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로 생수 취수장이 위험하다
가금류 살처분에 매장 돼지 사체까지 ‘안전’ 위협
[일요서울 ㅣ이범희 기자]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가 사상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21일 현재 2000만 마리에 육박하는 가금류가 살처분됐다.
AI 의심 신고 역시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2차 환경 피해도 우려되고 있다. 특히 매몰지 부근의 침출수 오염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인근 생수 수원지의 지하수 오염 가능성도 의심받고 있다.
아울러 경기도 지역의 돼지 구제역 매몰지에서 5년 전 묻은 돼지 사체가 거의 썩지 않은 채로 발견됨에 따라 해당 지역 생수제품 수원지에 대한 전수조사 필요성도 제기되고 있다.
롯데 자회사·풀무원샘물 공장 AI 지역과 일치…“오염 가능성 의심”
환경부, AI매몰지 환경오염 예방 강화…수질 감시·음용 자제 강화
21일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지난달 16일 전남과 충북에서 발생한 H5N6형 고병원성 AI바이러스가 전국으로 확산, 경기·강원·충남·충북·전남·전북·부산·세종 등 8개 시·도, 27개 시·군에서 AI가 확진됐다. 2014년 유행했던 바이러스까지 확인됐고, 국내에선 처음으로 2가지 이상의 바이러스가 동시에 검출되기도 했다.
특히 최근 경기 안성에서 검출된 H5N8형의 AI 바이러스는 현재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H5N6형과는 다른 바이러스로 밝혀졌다. H5N8형 바이러스는 2014년 1월부터 올해 3~4월까지 국내에 유행했던 AI 바이러스로, 이로 인해 당시(2014년 1~7월 기준) 548개 농가, 1400만여 마리의 가금류가 살처분 된 바 있다.
왜 위험할까
문제는 살처분으로 생긴 침출수가 땅속으로 스며들거나 지상으로 유출돼 ‘2차 오염’을 일으킬 수 있다.
KISTI ‘과학향기 칼럼’에 따르면 침출수는 매몰지 안에 묻은 가축의 사체가 부패하면서 생긴 썩은 물과 핏물 등이 합쳐져 만들어진다. 음식 쓰레기가 썩을 때 나오는 오수와 비슷하다. 소나 돼지 등의 가축은 몸무게의 70%가 물로 이뤄져 있다. 물은 세포나 혈액, 체액을 이루는 주요 성분이다.
사체가 부패되면 세포나 혈관 등이 파괴된다. 이 때 안에 있던 수분이 밖으로 빠져나오게 된다. 무게가 500kg인 소를 묻었다면 몸무게의 70%인 350L의 물이 만들어진다.
침출수는 사체를 묻은 지 일주일 뒤부터 서서히 생긴다.
구제역 매몰 매뉴얼에 따르면 가축을 묻기 전에 매몰지 밑바닥에 이중비닐을 깔도록 하고 있다. 침출수가 유출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또한 매몰지보다 낮은 곳에 작은 구덩이를 만들어 고인 침출수를 재처리하도록 하고 있다.
최근 침출수가 문제가 된 이유는 구제역 매몰 매뉴얼에 따라 매몰이 이뤄지지 않은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지하로 흘러든 침출수는 지하수 오염의 원인이 된다. 소나 돼지의 장(腸)과 배설물(분변)에는 수많은 미생물이 서식한다. 전문가들은 분변(糞便) 1g 안에는 1억 마리 이상의 미생물이 살고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여기에는 인간에게 설사병이나 장염을 일으키는 대장균, 살모넬라균 등도 포함돼 있다. 가축 사체가 부패하는 동안 해로운 미생물이 증식 하다가 침출수에 섞여 나온다.
만약 침출수가 지하로 흘러들어 지하수를 오염시킨다면 이 지하수를 마신 사람들은 병에 걸릴 가능성이 크다. 예를 들어 ‘O-157’ 대장균에 감염되면 목숨을 잃을 수 있으며 가축에게 설사병을 일으키는 ‘K88’ 대장균은 면역력이 약한 어린이나 노인에게 치명적이다.
특히 날씨가 따뜻해지면서 얼었던 땅이 녹으면 가축 사체의 부패가 더욱 빨리 일어난다. 3월이 되면 더 위험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전문가들은 사체의 부패가 빨라지면 침출수 역시 더 많이 만들어질 것으로 예상한다. 봄비, 장마 등도 상황을 악화시키는 요인이다. 비가 내려 다량의 물이 매몰지로 유입되면 이 물에 침출수가 섞여 지하수나 인근 하천으로 들어갈 수 있다.
산비탈 등에 만든 매몰지가 무너지는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 이 때문에 매몰지 주변 지역의 지하수 오염 감시 강화 및 식수 안전 대책 등 선제적 대응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제기된다.
환경부의 ‘먹는샘물 제조업체 허가 현황’에 따르면 지난 5월 말 기준 국내에서 생수를 제조하는 업체는 62개로 지역별로는 경기도가 16곳으로 가장 많다.
이 가운데 롯데칠성음료의 자회사인 씨에이치음료와 풀무원샘물 공장 소재지가 각각 경기 양주시와 경기 포천시 이동면로 경기도 AI 발생 지역과 일치한다. 이들 공장에서 롯데아이시스, 초이스엘, NH깊은산맑은물, 깊은산속옹달샘물(세븐일레븐), 네슬레 퓨어라이프, 풀무원샘물 등이 생산되고 있다.
취재진이 현장을 찾았을 때도 마을 진입 도로에는 방역초소가 설치돼 있었다. 이 초소 안에는 경찰과 군인 공무원 등 세 명이 상주해 있고 AI현황을 묻는 질문에 “상황실을 통해 달라”고 답했다.
대비책 마련 고심
미국 농무부는 대규모로 가축 사체를 매몰했을 경우, 최장 20년까지 가스와 침출수가 발생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김정수 환경안전건강연구소장은 “우리나라는 돼지 매몰지 사용 금지 기한을 3년으로 정해 놨다”며 “하지만 땅 속의 토질, 토양 수분, 온도에 따라 사체가 썩는 기간이 다르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따라서 위험성이 있는 구제역 매몰지 주변에서의 물 생산 및 판매는 좀 더 철저한 관리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이에 환경부는 AI 긴급행동지침에 따라 매몰 장소 및 방식이 환경을 고려해 선정되도록 지자체 방역·환경부서 간 유기적 협조를 강화하기로 했다.
관측정, 비가림시설 설치 등 침출수 유출 우려 매몰지에 대해서는 환경 관리를 위한 기술지도 및 전문 인력을 현장 지원한다.
또 토양지하수정보시스템(SGIS)을 활용해 매몰지 주변 지하수 관정 현황을 파악·통보하고, 방역에 지장이 없는 범위 내에서 침출수 유출 우려 매몰지의 주변 지하수 수질조사도 강화해나가기로 했다.
이와 함께 침출수 유출 우려가 높은 매몰지 주변 지역에는 수질감시를 강화하고 음용을 자제하도록 권고할 방침이다.
한편 생수업체 측은 관련 사안에 대해 매몰지와 거리가 떨어져있어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입장을 전해왔다.
풀무원샘물 관계자는 “포천 내 AI 발생 지역은 포천 영북면 일대로 풀무원샘물 공장이 위치한 이동면과는 10km이상 떨어져 있다“ 며 “이동 공장 주변에는 초소가 설치되지 않았으며, AI로 인한 살처분도 발생하지 않았기 때문에 연관성이 전혀 없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