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 고발] ‘허점 투성이’ 한경희생활과학 정수기 대여 사업
관리 체계 엉망이지만 법으로 처벌 불가능
소비자보호원 “민사소송 밖에 해결책 없어”
[일요서울 | 오유진 기자] 스팀다리미·스팀청소기 등으로 창업 성공 대표주자로 자리매김한 한경희생활과학이 호기롭게 뛰어든 정수기 대여 사업의 부실함이 드러나고 있다. A/S(고객 서비스)가 제때 이뤄지지 않자 소비자들의 원성이 높아지고 있는 것. 소비자들은 A/S가 이뤄지지 않자 ‘환불’, ‘철거’ 등을 요구하고 있지만, 한경희생활과학 측이 법의 허점을 이용해 소비자들을 기만하고 있다는 견해다. 일요서울은 한경희생활과학을 둘러싼 소비자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봤다.
지난해 성탄절, 일요서울에 제보가 한 건 도착했다. 그는 가족과 즐겁게 보내야 하는 날이지만 한경희생활과학의 정수기로 인해 고통을 겪고 있다며 억울함을 토로했다.
내용을 살펴보면 제보자는 2014년 12월 9일 한경희생활과학 정수기를 대여해 설치했고, 4개월에 한 번씩 필터 관리를 받기로 했다. 다만, 맞벌이라서 평일 오후 6시 이후나 토요일에 관리를 해줄 것을 부탁했다. 그러나 시간을 조율해 서비스를 진행한다던 관리기사는 1년이 지나도 서비스를 이행하지 않았다. 위생이 중요한 정수기 사용 기간이 2년이나 지났지만 총 6회 진행돼야 할 필터관리가 1회밖에 이뤄지지 않았다. 1회 교체 받은 필터마저 소비자가 본사 측에 항의 전화를 직접 해 받은 것이었다. 반면 제보자는 정수기를 제대로 사용도 하지 못한 채 자동이체로 매달 1만9900원씩 내고 있다.
문제는 제보자가 관리업체의 불성실한 서비스를 이유로 본사 측에 정수기 철거를 요청하면서 생겼다. 한경희생활과학 측은 “전산상에 필터관리를 다 받은 걸로 돼 있다”며 철거 요구를 거부한 것이다.
고객관리카드에는 설치일과 1회 필터 교체를 받은 일자만 기재돼 있다. 이를 근거로 제보자는 사인을 받은 내용이 없다며 전산상의 내용을 정확하게 알려 달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한경희생활과학은 “중간에 업체가 바뀌어 이전 것은 확인이 안 된다”며 요구를 거절했다.
또 관리업체가 바뀐 이후라도 인수인계를 받아 정보가 이월되는 게 아니냐고 문의했지만 한경희생활과학 관계자는 “확인이 안 된다”고 성의 없는 답변만 내놨다.
한경희생활과학 측은 정수기 대여업체와 관리업체가 분리돼 있다. 정수기 관리는 하청업체에 하청을 줘 하청업체에서 관리를 해주고 돈을 받는 시스템이다. 제보자는 “(관리업체가) 관리했다고 거짓말을 해 관리비를 받은 상태인 것으로 추측된다”고 말했다.
제보자는 한경희생확과학 측이 전산상에는 관리를 다해준 것으로 표시돼 있어 “위약금을 내야 철거가 가능하다”고 최종 답했으며, 또 “맘대로 정수기를 건드리면 법적으로 책임을 묻겠다”, “소비자보호원에 고발하라” 등 으름장을 놨다고 주장했다.
실제 제보자는 해당 내용으로 소비자보호원에 철거를 요청했다. 이에 소비자보호원은 소비자분쟁해결기준에 의거해 ‘조건 없는 철거’를 업체 측에 전달했다. 하지만 한경희생활과학 측에서는 이 중재안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소비자보호원에 따르면 업체가 거부를 해도 강제 조치를 취할 수 없다.
상습적인 A/S 지체 문제
소비자보호원 관계자는 “의사가 합치되지 않을 경우 강제처분을 할 수 없다”며 “분쟁해결기준에 있다면 그렇게 진행되는 게 맞지만 사업체 측에서 따라주지 못한다고 하면 소비자분쟁해결기준은 법률이 아니기 때문에 따르지 않는다. 법으로 처벌하거나 그럴 수가 없다. 중재가 이뤄지지 않으면 민사소송을 진행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정한 정수기 등 임대업 소비자분쟁해결기준을 살펴보면 필터 교체 및 A/S 지연 시 지연한 기간만큼 대여 서비스 요금을 감액해야 하며 재발하는 경우(2회부터) 위약금 없이 계약해지가 가능하다. 또 고객 서비스가 이루어지지 않고 청구된 요금은 반납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한경희생활과학의 정수기 대여사업과 관련해 A/S 지연으로 인한 피해를 입은 소비자는 한두 명이 아니었다. 예를 들어 1월에 시행돼야 할 필터 관리 서비스가 3월이나 4월에 나와 2~3개월 계약금을 돌려주고 계약을 유지하게 했으며, 8월에 나와야 하는 필터 관리 서비스가 10월에 나와 1개월 계약금을 돌려주는 등 위생과 직결되는 정수기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다수의 소비자들은 한경희생활과학 측에 서비스 불이행으로 해약 요구를 했다. 그러나 한경희생활과학 측은 “위약금 내라”는 무책임한 답변만 남겨 소비자의 불만이 커진 것이다. 이에 누리꾼들은 “저랑 같은 상황이다”, “관리 체계가 엉망인 것 같다” 등의 반응을 보여 피해를 본 소비자는 더 나타날 것으로 보인다.
소비자 보호하는 제도 마련 시급
녹색소비자연대 관계자는 “법적인 강제력이 없어 사업자가 이런 식으로 나왔을 때 기존의 소비자분쟁해결기준이 무용지물인 것은 사실”이라며 “공정거래위원회가 소비자분쟁해결기준에 법적인 강제력을 주거나 사업체가 이를 어겼을 시 벌칙을 받는 등의 조항을 만들어 소비자 보호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관계자는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우리나라 법체계는 정부가 국민들을 위해 노력한다고 주장하지만 사업자 위주로 법률이 구성된다고 생각한다며 이런 부분이 개선이 돼야 실질적인 이용자 보호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녹색소비자연대 관계자는 “처음부터 계약서에 명시하거나, 구두로 이야기를 안 하면 위약금 없는 계약해지에 대해 법원이 일정 부분 소비자 잘못도 있다고 판단할 것으로 보인다”며 “소비자들은 계약서를 쓸 때 꼼꼼히 체크를 해야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는다”고 충고했다.
또 그는 “소비자단체를 통해 해결할 수 있는 방법도 있다”며 “이런 문제가 발생하면 소비자단체에서 사업체에 공문을 보내주고 분쟁 해결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전했다.
일요서울은 한경희생활과학 측에 해당 문제에 대한 입장을 듣기 위해 연락을 시도했지만 “연락 주겠다”는 말만 남긴 채 어떤 입장 표명도 내놓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