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수영 롯데케미칼 사장, 실적 급증에도 웃지 못하는 까닭

탄력 받은 분위기 형사재판에 시들까

2016-12-16     신현호 기자

[일요서울 | 신현호 기자] 롯데케미칼의 올 4분기 실적이 대폭 개선될 것으로 보인다. 매출은 지난해 동기보다 29.2%, 영업이익은 103.8% 급증할 것으로 예상된다. 증권가에선 이 회사의 영업이익이 급증한 원인을 화학원료의 수익성 개선 덕분으로 보고 있다. 이런 분위기는 올 상반기부터 계속됐다. 롯데케미칼은 2분기에 7000억 원 가까운 영업이익을 냈다. 업계 라이벌 LG화학을 제친 사상 최대 분기영업이익이다. 3분기 누적 영업이익은 LG화학보다 약 3000억 원가량 앞섰다. 영업이익률(상반기 20%)은 국내 최고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이런 수익성 증가의 배경에는 허수영 롯데케미칼 사장이 자리잡고 있다. 롯데케미칼이 실적 고공행진을 잇고 있는 건 석유화학제품의 기초원료로 쓰이는 에틸렌시장의 호황 때문인데, 롯데케미칼은 에틸렌시장이 호황을 누리기 이전부터 에틸렌 생산 기업을 인수합병하며 선제적으로 투자를 확대해왔다.

허 사장은 롯데케미칼의 전신인 호남석유화학에 재직할 때부터 현대석유화학과 케이피케미칼 인수에 주도적인 역할을 하며 에틸렌 생산 능력을 확장하는 데 주력했다. 허 사장은 2010년에 에틸렌 연간 생산량이 72만 톤에 이르는 말레이시아 기업 타이탄을 인수, 국내에서 에틸렌 생산량 1위 기업에 올랐다. 롯데케미칼은 1년에 에틸렌을 모두 282만 톤 생산한다. 이는 석유화학업계 1위기업인 LG화학이 생산하는 에틸렌보다 약 62만 톤 많은 양이다.

인수 초기부터 수익이 있었던 건 아니다. 중국 발 공급과잉 때문에 에틸렌 업황은 2014년까지 부진했다. 석유화학업계는 롯데케미칼이 1조5000억 원을 무리하게 투자한 것이 아니냐는 반응을 내놓기도 했다. 그런데 지난해부터 상황이 반전하기 시작했다. 허 사장이 타이탄 인수 효과를 보기까지 긴 인고의 시간이 필요했던 셈이다. 허 사장의 끈기는 내년 해외사업 등에서 본격적으로 탄력을 받을 것으로 예측됐다.

내년 형사재판 앞둬

이런 장밋빛 전망은 롯데그룹이 비자금 의혹 등으로 검찰 수사를 받으면서 힘이 빠지기 시작했다. 이 때문에 허 사장은 자신의 안목과 인내의 결실에도 마냥 웃을 수 없는 처지에 놓이게 됐다. 그는 형사 재판과 해외사업 정상화라는 두 개의 큰 산을 넘어야 한다.

우선 내년 본격적으로 진행될 재판은 허 사장이 받는 혐의가 5개나 되는 만큼 상당한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허 사장은 롯데케미칼이 2006년 KP케미칼을 인수하면서 1500억 원 상당의 고정자산이 존재하는 것처럼 허위 장부 작성 후 감가상각비를 계상, 경정청구·국세심판·행정소송을 통해 법인세 220억 원을 부정 환급 받은 특가법위반(조세) 혐의를 받고 있다.

2014년 3월 롯데케미칼에서 생산하는 석유화학원료 추출물의 물량을 축소 조작해 개별소비세 13억 원을 포탈한 특가법위반(조세) 혐의도 있다. 또 세무조사 담당공무원에게 뇌물 명목으로 세무사에게 2500만 원을 교부한 제3자뇌물교부 혐의, 석유화학원료 수입거래에 일본 롯데물산을 불필요하게 끼워 넣고 수입대금 이자 및 수수료 명목으로 50억 원을 지급해 배임을 저지른 특경법위반(배임) 혐의, 수입중개업체로부터 중개 수주 편의를 제공한 대가로 4300만 원을 수수한 배임수재 혐의 등도 받고 있다.

검찰은 허 사장이 호남석유화학과 KP케미칼 인수과정 등에서 발생한 가짜 자산에 대해 알고 있었을 것으로 보고 소송사기에 직접 개입했다고 보고 있다.

당시 롯데케미칼 대표이사였던 신동빈 회장 역시 이 같은 사실을 몰랐을 리 없다고 판단하고, 지난 8월 11일 허 사장을 불러 신 회장의 적극적인 지시가 있었는지 여부 등을 추궁한 바 있다. 그러나 당시 허 사장은 “신 회장의 지시는 없었다”는 입장을 밝혔다.

만약 허 사장이 혐의가 인정돼 자리를 비우게 된다면 롯데케미칼은 큰 타격을 입게 될 전망이다. 이미 앞서 허 사장이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회사는 대외적인 이미지와 실제 사업 등 유무형의 손해를 입었다는 평가다.

재계 한 관계자는 “롯데케미칼의 전신인 호남석유화학은 신 회장이 처음으로 경영수업을 받은 곳이자 그룹에게 큰 의미가 있는 계열사”라면서 “허 사장은 신 회장의 최측근 중 한 명이자 회사를 누구보다 잘 아는 인물로 꼽힌다. 게다가 롯데케미칼이 그룹 캐시카우인만큼 허 사장에 대한 재판은 그룹 차원에서도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해외사업 차질 우려

주춤했던 해외사업도 다시 본궤도에 올려야 하는 상황이다. 롯데케미칼은 지난 6월 미국 화학기업 액시올을 인수하려 했지만 검찰 조사로 포기해야 했다. 당시 허 사장은 “이번 인수 계획 철회는 아쉬움이 크나 현재의 엄중한 상황을 감내하기에는 무리가 있다”며 안타까운 소감을 밝힌 바 있다.

액시올과 합작 중인 루이지애나 프로젝트는 연산 100만톤의 에탄분해시설(ECC)과 연산 70만톤의 에틸렌글리콜(EG) 공장을 건설하는 사업이다. 롯데케미칼은 오는 2018년까지 약 2조9000억 원을 투자할 계획이었다.

이후 액시올이 자금난에 시달리자 롯데케미칼은 아예 액시올을 인수해 ECC에 대한 지분을 모두 확보하려고 했다. 미국 회사를 인수해 북미시장의 전진기지로 활용하자는 게 복안이었다. 하지만 허 사장이 출국 금지되면서 현장 기공식에도 참가할 수 없었다. 롯데케미칼은 결국 인수 포기를 선언하고 액시올은 미국의 화학업체 웨스트레이크에 넘어갔다.

중국 현지 상황도 골치다. 롯데케미칼의 중국계열사는 최근 부진에 허덕이고 있다. 올 상반기 중국내 7개 법인 중 5곳에서 적자를 기록했다.

더구나 중국이 한반도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에 강하게 반발하며 롯데그룹은 중국 당국의 보복성 조사를 받고 있다. 최근 롯데케미칼 등 중국 공장에도 중국 측 점검단이 나와 고강도 조사를 벌였다.

업계 관계자는 “롯데케미칼에게 내년은 매우 중요한 시기”라면서 “중국, 인도 등 신흥국의 추격을 받고 있어 내실까지 다져야 하는 데다 세계적으로 화학산업이 급변하고 있다. 롯데케미칼이 어떤 카드를 내놓을지 초미의 관심사”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