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붙는 개헌 정국…‘미국ㆍ독일ㆍ프랑스’ 등 선진국 정치제도 분석
한국,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단 드러나…개헌 목소리 본격화
[일요서울|장휘경 기자]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와 이에 따른 대통령 탄핵으로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단이 드러난 상황에서 개헌 목소리가 본격화되고 있다. 여당은 개헌추진회(대표 이주영)를 신설하고 일정 조율 및 시민들과의 간담회에 나서는 등 발걸음이 빨라지고 있다. 야당은 여전히 개헌에 대한 의견들이 갈리고 있어 추이를 더 지켜봐야 하지만 점차 개헌론에 무게가 실릴 것이란 전망이다. 이에 권력분산형 개헌론이 향후 조기대선 정국에 핵심 변수로 작용할 가능성이 커지면서 권력체제인 대통령제와 의원내각제, 이원집정부제에 대해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국회는 이달 말 개헌특별위원회를 설치하고 본격적으로 개헌 논의에 착수할 예정이다. 국회 개헌특위 내에 시민사회와 전문가 등으로 자문위원회를 설치할 복안도 갖고 있다.
개헌특위 위원장으로 내정된 새누리당 이주영 의원은 일각의 개헌 반대론에 대해 “대선 공약으로 개헌을 내걸자는 주장이 있지만 정권이 바뀌면 이행되기 어렵다”며 “대선 전에 개헌이 이뤄져야 한다”고 못 박았다.
1948년 제정된 우리나라 헌법은 그동안 9번 개정됐다. 87년 직선제 개헌 이후 29년째 현행 헌법을 유지하고 있으나 정권이 바뀔 때마다 개헌론은 끊이질 않고 있다.
개헌론의 핵심은 권력구조 개편에 맞춰져 왔다. 87년 민주화의 산물인 ‘대통령 5년 단임제’는 한계에 직면했다는 게 많은 헌법학자의 견해다. 원로 헌법학자인 허영 경희대 석좌교수는 “87년 민주화 당시 국민의 요구는 ‘대통령은 내 손으로 뽑아야겠다’와 ‘장기집권은 싫다’ 이 두 가지였다”며 “이를 관철하다 보니 다른 건 소홀하게 생각한 점이 많았다”고 지적했다.
박상철 경기대 정치전문대학원장은 “국민이 대통령 선출권만 갖고 심판권은 없는 현행 헌법의 5년 단임 대통령제는 한번 당선되면 그만이기 때문에 정치적 책임 추궁과 심판의 대상을 실종시켜 버린다”며 “5년짜리 권력을 둘러싼 정치적 악순환의 고리를 해소하려면 개헌을 통해 정상적인 권력구조를 복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여야가 강대강(强對强) 구도로 대립하고 있는 국회도 대표적인 개헌 대상이다. 국회선진화법 시행으로 국회 내 폭력은 사라졌지만 다수결의 의미가 무력해진 게 현실이다. 국회의장도 직권상정 권한이 제한되면서 조정 능력을 잃었다. 이런 국회의 무능을 해소하기 위한 해결책으로 제시된 게 ‘양원제’ 도입이다. 현재 300명의 국회의원으로 구성된 단원제 구조를 민의원(하원)과 참의원(상원·지역대표)으로 분리해 서로를 견제·보완하도록 하자는 것이다. 국제의원연맹(IPU)에 따르면 194개국 중에서 양원제를 채택하고 있는 나라는 78개국(2012년 기준)으로 40.2%를 차지한다.
김선택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국회 내에 하나의 원밖에 없다 보니 여야 간에 심각한 대립이 발생했을 때 뾰족한 해결책이 없다”며 “미국의 상원에 해당하는 참의원이 대통령과 여당·야당이 충돌할 때 조정자 역할을 맡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장기적으로 통일을 생각했을 때도 북한의 인구가 우리나라보다 적기 때문에 북한의 지역대표들이 이를 보완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모든 권력체제 완벽하지 못해
국회 헌법개정자문위원회는 지난 2014년 ‘분권형 대통령제’를 골자로 한 개헌안을 제시했다. 국민이 선출한 대통령이 외교·안보·통일 등 외치(外治)에 전념하고 국회가 선출한 국무총리가 내치(內治)를 맡는 ‘이원집정부제’를 도입하자는 주장이다. 또 현행 5년 단임제인 대통령은 임기를 6년 단임으로 늘리되 대통령이 권한 행사를 초당적·중립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당적 이탈을 헌법에서 규정하도록 했다.
헌법개정자문위원장을 맡았던 김철수 서울대 명예교수(헌법학)는 “우리나라의 정당정치 구조에서는 이상적인 의원내각제를 운영하기 힘든 게 현실”이라며 “분권형 개헌으로 의원내각제적인 요소를 도입해 정당 간 협치(協治)를 하도록 하되 중립적인 국가원수인 대통령에게도 의례적 권한이 아닌 국무총리를 견제할 수 있는 실질적 권력을 부여해야 한다”고 말했다.
현행 대통령제를 유지하면서 4년 중임제로 개헌하자는 주장도 있었다. 내각제를 바탕으로 설계된 이원집정부제는 우리나라 정치 현실과 맞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정만희 동아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한국 정치에서는 정부와 정당에서 2명의 최고지도자가 권력을 공유하고 목표 달성을 위해 협력한 경험이 거의 없다”며 “이원집정부제를 도입할 경우 대통령과 총리 간에 권한 분배를 둘러싸고 새로운 갈등과 비효율이 생길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미국과 같은 4년 중임제가 우리나라 정치 구조상 훨씬 좋은 제도라고 본다”고 말했다.
이렇듯 지금까지는 정치권에서 개헌론은 분권형 대통령제(이원집정부제)와 대통령 4년 중임제가 양대 분파를 이뤄왔다. 이런 가운데 개헌특위 위원장을 맡을 이 의원이 독일식 의원내각제도 논의 대상에 포함해야 한다고 주장한 점이 주목된다.
하지만 권력체제인 대통령제, 의원내각제, 이원집정부제 모두 장단점이 존재해 어느 제도가 더 선출권력을 정하는 데 있어 민주적이고 합리적이라고 할 수는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이에 현재 개헌과정에서 가장 많은 관심을 끌고 있는 미국, 독일, 프랑스의 정부형태를 간략하게 설명하고 우리가 그 제도를 선택했을 경우 나타날 수 있는 문제점들을 간단히 검토해 보았다.
미국의 대통령제
미국의 대통령제를 규정하는 연방헌법의 특징은 권력을 이중적으로 분립하고 있는 것이다. 즉 연방정부는 권력분립의 원칙에 따라 입법부·행정부·사법부를 수평적으로 엄격히 분립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지방분권주의에 따라 연방정부와 지방(州)정부 간 수직적인 분립을 엄격히 실시하고 있다.
따라서 중앙정부의 대통령은 외교·국방 등 헌법이 열거하고 있는 일정한 권한만을 행사하도록 하고, 국민의 일상생활과 직결되는 문제들은 지방정부에서 독자적으로 관할하도록 했다.
그 결과 일반국민들은 대통령이나 그 정책에 대해 직접적으로 각자의 이익을 내세워 시시비비를 논할 필요가 없고, 대통령의 입장에서는 전쟁이나 내란 등 극한적인 상황이 발생하지 않는 한, 권력을 집중시켜 독재정치를 해야 할 필요가 없다.
이렇게 미국의 대통령제는 제도 자체의 외형과는 달리 실제 정치에 있어서 프랑스의 이원집정부제와 같은 보이지 않는 기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미국 대통령제의 이러한 특성을 파악한 프랑스의 ‘듀베르체’는 의원내각제가 유럽의 보편적인 정치체제라고 한다면, 미국의 대통령제는 미국에서만 통용될 수 있는 폐쇄적인 정치체제라고 정의했다. 또한 독일의 ‘칼 뢰벤슈타인’은 미국의 대통령제는 그 특수성으로 인해 미국 이외의 국가로 수출되는 순간 죽음의 키스로 변한다고 경고했다.
이렇게 미국의 대통령제는 미국과 같은 연방국가에서만 적합하도록 만들었기 때문에, 다른 단일국가에서 그것을 그대로 모방할 경우, 대통령의 권력과 정당정치 중심의 의회정치가 충돌을 일으켜 많은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남미나 아시아에서 미국식 대통령제가 제왕적 대통령제로 변해 실패하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미국 대통령제를 모방할 경우 문제점
미국 대통령제의 특징은 단일국가의 대통령제와는 달리 대통령의 권한이 국가행위전체의 중심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니라 연방헌법에 열거된 일정한 사항만을 행사하기 때문에 대통령의 독재화가 불가능하게 되어 있다.
그러나 연방국가가 아닌 단일국가에서 그것을 모방했을 경우 대통령에게 국가행위전체에 중심적인 역할이 주어지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대통령에게 권력이 집중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미연방정부의 대통령제에서는 대통령이 일정한 역할만을 할 수 있다는 의미에서 단순히 ‘대통령제’라고 하지만 단일국가의 대통령제에서는 대통령이 정치의 중심적인 역할을 하므로 ‘대통령중심제’라고 하는 것이다.
이렇게 단일국가에서의 대통령제에서는 대통령이 국가정치의 중심적인 역할을 해야 하기 때문에 정책정당제를 택할 경우 대통령의 역할과 여당의 역할이 상충하게 된다.
왜냐하면 대통령제에서는 여당이라 할지라도 대통령 이외에는 정책을 가질 수 없기 때문에 대통령의 정책에 이의나 비판을 제기하게 되면 대통령의 권력과 상충해 마찰을 가져오게 된다. 그렇다고 대통령을 단순히 보좌하기만 하면 대통령의 정책을 수비하는 수비대의 역할밖에 할 수 없게 됨으로써 정책정당 본연의 역할을 상실하고 만다.
이와 같은 이유로 정책정당제는 대통령제 국가에 맞지 않는 제도라는 목소리가 높다.
독일의 의원내각제
독일이 의원내각제를 도입한 것은 1919년 바이마르헌법에서였다. 독일은 제1차 대전에서 패배하고 의원내각제에 의한 이상적인 바이마르공화국을 탄생시켰다. 그러나 바이마르공화국의 헌법은 대통령을 직선제로 선출함으로써 의회와 더불어 이중적 국민대표제를 채택하게 했다.
이러한 체제는 대통령과 의회의 대립을 불러 일으켰고 직선대통령에게 통치의 주도권이 부여됨으로써 의원내각제의 중심인 의회의 기능이 약화됐다. 이에 바이마르공화국 이전의 입헌군주제 영향으로 군주의 기능과 권한을 계승한 대통령은 바이마르공화국에서 군주로 변화했다. 이러한 정국의 불안정은 1919년 바이마르헌법 제정 후 히틀러의 독재정치가 시작되기까지 14년 동안 12명의 연방수상이 나오게 하고 내각이 21번이나 교체되게 하는 등 정치적 혼란을 가져왔다.
제2차 대전 후 독일은 바이마르 공화국의 역사적 체험을 교훈으로 삼아 그 제도적 모순과 결함을 시정했다. 기본법의 기초자들은 정치관계를 안정시키고자 바이마르헌법에서 의회의 절대주의에 대한 불안 때문에 도입했던 연방대통령을 정치권에서 차단하려고 노력했다. 그 결과 나타난 것이 수상의 권한을 강화한 독일형 의원내각제다. 이러한 독일의 의원내각제는 제2차 대전 후 독일의 안정을 이루고 통일의 초석을 마련했다.
독일의 의원내각제는 협의제 민주주의의 한 유형으로서 다수제 민주주의로 분류되는 영미계통의 내각제나 대통령제와는 확연히 구분된다. 협의제 민주주의는 연방과 지방에서 서로 다른 정파 간의 연정 구성을 통해 이질적 사회집단간의 정치적 타협을 이룩하고, 궁극적으로는 고도의 국민통합을 실현한다. 또한 대통령, 연방정부, 연방의회, 연방상원, 연방헌법재판소 간의 적절한 역할 분담과 상호 견제를 통해 권력의 횡적, 종적 분산을 도모함과 동시에 연방주의 원칙을 준수한다.
대통령은 의회에서 선출하며 상징적인 국가원수로서 실질적인 권한은 없다.
독일의 의원내각제 채택 시 문제점
한국은 정당제도의 불완전성 때문에 정권을 안정적으로 운영하기에는 문제점이 많다. 영·호남의 지역주의가 완고하게 고착돼 지역적으로 정당창당이 쉬울 뿐 아니라 기성정치인들의 당적변경이 자유로워 정치적 안정성을 유지하기가 매우 어려운 단점이 있다.
또한 제2공화국 장면(張 勉) 정권에서 보았던 바와 같이 다수당에 의해 정권을 잡는다 하더라도 당내파벌에 의해 분열될 경우 오히려 소수당과의 연합정권보다도 불안정하다. 헌법적으로 당적변경을 금지하더라도 당내파벌이 형성되면 야당보다 상대하기가 더욱 어렵기 때문이다.
현재 한국의 정당들이 내부에서 주류와 비주류로 분열돼 정책정당으로서의 역할이 불완전한 것이 바로 그것이다.
프랑스의 이원집정부제
프랑스 제4공화국은 제3공화국의 구체제복고·독재정권의 출현 방지 등을 위해 절대적 의회우월주의를 채택했다. 그러나 제4공화국이 존속하던 13년 동안, 25차의 개각과 22회의 내각불신임으로 행정부의 불안정이 계속됐다.
이에 정치적 혼란이 만연해 국민들은 의회의 방임적 자유보장보다는 권위 있는 정부를 필요로 했다. 그래서 1958년 10월 드골을 대표로 선출하고 국민투표로 드골헌법을 채택해 이원집정부제라는 체제를 이뤘다.
그러나 정부가 대통령과 내각으로 분리돼 드골같이 국민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는 지도자가 아닌 경우 안정을 찾지 못하고 대통령과 내각의 갈등이 커져 점차 정치적 혼란으로 재현될 수 있는 단점이 있다.
프랑스 대통령은 7년 임기(연임 가능)로 국민이 직접 선출하며, 권한은 의례적·형식적 권한 외에 평시에는 외교·국방에 관한 권한만을 가지나, 비상시에는 모든 권한을 행사할 수 있다. 물론 평시에도 대통령이 내각회의 주재권을 갖기 때문에 행정권에 깊이 간여할 수 있다.
내각의 수상도 국가의 정책을 결정하고 지도하며, 국방관리권을 가지고 최고국방회의, 국방위원회 등에서 대통령의 권한을 대행하기도 하는 등 실질적 행정수반으로서의 지위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대통령과 수상은 실제 정치에서 자주 마찰을 빚고 있다.
또한 대통령이 의회 다수파를 장악할 경우 내각을 보좌기관으로 장악할 수도 있지만, 반대로 수상이 의회 다수파의 지지를 받을 경우, 대통령은 내각책임제하에서의 대통령의 지위에 접근할 정도로 무력해진다. 그래서 더욱 마찰을 빚게 된다.
프랑스는 대통령과 수상의 권한을 헌법적으로 명확하게 구분해 놓아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헌법을 모호하게 규정해 그 해석에 따라 협조관계가 달라질 수 있게 한 결과, 정치적인 안정이 매우 불안정하게 되어 있다.
그래서 오스트리아 헌법이 프랑스의 이원집정부제를 도입했다가 독일의 제도를 다시 도입해 상원의원을 임명제로 해 연방옹호를 하게 했는가 하면, 직선하는 대통령의 권한을 무력화하는 등 의원내각제로 운영하는 것도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프랑스의 헌법제도 채택 시 문제점
프랑스에서 드골헌법이 제 기능을 발휘해 안정을 찾을 수 있었던 요인은 혼란했던 제4공화국에 대한 반작용도 있었지만, 드골이 탁월한 지도력으로 혼란한 국회를 지배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드골이 사라지자 국민과 정치인들의 자유분방한 기질이 다시 살아나 국회의 권한이 지나치게 축소됐다. 이에 복원운동이 계속되는 가운데 대통령과 총리 사이에 불협화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우리가 이 제도를 택할 경우, 프랑스 헌법에 명시된 권력구조 전반에 대한 대폭적인 개편이 이뤄지지 않는 한 현재의 대통령제나 의원내각제보다 더욱 불안정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