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살이’ 인생, 일용직 근로자들…“희망? 이젠 그런 거 없어요”

고난의 겨울…“한파와 불황 속에서 하루하루 연명하기도 힘들어”

2016-12-30     장휘경 기자

[일요서울|장휘경 기자] 해마다 연말이 되면 새해가 곧 찾아온다는 설렘으로 가득 차기 마련이다. 하지만 사회로부터 소외당하고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불우한 서민들은 추운 겨울을 이겨내는 것만도 버거운 게 현실이다. 특히 ‘인력사무소’에서 하루하루 일감을 찾아 일하는 일용직 근로자들은 내일에 대한 희망이 상실된 지 오래다.

 

이번 겨울 들어 수은주가 가장 낮게 떨어진 지난해 12월 28일 새벽 5시 30분, 강서구의 한 인력사무소. 내복도 모자라 몇 겹의 옷을 껴입고 두터운 점퍼에 마스크, 목도리까지 두른 김주성 씨(가명, 53)가 사무소 안으로 발을 들이민다.

매서운 칼바람이 두터운 점퍼 속으로 파고드는 새벽임에도 사무소 안에는 벌써 열 명 남짓한 일용직 근로자들이 나와 있었다. 20대에서 60대까지 연령층도 다양했다. 외국인 하나와 두어 명의 여성 근로자도 보였다.

김 씨는 인력사무소장과 눈인사를 하곤 곧바로 비어 있는 구석자리에 앉았다.

지난해 지독한 불황 탓에 10년 동안 운영하던 식당을 처분하고 처음 인력사무소에 나왔던 김 씨. 일당 10만 원의 잡부이긴 했지만 운 좋게도 몇 달간은 고정적인 일자리를 얻을 수 있었다. 그런데 겨울이 되면서 일자리가 많이 줄었다. 특히 올 겨울에는 관급공사가 크게 줄었기 때문에 일자리 경쟁이 더욱 치열해졌다.

TV에선 내년 경기에 대한 보도가 나오지만 한결같이 어렵다는 전망뿐이다. 인력사무소에 비치된 커피를 타 마시며 김 씨는 실낱같은 기대를 걸고 기다린다.

이날 인력사무소에서 일을 얻은 이는 10여 명에 불과했다. 김 씨 뒤에도 열 명이 넘게 사무실에 나왔지만 7시가 넘어서면서 더는 일이 없자, 하나 둘씩 짐을 챙겨들고 사무실을 떠났다.

김 씨는 혹시나 하고 텅 빈 사무실을 지켰다. 하늘이 도왔을까? 오전 7시 30분, 사무실의 전화벨이 울렸다. 일당은 적지만 인근 식품공장 쓰레기를 치우는 허드렛일로 비교적 어렵지 않은 일감 하나가 들어온다. 소장의 말대로 진득이 기다린 효과가 났다.

“대체로 도착한 순서대로 일감을 배분하지만, 인부의 경력과 기술 여하에 따라 일과 일당이 달라져요.”

소장은 김 씨가 오늘은 그나마 재수가 좋은 것이라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겨울엔 일이 더 없어요. 열 명에 다섯은 공치는 날이 많아요. 일당이 적어도 무슨 일이든 잡으면 다행이지요. 오죽하면 일당 17~18만 원 받는 기술자가 잡부일이라도 하려고 발버둥을 치겠어요?”

살인적 수준의 노동 강도, 임금체불도 적지 않아

겨울이 되면서 일감이 크게 줄었다는 소장의 얼굴에도 그늘이 드리워져 있다. 일당 10~17만 원짜리 일자리를 소개하면 10%의 수수료를 받는 그로서도 최대한 일을 많이 나가야 수입이 늘기 때문.

다행히 일을 받은 김 씨는 인근 공장으로 가는 버스에 오른다. 오늘 일은 건설현장일이 아니어서 그나마 수월한 편. 각종 식품 오물들과 씨름하는 등 작업 여건이 좋은 것은 아니지만 육체적으로 힘든 건설현장보다는 낫다. 하지만 아침 8시부터 오후 6시까지 추위에 노출된 외부인 데다 불결한 환경에서의 작업은 20대 젊은이에게도 만만치 않은 일이다.

김 씨의 오늘 일당은 8만 5000원. 평균 주 3일 정도 일하는 김 씨의 월 소득은 130만 원 가량이다. 아내가 집 근처 식당일로 버는 160만 원으로 부부의 월수입은 300만 원 가까이 되지만 입에 풀칠하기 바쁘다.

김 씨는 식당을 운영하면서 진 빚이 6000만 원이 넘는다고 털어놓는다. 소득 가운데 월 40~50만 원을 빚 갚는 데 쓴다. 그 나머지로 월세 내고 세금 내면 아무리 아껴 써도 고등학교에 다니는 두 자녀의 학비와 생활비로는 빠듯하다. 적자인 경우가 대부분으로 다달이 빚은 늘어만 간다.

“저축이요? 꿈도 못 꿔요. 그냥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거지요. 요즘 아파트 시세가 10억~20억 한다지만 우리 같은 사람들에겐 먼 나라 얘깁니다. 희망이 없어요.”

그나마도 일당을 받으면 다행이다. 장기적인 경기불황으로 건설사들의 재정악화가 이어지면서 다단계 하도급자인 사용자들에게 근로자들의 일당을 떼이는 경우도 허다하기 때문. 특히 전문건설업자들에 의해 직접 고용되는 시스템이 아닌 인력사무소의 경우 시스템 상 임금체불이 만연해 있다.

발버둥 쳐도 나아지지 않는 인생, “언제까지?”

공장의 식당에서 간단한 점심을 마친 김 씨는 담배를 빼 물었다. 약 30분가량의 짧은 휴식이 달콤하다.

오전 8시 30분부터 시작한 일은 숨 돌릴 틈이 없다. 생산과정에서 각 라인마다 부산물로 생긴 쓰레기를 삼각수레에 담아 나르기를 반복했다. 오전 내내 같은 일을 반복하다보니 어깨가 쑤시고 허벅지도 뻐근했다.

김 씨는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나”하는 생각을 최근 들어 부쩍 자주 한단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팍팍한 삶은 나아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지만 그래도 버틸 때까지는 버텨보는 수밖에 없지 않느냐고 김 씨는 씁쓸하게 말한다.

오후의 작업도 오전과 별반 다르지 않다. 음식쓰레기 치우는 일이 끝난 후에는 냉동차에 실려 온 원료품을 라인 근처로 나르는 일이 이어졌다. 같은 일이라도 공장의 정규직원과 김 씨 같은 일용직 근로자에게 대하는 태도는 천지차이다.

“우리들은 그야말로 소모품이에요. 일을 하다 다쳐도 산재 처리는 ‘언감생심’이지요. 그러니 우리 몸은 스스로 알아서 지키며 일해야 해요. 몸 상하면 나만 손해입니다.”

오후 6시 정각에 일은 끝났다. 오늘 김 씨는 일당을 현장에서 직접 받았다. 수수료는 공장에서 계좌로 직접 인력사무소에 보내지만 다음날 일을 받기 위한 눈도장을 찍으러 김 씨는 피곤이 밀려드는 몸을 이끌고 인력사무소로 향했다.

“몸이 부서지도록 일하고 또 일해도 도대체 희망이 보이질 않네요. 요즘 최순실 게이트니 뭐니 해서 비선실세들이 천문학적인 돈을 챙겼다는 언론보도를 보면 화만 납니다. 도대체 이게 나라입니까?”

인력사무소를 나와 인근 식당에서 소주를 시켜 한 잔을 들이켠 김 씨는 조용히 항변한다. 그렇지만 갈수록 불황의 그늘이 깊어지는 일용직 근로현장의 현실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마침 이날 고용노동부가 ‘2016년 사업체 노동력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 조사에 따르면 300인 미만 사업장 근로자들의 월평균 임금은 297만2000원으로 300인 이상 대형 사업장 근로자의 월평균 임금인 462만6000원의 64%에 불과했다.

이 가운데 임시·일용직 근로자의 월평균 임금은 147만5000원으로 나타났다. 이는 상용직 근로자 월평균 임금인 348만9000원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금액이다. 한파와 불황 속 위태로운 일용직 근로자들의 안타까운 오늘의 현주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