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말은 새가, 밤말은 ‘운전기사’가 듣는다?

평소엔 ‘그림자’ 때론 무서운 ‘감시카메라’인 그들

2016-12-16     권녕찬 기자

최순실·최순득 운전기사의 잇따른 폭로

대형사건마다 중요한 역할, 그들의 ‘입’

[일요서울 | 권녕찬 기자] 권력형 비리가 터질 때 각종 의혹이 홍수처럼 쏟아진다. 이 때 의혹을 한 걸음 진실로 이끄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권력자의 운전기사들이다. 그들은 지근거리에서 권력자의 일거수일투족을 보기 때문에 ‘걸어 다니는 CCTV’이기도 하다. 보통 대형 게이트가 터져 나올 때 이들의 증언이 결정적 역할을 하는 것이다. 이번 ‘최순실 게이트’도 마찬가지였다. 최순실(60·구속기소)일가 운전기사들의 증언은 의혹 해소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최순실 씨의 국정농단 사태 의혹이 매일같이 쏟아지는 가운데 사건의 중심에 있는 최 씨 관련 의혹은 그 가운데서도 ‘지분’이 많다. 과거 최 씨의 차량을 17년간 몰았던 김모(64)씨의 증언은 최 씨 관련 의혹 해소에 신빙성을 더했다.

김 씨에 따르면 그는 1985년부터 2004년까지 17년간 최 씨 차량의 운전대를 잡았다. 이 과정에서 김 씨는 자연스럽게 최 씨 일가를 상당 부분 알게 됐다고 밝혔다. 김 씨는 최순실 씨 부친 고 최태민 씨를 ‘할배’, 모친 고 임선이 씨를 ‘할매’, 전 남편 정윤회 씨를 ‘정 실장’ 등으로 부르기도 했다.

최태민, 용달차에 실을 정도로 돈 엄청 많아

김 씨는 언론 인터뷰에서 최순실 자매들의 재산이 많은 이유가 최태민 씨에게 물려받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최순실 씨는 서울 강남구의 빌딩과 강원도의 땅, 독일의 호텔과 주택 등 약 300~400억 원의 재산, 언니 최순득(64)씨는 강남 도곡동 빌라, 빌딩 등 350억, 동생 최순천(58)씨는 강남 청담동 소재의 시세 1300억 빌딩을 소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씨는 “최태민 씨 재산은 밤새도록 용달차로 돈을 실어 나를 정도로 많았다. 최 씨 외가 친척 얘기로는 ‘할배(최태민 씨) 돈을 용달차로 4, 5대나 옮겼다’, ‘돈을 옮기는 데 죽을 뻔했다’고 말했다”며 “최 씨 자매 재산은 최태민에게서 돈이 넘어왔다고 봐야 한다. 원래 최순실이 뭐 있었겠느냐”고 말했다.

그는 최 씨 일가의 서열(?)을 정리해주기도 했다. 과거 ‘최순실 게이트’ 의혹이 터질 무렵 진짜 실세는 최 씨의 언니 최순득이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그는 “순득이는 아무것도 아니다. 언니이지만 동생 순실이에게 꼼짝 못한다”며 “할매(최태민 씨 부인 임순이 씨)도 ‘유연이 엄마(최 씨)가 대장이라고 말하곤 했다”며 최순득이 진짜 실세라는 세간의 의혹을 불식했다.

문고리 3인방은 최순실 ‘종’

김 씨에 따르면 강남 신사동에 당시 박근혜 의원을 대통령으로 만들기 위한 사무실이 있었다. 이를 ‘안가’(비밀 아지트)라고 불렀는데, 문고리 3인방으로 알려진 정호성(전 청와대 부속비서관), 안봉근(전 청와대 국정홍보비서관), 이재만(전 청와대 총무비서관)등이 거의 살다시피 했다고 한다.

그는 문고리 3인방을 대통령의 보좌관이 아니라 최순실 씨의 ‘종’이라고 주장했다. 김 씨는 “3인방은 순실이의 사람이다. 그 사람들 모두 순실이하고 정 실장이 뽑았던 사람”이라며 “그 사람들의 종으로 보면 된다. 이 사람들이 최 씨가 뭐 시키는데 토를 달면 그날로 그만둬야 된다. 순실이 말을 무조건 들어야 한다”고 했다.

이어 “3인방의 월급은 박 대통령 측에서 나오지만 박 대통령이 무슨 이야기를 안 하기 때문에 말은 순실이 말을 들어야 한다”면서 “안 그러고 반발하면 끝”이라며 최순실의 힘을 짐작케 했다. 또 “순실이가 상스럽지는 않지만, 보스 기질이 있다”며 “옛날 한명회가 있었다면 지금은 ‘최명회’(최순실+한명회)라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한명회는 조선시대 세조 곁에서 당대 최고 권력자로 권세를 떨친 인물이다.

김 씨는 최 씨와 정윤회 씨의 연애 뒷이야기까지 알고 있었다. 그는 최 씨가 지인 미국 교포로부터 정 씨를 소개 받았는데, 최 씨가 당시 대한항공 보안승무원이었던 정 실장을 기내에서 보고 마음에 들어 결혼까지 이르렀다고 밝혔다.

여기저기서 터지는 그들의 폭로

최순득 씨 운전기사의 폭로도 잇따랐다. 1997년부터 1년여간 운전기사로 일했던 A씨의 증언이 담긴 녹취록이 공개된 것이다. 녹취록에서 A씨는 최순득 씨 딸 장시호 씨의 연세대 입학 과정에 의문을 제기했다. 녹취록에 따르면 A씨는 장시호 씨 대입을 앞둔 1997년 11월, 장 씨의 부친이 새벽에 연세대를 찾아 의문의 40대 남성을 만났다고 밝혔다.

당시 A씨는 왜 새벽에 가서 학교 관계자로 보이는 남성과 만나는지 이상하게 생각했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봉투나 가방을 가져간 것은)못 봤다”며 “부친 장 씨는 이런 식으로 학교에 두세 차례 들어갔다 나왔다”고 밝혔다.

이는 최근 장시호 씨 연세대 입학 및 학사 특혜 의혹으로 이어졌다. 장 씨가 입학할 무렵인 1998년에 ‘기타 종목’으로 체육 특기생 전형이 새로 추가된 사실과 장 씨가 학사경고 3번 받고도 졸업한 일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학교 측은 특혜 의혹을 사실이라고 인정했고, 현재 교육부가 관련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최순실 일가 운전기사의 폭로처럼, 과거 대형 비리사건마다 운전기사의 ‘입’이 결정적 역할을 한 경우가 많다. 지난해에는 이완구 전 국무총리가 운전기사의 폭로로 곤욕을 치렀다. 이 전 총리가 고 성완종 경남기업 회장으로부터 불법 정치자금 수수 의혹을 받는 상황에서 이 전 총리의 운전기사가 둘의 만남을 기억한다고 밝힌 것이다. 이로 인해 이 전 총리는 총리직에서 내려와야 했다.

또 이명박 정부 시절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 비리 사건도 운전기사가 차 트렁크에 있는 돈 상자를 사진으로 찍은 것이 결정타가 됐다.

이처럼 운전기사는 평소 말 없는 그림자지만, 때로는 무서운 감시카메라가 되기도 한다. 검찰도 주요 피의자를 조사할 때 운전기사를 조사하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