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스영화감독 문신구 스크린 속 에로스만나다-[9]

動한 罪, 動하게 한 罪

2009-05-26      기자

“내 육체를 들뜨게 했으면 가라 앉혀줘야지, 이제 와서 뺑소니치기냐? 네가 내 청춘을 희롱하게 됐어?” 돌아가신 고 이만희 감독의 대표작 ‘만추’를 1975년도에 고 김기영 감독이 리메이크한 ‘육체의 약속’에서 효순(김지미)의 첫 번째 남자가 여관에 가지 않겠다는 효순에게 분개하며 하는 말이다. 한 마디로 내 마음을 동하게 한 건 너고, 그러니 그 책임도 너에 있다는 것이며 책임지지 않는 건 나를 희롱하는 약속위반이란 논리다. 최근 개봉한 보성 촌노의 여대생 연쇄살인사건을 모티브로 한 김성홍 감독의 ‘실종’에서도 나타나듯 나이와 관계없이 남성의 경우 성적욕망과 섹스의 마초성은 원초적 본능으로 타고났다.

비틀린 욕망이 불러 온 한 중산층 가정의 파국을 다룬 1960년 작 ‘하녀’는 김기영 감독의 대표작이다. ‘금촌 살인사건’이라 불리던 실화를 바탕으로 한 ‘하녀’는 그 후 ‘화녀’, ‘충녀’등 여러 편의 연작을 만들만큼 큰 흥행과 이슈를 남겼다. 중산층 가정의 비교적 여유로운 생활을 하던 중년 작곡가 동식(김진규)은 새로 들어 온 시골 출신 하녀(이은심)에게서 아내(주증녀)와는 또 다른 여자를 발견하게 되고, 성적 동요를 느끼게 된다. 그리고 위태로운 일탈의 섹스행각을 통해 무의식 속 욕망의 본능을 쫓는다. 의대 출신 감독의 메스는 여지없이 부끄러운 우리 속내를 적나라하게 갈라놓는다.

인간의 성적 본능은 욕망의 화신과 같지만 인습과 관습에 눈치 보며 참고 억제할 뿐이다. 40년 전 가수 윤복희의 미니스커트 사건은 당시 미풍양속을 중시하던 우리 사회에 큰 충격이었다. 1960년 메리퀸트가 만들어 지금은 전 세계 여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지만, 한 땐 길거리에서 경찰이 자를 들고 시집도 안 간 우리네 처녀들 허벅지 길이를 재고 다녔다. 그런 갖은 수모도 이겨내며 고수해 온 여자들의 애용품인 그 미니스커트가 올해에는 더 짧아진단다. 경제 불황의 위기의식에서 오는 여자들의 생존 본능 현상이다. 여자는 무조건 예쁘고 섹시해야 한다. 또 수컷인 남자들 눈에 띠게 드러내 자랑해야 한다. 조물주가 그렇게 만들어 놓았다. 신의 섭리다. 그래야 짝 짓고, 사랑하고, 애 낳고, 이 땅에 인류가 멸종하지 않고 버틸 수 있다.

헤어날 수 없는 욕망의 소용돌이 속에서 가정도 인격도 다 무너져버린 동식을, 김기영 감독은 마지막에 하녀와 함께 그를 죽임으로 세상과 협상 한다. 시도 때도 없이 불쑥불쑥 머리를 내미는 속내에 우리는 늘 협상하며 살 수밖에 없다. 하지만 아직은 단 1센티라도 남아 있는 스커트의 길이에 자부심을 가지고, 아가씨의 아슬아슬한 스커트를 쫓아 심하게 돌아가는 눈동자를 적당히 색안경으로 커버해라. 부끄러운 일도, 잘 못된 일도 아니다. 손가락질하는 위선의 속내는 더 구리다.

태초, 에덴동산에 달랑 아담과 이브를 만들어 놓고 하나님이 얼마나 숙고를 했겠는가? 아무도 없는 동산에 성인 남녀를 옷까지 입히지 않고 함께 있게 한 그 깊은 의미를 알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