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감독 문신구 스크린 속 EROS 만나다

세브린느, 그녀의 이중생활

2009-04-15      기자

요조숙녀와 요부의 간극은 너무 멀어서 까마득해 보인다. 그 간극은 세상 남자들의 이중 잣대로 만들어진 것이다. 자신의 여자는 요조숙녀이기를 바라면서, 그 외의 다른 여자는 모두 요부이기를 바라는 성적 이기심이 여자들을 그렇게 만들어 놓았다.

그러나 남자들은 결정적인 것을 모른 채 살아간다. 한 여자의 내면에 두 가지의 극명한 보색이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사회적 구속력에 의해 여성들은 도덕적 분장을 한다. 사교모임에 나가서 교양과 품위를 유지하는 것은 그동안 받아왔던 교육의 힘이다.

남편과 연관되거나 아이들과 관계가 있는 사람들과 만나는 자리에서 그 자세는 더욱 철저하게 지켜진다.

하지만, 자신의 허와 실을 충분히 알고 이해해 주는 사람들과의 만남에서는 언제 그랬냐는 듯 그 경계를 허문다. 남성들도 그렇지만 여성들의 경우가 더 그렇다.

프랑스의 소설가 죠셉 케셀이 1929년에 발표한 장편소설 ‘대낮의 미녀’는 1967년 루이스 부뉴엘 감독에 의해 영화로 만들어졌다. 여주인공의 이름이 ‘세브린느’여서 우리나라에 상영되면서 ‘세브린느’로 소개되었다.

의사인 남편을 둔 세브린느는 자신의 남편을 사랑하지만, 가슴 속에서 끓어오르는 무언가에 늘 갈증을 느낀다. 정신이 원하는 것과 몸이 원하는 것이 갈등하고 충돌하는 것이다. 친구에 의해 창녀촌의 존재를 알게 된 세브린느는 낮에만 일한다는 조건으로 그곳에서 몸을 팔게 되고, 거기에서 비로소 진정한 성적 만족도를 맛본다.

자신을 내심 흠모했던 남편의 친구에 의해 발각이 되자 남편에게 알려질 것을 두려워 한다. 한 가지를 얻었을 때 주어지는 환희의 그늘이다.

이 영화에서는 여성들이 상상하는 중요한 형태의 성행위가 사실적으로 묘사된다. 곱고 부드러운 남편에게서 경험하지 못했던 질풍노도와 같이 거칠고 투박한 섹스, 사디즘과 마조히즘의 양극화된 섹스, 세련되지 못했지만 남성적 힘이 느껴지는 건달에 이끌리는 마음. 여성들이 상상하는 온갖 형태의 섹스와 사랑이 이 영화 속에 다 등장한다.

지금 이 순간, 나의 아내는 어떤 성적 판타지에 싸여 있을까? 길을 가다가 여성의 둔부나 종아리를 보면서 군침을 삼키는 나는 아내의 환상에 삿대질을 할 자격이 있는가? 아내의 본능은 외면한 채 아내를 제외한 다른 여자의 본능을 충족시켜 줄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는 나는, 나의 성적 판타지를 온전히 채울 수 있을까?

사랑과 섹스를 엄격하게 구분하는 이중구조에 치어 세상 여성들은 속앓이 하고 있다.

보들레르는 말했다. “잔학성과 향락은 동일한 감각이다”라고. 세상 모든 남성은 여성들의 성욕구를 억압함으로써 잔학하다. 사디스트들이다.

세상 모든 여성들은 억압당함으로써 교묘해진다. 심리적으로 보자면 여성들은 모두 피학적 성욕자들이다. 이 대립의 틀을 깬다면 세상은 문란해진다. 겉과 속이 겉도는 세상, 원래부터 그렇게 생겨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