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아니어도 섹스는 가능하다”
영화감독 문신구 스크린 속 에로스 만나다
2009-05-20 기자
늦은 시간, 집으로 돌아오는 길, 그것도 회식자리에서 마신 소주로 제법 취기가 오른 상태. 벌집처럼 조밀한 아파트를 쳐다보며, 사내라면 이런 상상쯤은 해봤음직 하다. “불이 꺼져 있거나, 촉수 낮은 등이 켜진 저 집의 안방에서는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그리고 “지금 이 순간 하고 있는 집은 이 아파트촌에서 몇 집이나 될까?”
그러다가 문득 자신도 하고 싶다는 충동을 느끼게 된다. 기혼자라면 아내에게 상황을 설명하여 동의를 얻어낸다면 별 문제가 없겠지만, 노총각이거나 독신의 경우에는 절박한 심정에 이른다. 특히 옆집이 신혼부부가 사는 집이라면 완벽한 방음장치를 한 고도의 건축기술을 원망할지도 모른다. ‘하고 싶다’는 욕구는 ‘졸리다’, 혹은 ‘배고프다’는 욕구와 대별된다. 그렇게 간단하게 해소할 수 있는 욕구가 아니기 때문이다.
1994년 재일동포 기타노 타케시가 만든 영화 ‘모두 하고 있습니까?’는 무능력한 노총각이 비디오를 보다가 문득 카섹스를 하고 싶다는 생각에서 시작되어 황당한 모험을 벌이는 내용의 풍자 코미디 영화다. 카섹스를 상상하고 차를 구입하기 위해 이리저리 애를 쓰다가 살아있는 할아버지의 장기를 팔아 오픈카도 구입하기도 한다. 그러던 중 하늘 위의 비행기를 본 그는 비행기 일등석에서의 섹스를 상상하게 된다. 일등석을 타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돈이라 생각한 그는 은행을 털기 위해 온갖 방법을 동원하고 사채업자의 가방을 노리기도 한다. 모든 여자가 선호하는 배우가 되기 위해 엑스트라가 되기도 하고 여자목욕탕을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투명인간이 되기 위해 과학자를 만난다.
영화의 주인공인 노총각이 ‘하고 싶다’는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서 벌이는 모험은 거의 필사적이다. 멀쩡하게 살아계신 할아버지의 장기를 팔아 돈을 마련할 정도의 집념이니 배가 고프거나 졸리는 욕구보다 ‘하고 싶은’ 욕구가 얼마나 치명적인지 짐작하고도 남는다. 장년에 접어들면 그것이 사회적인 틀과 도덕적 인식과 만나면서 절제되고 조절되지만 청년기의 더운 피를 가진 세대에게 그것은 가혹한 형벌이다.
요즘 젊은 세대들의 성은 우리 세대와 그것과 확연하게 다르다. 사랑이 아니어도 섹스가 가능하다는 쪽의 생각을 갖는 젊은이들이 늘었다. 심지어는 ‘하고 싶다’는 욕구를 해소하기 위해 원나잇 스탠드도 서슴지 않는다. 그런 젊은이들을 보고 기성세대들은 혀를 끌끌 찬다. 오산이다. 고작해야 미군부대에서 빠져나온 도색잡지를 돌려보던 것이 전부였던 세대들이,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범람하는 온갖 정보에 노출된 세대들의 성생활 패턴을 두고 비난할 수는 없다. 극단적으로 말해서 진정한 사랑이 뭔지를 가르쳐 주는 일만 하면 된다. 그리고 위험한 섹스란 무엇인지 분별력을 길러주는 역할만 하면 된다.
만약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이들이 있다면 그들에게 하나만 묻자. 만약 영화 속에서처럼 투명인간이 될 수 있다면 제일 먼저 어디를 가고 싶은가? 얼굴 붉히지 마라, 나는 다 안다.
문신구 그는 7~`80년대 영화배우로 활동했으며, 90년대 연극〈미란다〉를 연출했다. 당시〈미란다〉는 마광수 교수의〈즐거운 사라〉와 함께 외설시비가 붙어 법정에 섰다. 이후 그는〈콜렉터〉,〈로리타〉등 성과 사회적 관계를 담은 영화와 연극을 제작해 왔다. 현재 연예계 성상납사건을 담은〈성상납리스트〉와 재벌가의 숨겨진 사생활을 담은〈성〉을 영화화하는 작업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