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감독 문신구 스크린 속 에로스 만나다 [18]

잘못된 선택 <데미지> 시아버지와 며느리, 금단의 사랑

2009-07-28      기자

인간은 일평생을 사는 동안 무수한 선택을 하고 산다. 매사 매순간을 선택할 수 밖에 없고, 그 순간의 선택이 잘못됨으로 인해 일을 그르치기도 하고, 때로는 엄청난 행운을 얻는 선택을 하기도 한다. 모든 선택의 처음 시작은 같은 선상에 있지만 그 끝은 전혀 다르다.

인류 최초의 잘못된 선택은 원죄인 아담과 이브의 ‘금단의 열매’ 사건이다. 아주 작고 사소한 열매 하나의 선택으로 낙원인 에덴동산을 영원히 추방당하고 고난의 삶을 살아야 하는 결과를 초래한 것이다. ‘이것쯤이야’ 하는 생각에 불과 ‘열매 하나’의 시작이다.

문제적 감독 루이 말 감독의 1992년 작 <데미지(Damag)>는 우리에게 여러모로 많은 교훈을 남긴 영화다. 내용인즉 장래의 시아버지와 며느리가 될 아들의 연인이 사랑에 빠져 불륜의 관계를 맺고, 불륜의 현장을 목격한 아들이자 약혼자가 아파트 난간에 떨어져 죽게 되고, 아버지는 홀로 세상을 등지고 방랑의 삶을 산다는 이야기다.

영화는 선정적이며 자극적인 소재를 통해 사랑이란 감정의 속성을 묘사한다. 사랑이라는 그 제어 할 수 없는 초월적 감정 앞에 인간은 때로 도덕도 인륜도 저버리곤 한다. 스스로 불꽃 속으로 몸을 던지는 불나방 같이 무모하게 자신을 불구덩이 속으로 내던지게 하는 악마의 유혹 같은 것이다.

“마틴 아버님이시죠?”

부와 명예를 지닌, 그리고 화목한 한 가정의 가장인 중년 정치인 스테판 플레밍(제레미 아이언스)앞에 불쑥 나타난 아들 마틴(루퍼트 그레이브스)의 연인 안나 버튼(줄리엣 비노쉬)이 처음 던진 말이다. 예고 없이 나타난 젊은 안나를 처음 본 순간부터 스테판은 훗날 그의 독백처럼 ‘알 수 없는 이유’로 사랑하게 되고,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는’ 욕망의 길을 선택하게 된다. 안나로 향한 스테판의 사랑의 집념 앞에서는 더 이상 어떤 중요한 것도 이유도 없다.

스테판은 모든 걸 완벽하게 갖춘 삶을 살아 온 모자람 없는 가진자로, 사회의 존경받는 지성인이자 유능한 중년 정치가다. 그런 그가 안나를 만나는 순간부터 완전히 뒤바뀐다. 오로지 그에겐 안나밖에 없다. 명예도, 체면도, 마누라도, 자식도, 그 어떤 것도 그의 안중에 없다. 마치 자석에 이끌리듯 오직 하나 안나만을 쫓고, 시위를 떠난 화살마냥 그의 거침없는 행동에는 어떤 선택의 여지도 없다.

며느리라는 말은 일고의 값어치도 없는 수식어에 불과하고, 그녀의 남편 될 아들은 단지 질투의 대상일 뿐이고, 평생을 살아 온 마누라는 중요하지 않는 장애물에 불과하다. 더 이상 인격도 수치도 상관없다. 파멸인줄 알면서도 개의치 않는다. 주체할 수 없는 감정에 안나를 가지는 장소 또한 마루바닥, 식탁, 공원, 골목 할 것 없이 닥치는 대로 격식 따위는 없다. 또 아들의 밀회를 훔쳐보고 아들의 품속에 있는 여자를 불러내서 아비 자신이 품는, 그에겐 이제 어떤 이목이나 위험의 두려움도 없다. 입고 있는 옷을 다 벗을 필요도, 씻을 필요도, 전희도 필요 없는, 너무도 간절한 그들의 사랑행위는 광란 그 자체다. 바라보는 것이 전희고 끌어안는 것이 오르가즘이다.

그런 스테판의 모습을 보노라면 자칫 패륜의 저급한 애로영화로 착각할 수 있다. 하지만 루이 말 감독은 치밀하고 밀도 있는 묘사로 원작을 능가하는 결코 가볍지 않는 영화로 만들어 놓았다.

안나를 보자. 영화는 아들의 연인을 사랑하는 아버지 스테판의 패륜드라마 같지만, 스테판이 자신의 몹쓸 사랑에 빠져 아들을 죽게 하고 가정을 파괴하는 것 같지만, 그를 그렇게 만들고 그렇게 되게 만든 건 스테판이 아니라 안나다. 안나의 선택이다. 그녀는 처음 선택을 할 때부터 이미 시작도 결말도 알고 있었고, 그걸 알면서도 위험한 선택을 한 건 안나다. 칵테일 바에서 처음으로 스테판에 접근 한 것도, 스테판을 집으로 끌어 들여 그와 관계를 맺는 것도, 아버지와의 불륜 현장을 목격하고 아들인 약혼자를 죽게 했던 아파트의 열쇠를 건네준 것도 안나다. 그녀는 아들과 아버지를 함께 앞에 두고도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아버지와 아들을 번갈아 품으면서도 눈 한번 깜박이지 않는다. 약혼자 앞에서 시아버지와 불륜을 저지르다 그와 눈이 마주쳤을 때에도 그녀의 표정은 변하지 않는다. 미안함도 죄의식도 없다.

“상처 받은 사람은 위험해, 살아남는 법을 알고 있거든.”

안나의 마성은 오래전 동생을 사랑한 오빠의 죽음으로부터 잉태되어 왔고, 그 아물지 않는 치명적인 상처는 안나 가운데 잠복하고 전이되어 언제나 입을 벌려 ‘데미지 인자’를 쫓는다.

사랑하는 동생 안나가 남자가 생기자 실연한 오빠는 자살을 했고, 오빠의 자살로 인한 엄청난 충격적인 상황에도 안나는 남자친구인 피터에게 달려가 ‘빨리 날 가져라.’고 한다. 마성의 인자를 가진 안나의 선택은 분명 남달랐다.

스테판이 마침내 모든 것을 버리고 청혼을 하지만 그녀의 대답은 “이 관계를 발전시키지도, 끊지도, 집착하지도 말라.”고 한다. 선택은 자신의 몫이라는 말이다. 그렇게 선택할 권리조차 없었던 아버지가 죽은 아들의 시신을 부둥켜안고 절규 할 때, 그녀는 그들 옆을 유유히 스쳐지나간다.

우리는 가끔 잘못된 선택을 할 때가 있고, 그런 실수 때문에 후회하고 자책할 때가 있다. 주변에 시시각각으로 일어나는 무수한 징후나 증상들이 우리를 잘못된 선택으로 유도하고 우리로 하여금 실수를 하게 한다. 징후나 증상은 본질이 아니다.

모든 걸 잃은 스테판은 훗날 공항에서 남자(피터)와 함께 있는 임신한 안나를 보게 되는데, 그때 비로소 ‘어느 여자와 다르지 않는 안나’를 보게 된다.

이제 세상마저 등지고 지내는 스테판은 쓸쓸한 골방에서 한줄기 햇살을 등 맞으며 속절없이 안나의 사진만을 바라본다.

“인생은 이해 할 수 있는 것도, 알 수 있는 것도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