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몰려오는 주택 물량, 부동산시장 인정계약 솔솔

“2억 원만 주고 얼마에 팔든 중개업자 마음대로”

2016-12-30     남동희 기자

빌라 신축·기존매물로 포화상태 인정작업하기 좋은 조건
중개업자 “대단지 들어서는 곳 업브리핑 예정지가 될 것” 

[일요서울 | 남동희 기자] 부동산업계에 따르면 2017 전국 아파트 입주물량은 38만 여 가구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2000년대 이후 역대 최대 물량이다.

빌라·다세대주택은 벌써부터 인기가 시들해 질 거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이 틈을 타 빌라시장에  업브리핑, 순가계약으로 불리는 ‘인정계약’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업브리핑, 순가계약은 업계 은어다. 일요서울은 서울시 다세대주택과 빌라가 밀집된 성북구 종암동 일대와 동대문구 답십리 일대를 취재했다.

인정계약이란 주택 매도자가 중개업자에게 주택 매도로 얻고자 하는 최소한의 금액만 받으면 매매 값에 상관없이 중개업자의 재량으로 매수자에게 판매하도록 하는 계약을 말한다. 또 거래가 성사되면 중개업자는 중개비도 따로 챙긴다.

이런 계약형태는 주택시장에서 매수자의 가진 정보가 부족하고 매도자가 급하게 주택을 매도하려 할 때 자주 발생한다. 인정계약은 정확히 법으로 규제하지는 않아 부동산 시장에 비일비재하다.

하지만 이 계약은 주로 중개인들에게 공인중개사법 시행규칙에서 규정한 중개보수율 상한선보다 많은 이익을 가져가게 돼 불법이 되고 소비자기망행위에 해당한다.

매도자 많고 정보 부족 시 발생

지난해 12월 25일 부동산사이트 닥터아파트에 따르면 2017년 전국에서 입주 예정을 앞두고 있는 아파트는 총 629곳으로 올해보다 32.6% 많은 38만2741가구에 달한다. 특히 입주 예정을 앞두고 있는 아파트들은 서울 및 수도권에 집중된 것으로 알려졌다.

빌라시장은 이런 쏟아지는 신축 아파트로 최근 매도자가 증가해 인정계약의 타깃이 되고 있다. 빌라는 그동안 주택 시장에 가격상승률과 환금성이 떨어져 투자가치가 떨어져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하지만 지난해 초부터 전세 값이 급등하며 전세난민들의 주거지로 빌라가 인기를 끌었다. 당시 서울 아파트 전세 값으로 내 집 마련이 가능한 주택은 빌라가 유일하기 때문이었다.

특히 주택구매력이 낮은 젊은 층에서 반기다 보니 빌라 신축 행위도 붐을 타기 시작했다. 지난해 이런 수요에 부응해 신축빌라들의 공급이 폭발적으로 증가했고 1.5룸, 2룸 등 소형빌라의 공급량은 크게 증가했다.

이에 신축빌라들과 기존 빌라 물량은 맞물려 현재 서울 지역 빌라는 포화상태다. 이런 빌라들이 최근 아파트 물량이 대거 투입된다는 소식을 듣고 매물로 많이 나오고 있다.

특히 서울 동대문구 답십리동, 성북구 종암동 일대에는 최근 빌라 매물이 늘었고 인정작업의 움직임도 있었다.

답십리 주민 A씨는 “이 주변 빌라 매물 광고가 지금은 최근에 다 떼어내서 별로 없지만 며칠 전에도 전봇대마다 잔뜩 붙어 있었다”고 말했다.

답십리 공인중개사 김 모씨는 “최근 이 일대는 빌라 매물이 많다. 내년에 주택물량이 쏟아진다는 소문을 듣고 내놓은 사람도 있겠지만 이 지역은 기존 빌라 매물들도 많은 편이다”고 말했다.

그는 인정계약에 대해선 “물론 그런 계약을 하는 사람도 있을 수도 있겠지만 그건 불법이다. 예전엔 아는 사람이고 급하다 하면 그렇게 팔아주고 하긴 했지만 지금은 안 한다”고 말했다. 

최근 답십리동 일대에 빌라를 매물로 내놓은 한 매도자는 인정계약을 맺은 상태였다. 이 매도자는 원하는 가격만 받아준다면 얼마에 팔아도 상관없으니 팔아만 달라고 중개업자에게 요청한 상태다.

그는 2년 전에도 같은 방식으로 다른 지역에 있는 곳을 급하게 판 경험이 있어 이것이 인정계약에 해당하며 불법인 것은 알지 못했다고 했다.

종암동에서 영업 중인 한 공인중개사는 “좋게 말해 아는 사람이고 급하다고 중개업자가 노력해서 팔아주는 거라지 중간에서 다 차익 가져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중개사는 “팔지 못할까 걱정하는 집주인들의 불안 심리를 부추겨 매물을 내놓기를 유도할 때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인정계약이 “요새도 다 암암리에 이뤄지고 있다”며 “특히 빌라는 인정작업을 하기 좋은 곳”이라 했다.

빌라에서 인정작업이 기승하는 원인 중 하나는 앞서 언급한 것처럼 ‘매수자의 정보부족’ 때문이다. 세대수가 많은 아파트에 비해 빌라는 세대 수가 적어 비교할 대상도 적고 기본적으로 정보가 부동산 중개업자에게 한정되는 경우가 많다.

종암동 일대 주택을 알아보고 있는 한 모씨는 “동생 학교 때문에 이쪽지역으로 옮기게 됐다”며 “함께 살 집을 구하다 보니 아파트는 너무 비싸고 빌라나 다세대주택을 알아보고 있다”고 했다.

그는 “요새는 인터넷에서도 정보가 많지만 빌라 같은 경우는 그 동네 부동산이 물량도 많고 정보도 많다 해 돌아다녀보는 중이다”고 말했다. 이어 한 씨는 “이렇다 보니 당연히 부동산 중개업자 말을 신뢰할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인정계약은 거래자들끼리의 내부거래라 잘 드러나지 않아 처벌이 어렵다는 게 관계당국의 입장이다. 서울시청 관계자에 따르면 서울시 25개 자치구에서 인정작업이 드러나 행정처분이 이뤄진 사례는 없다.

내부거래라 적발가능성 낮아

서울시청 관계자는 “매도자와 중개인의 내부거래라 알 길이 없다. 본인들의 필요와 이익에 부합하게끔 이뤄진 거래이기 때문이라서 한 쪽이 자발적으로 밝히지 않는 한 드러나기 어렵다”고 했다.

업계 관계자들은 인정계약은 올 하반기가 돼 주택물량이 실제로 급증하면 빌라뿐만 아니라 아파트에서도 기승을 부릴 것이라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