면 피해자는 이들의 앞길에 걸림돌이 돼 자리에서 쫓겨났던 사람들이다. 많은 사람들이 사건에 연루되다 보니 얄궂은 운명을 맞은 이들도 있다. 바로 유진룡 전 문화체육부 장관과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이다. 이들은 서울고등학교 동창생으로 박근혜 정부에서 장관에 올랐다. 친구가 나란히 장관에 올랐으니 축하할 만한 일이지만 이들의 운명은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이 터지며 극명하게 엇갈리고 말았다.
서남수, 방하남, 서승환 전 장관도 서울고 동문
문형표,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시켜 국민연금공단 손실
박근혜 정부에서는 이례적으로 서울고등학교 출신의 고위관료가 많이 등장했다. 유진룡 전 문체부 장관과 문형표 전 복지부 장관 외에도 서남수 전 교육부 장관, 방하남 전 고용부 장관, 서승환 전 국토부 장관도 서울고 출신이다. 이중 서남수 전 장관을 제외한 나머지 장관들은 모두 27회 동기 동창이다. 같은 해 졸업한 친구들 4명이 장관이 됐으니 가히 명문이라고 부를 만하다.
서울고 출신의 고위관료는 이들만이 아니다. 현재 재외동포재단 이사장을 맡고 있는 주철기 전 청와대 외교안보수석, 노대래 전 공정거래위원장, 최수현 전 금융감독원장도 서울고 출신이다. 주 전 외교안보수석은 17회 졸업생으로 최고참이다.
이 밖에 국방부 장관을 거쳐 국가안보실에 입성한 김관진 국가안보실장, 국무총리 후보자였던 문창극 후보자도 서울고 출신이다.
우리나라에서 명문고 하면 첫째로 꼽히는 학교로는 경기고다. 박근혜 정부 인사로는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고 있는 황교안 국무총리, 윤병세 외교부 장관, 현오석 전 경제부총리, 강병규 전 안정행정부 장관, 이주영 전 해양수산부 장관 등이 있다.
하지만 서울고 출신의 약진으로 경기고 1강 체제가 2강 체제로 바뀌어버렸다. 그런 가운데 친한 친구로 알려졌던 유진룡 전 장관과 문형표 전 장관의 퇴임 이후 행보가 엇갈려 주목을 받고 있다.
유진룡 전 장관
블랙리스트 반대해 면직
유진룡 전 문체부 장관은 2013년 3월 취임했다. 당시 그는 “새 정부 문화부 장관으로 다시 공직을 맡게 돼 기쁨보다는 무거운 책임감을 먼저 느끼게 된다”며 “문화 행정의 중심은 문화가 가진 본연의 힘과 가치를 활용해서 국민의 삶의 질을 개선하고 행복 수준을 높이는 데 둬야 한다”고 취임 소감을 밝혔었다.
유 전 장관은 1979년 문화관광부 전신인 문화공보부 행정사무관으로 공직 생활을 시작했다. 문화부 국제교류과장, 문화정책과장, 공보관, 문화산업국장, 정책홍보관리실장, 한국예술종합학교 사무국장, 국립국어연구원 어문자료연구부장 등 주요 보직을 거치며 추진력과 협상·조정 능력을 갖췄다는 평가를 받았다. 2006년에는 문화관광부 차관을 지냈었다.
박근혜 정부 시작과 함께 장관을 맡았던 만큼 유 전 장관은 현장 소통을 강조하며 의욕적으로 정책을 펼쳤다. 하지만 유 전 장관은 1년 4개월 만안 2014년 7월 17일 면직을 당했다. 당시 특별한 사유가 알려지지 않아서 많은 사람들이 의구심을 가졌었다.
그런데 최근 최순실 국정논란 사건이 불거지면서 당시 유 전 장관의 면직 과정이 알려졌다. 당시 유 전 장관은 면직 일주일 전인 7월 10일 박근혜 대통령과 면담을 가졌다. 이 자리에서 유 전 장관은 “국가가 위기에 처할 때마다 반대하는 사람들을 계속 쳐내면 나중에는 한 줌도 안 되는 같은 편 갖고 어떻게 일을 하시겠나”라고 항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화예술인 블랙리스트와 관련된 발언이었다. 유 전 장관은 최근 청문회와 언론 인터뷰 등에서 재직 시 블랙리스트를 보고 박 대통령에게 항의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일주일 뒤인 17일 유 전 장관은 면직을 당하고 말았다.
이에 대해 박 대통령은 최근 있었던 신년 기자간담회에서 유 전 장관에게 블랙리스트와 관련해 항의를 받은 적이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더불어민주당 도종환 의원이 공개한 공식 일정표에 따르면 2014년 7월 10일 면담사실이 기록돼 있었다.
유 전 장관은 박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서도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격이다. 내 공식일정표에 기록이 남아 있다”고 말했다. 그는 최순실 국정농단사건 진실을 밝히기 위한 청문회에서 문화계 블랙리스트의 존재와 함께 정유라 관련 노태강 문화부 국장의 인사 문제를 폭로했다. 박근혜 정부에 의해 장관에 올랐다가 내처진 유 전 장관은 결국 칼이 돼 돌아왔다.
문형표 전 장관
외압 행사하다 구속
문형표 전 복지부 장관은 유 전 장관과 달리 박근혜 정부에서 꽃길만 걸었다. 비록 ‘박영수 특검 구속 1호’라는 꼬리표를 달게 됐지만 승승장구했던 게 사실이다. 문 전 장관은 2015년 8월 복지부 장관을 마치고 그해 12월부터 구속 직전까지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을 맡았다.
하지만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국민연금공단이 찬성표를 던지도록 외압을 행사했다는 혐의로 2016년의 마지막 날인 12월 31일 구속됐다.
문 전 장관은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혐의 외에 국회에서의 증언·감정 등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도 함께 받았다. 최순실 국정농단 의혹과 관해 열린 국회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청문회에서 문 전 장관은 국민연금 측에 합병 찬성을 지시했다는 의혹을 부인하는 취지의 진술을 했는데 국회는 이 말이 위증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실제 문 전 장관은 특검 조사에서 찬성 결정을 사실상 지시했고, 청와대 측과 논의해 사실상 지시를 받았다는 취지의 진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 전 장관을 조사했던 특검팀에 따르면 복지부 실·국장급 간부 인사들은 특검 조사에서 ‘문형표 전 장관이 합병 찬성 결정을 끌어내는 데 소극적인 간부에게 퇴진을 요구했다’는 취지의 진술도 나왔다.
승승장구했던 그가 결국은 구속되면서 화려한 공직생활을 마감했다. 유 전 장관과 문 전 장관은 고교 졸업 후에도 식사를 할 만큼 좋은 관계를 유지해 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한 명은 소신의 아이콘으로 또 다른 한 명은 국정농단의 부역자로 엇갈린 길을 가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