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리다고요? 우린 국민 여동생, 남동생”
아역배우의 세계
2008-05-28 신혜숙 프리랜서 기자
아역배우 전성시대다. 사랑스런 외모와 성인 연기자 뺨치는 탄탄한 연기력으로 무장하고 안방극장과 스크린을 넘나드는 아역배우가 증가하고 있다. 작품 속 비중이 커졌고 인기도 높아졌다. 일부 아역배우는 ‘국민 여동생’ ‘국민 남동생’으로 불리며 스타 대접까지 받는다. 하지만 아역배우의 길이 마냥 쉽다고 생각하면 오산. 남모를 어려움도 적지 않다. 아역배우의 세계를 들여다본다.
<일지매> 아역 열연 ‘화제’
SBS 퓨전 사극 <일지매>가 화제다. 지난 21일 첫 전파를 탄 <일지매>는 조선시대 의적 일지매 소재, 이준기 주연, CG를 이용한 화려한 영상과 액션 등으로 일찌감치 기대를 모았던 작품.
하지만 현재 관심의 중심에 있는 건 ‘아역배우’다. 1~2회에 걸쳐 일지매 (이준기), 은채 (한효주), 시후 (박시후), 봉선 (이영아) 등 주인공들의 어린 시절이 소개된 가운데 아역배우들의 열연이 시청자들을 사로잡은 것.
‘일지매’ 아역을 맡은 여진구를 필두로 ‘은채’ 아역 김유정, ‘봉순’ 아역 정다빈, ‘시후’ 아역 이다윗 등은 극중 귀여운 모습에서 구타당하고 오열하는 모습까지 완벽하게 표현해냈다.
현대극에 비해 사극 연기가 한결 어렵다는 점을 감안하면 웬만한 성인 연기자 못지않은 연기력.
이를 증명하듯 방송 후 <일지매> 인터넷 홈페이지 게시판엔 ‘혼신을 다한 아역배우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아역배우들 때문에 드라마에 대한 기대가 더 커졌다’는 내용의 글이 잇달아 올라왔다.
이보다 앞서 MBC <이산>과 SBS <왕과 나>에서도 아역배우들의 열연이 시청자들을 사로잡았었다.
영화 주연까지 맡아
특히 <왕과 나>에서 어린 연산군 역을 맡아 ‘연기 신동’이란 호칭을 얻은 정윤석은 KBS 2TV <인간극장>을 통해 부모가 조선족이란 사실, 어려운 형편 등이 알려지면서 폭발적인 관심을 모으기도 했다.
방송 관계자는 “드라마 속 아역배우의 중요도와 비중이 점점 더 커지고 있다”며 “드라마 초반 인기는 아역배우가 좌지우지한다고 해도 빈말이 아니다. 때문에 아역배우를 캐스팅할 때도 전보다 고심을 많이 한다”고 전했다.
아역배우의 높아진 비중을 증명하듯 6월 초 방영 예정인 KBS 2TV 사극 <최강칠우>는 아역배우들의 열연을 보도자료로 작성, 배포하기도 했다.
영화계에서도 아역배우들의 활약은 눈부시다. 극에 재미를 더하는 조연은 기본 성인배우에게도 잘 오지 않는 주연 기회까지 잡아 연기력과 매력을 인정받고 있다.
지난 5월 초 개봉한 <서울이 보이냐>와 5월 29일 개봉한 <방울토마토> 역시 스타급 아역배우 유승호, 김향기가 주연을 맡은 영화.
두 작품 모두 소규모임에도 불구하고 <아이언맨>, <스피드 레이서>, <나니아 연대기-캐스피언 왕자>, <인디아나 존스4> 등 할리우드 대작과 경쟁해 관심을 모았다.
일각에선 “틈새시장을 노리고 완성 후 개봉 못한 영화를 선보인 것”이라고 하지만 가정의 달에 아동 주연 영화가 있다는 사실에 반가움을 표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특히 영화 흥행과 완성도를 떠나 유승호, 김향기의 열연은 큰 호평을 받고 있다.
<왕과 나>, <태양사신기> 등 여러 드라마에 출연하고 영화 <집으로>와 <마음이> 주연이었던 유승호는 <서울이 어디냐>에서 골목대장 ‘길수’ 역을 맡아 자연스럽게 작품을 끌어간다.
탄탄한 연기력에 외모까지 귀여워 ‘국민 남동생’ ‘리틀 소지섭’으로 불리던 그는 <서울이 어디냐> 홍보활동 당시 훌쩍 자란 키와 어른스러운 모습으로 누나 팬들의 가슴을 설레게 했다.
김향기 역시 가난한 할아버지와 손녀의 아름답고 슬픈 이야기를 그린 <방울토마토>에서 애절한 눈물연기를 펼쳐 ‘한국의 다코다 패닝’임을 다시 한번 증명했다.
그런가하면 똑 소리 나는 연기력을 자랑하는 박지빈은 <안녕, 형아>로 2005년 뉴몬트리올영화제 남우주연상을 수상,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영화 관계자는 “유승호가 주연을 맡은 <집으로>의 흥행 이후 아역배우 주연 영화에 대한 확신이 강해졌고 제작도 활발해졌다”며 “아역배우는 나이만 어릴 뿐 성인 연기자와 다를 바가 없다”고 전했다.
아역스타, 쉽지 않은 길
높아진 아역배우의 인기는 연기학원 수 증가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연기학원 관계자는 “정확한 수치 산정은 힘들지만 새로 문을 연 연기학원, 어린이반을 추가한 연기학원이 많아진 건 사실”이라고 말했다.
물론 연기학원이나 아카데미를 찾는 엄마와 어린이들도 늘었다. 대중매체를 통해 일찍 연예계를 접하면서 연예인을 지망하는 아이들이 많아진 것.
연기학원이나 아카데미의 프로그램이 아이들 언어, 감성 등의 발달에 도움이 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더욱 인기가 높아졌다.
연기학원에 근무한 경험이 있는 매니저는 “3~4년 전부터 아역배우 인기가 높아지면서 학원 수강생도 늘었다”며 “대부분 아이들이 하고 싶어 찾아오지만 부모가 먼저 권하는 경우도 봤다. 연예인에 대한 인식이 좋아지긴 좋아진 것 같다”고 전했다.
하지만 수많은 아역배우 지망생 중 유명 아역배우, 아역스타가 되는 건 극소수다.
그 길은 결코 쉽지 않다. 때문에 일부 연예 관계자들은 “취미나 재미로 아역배우를 시킬 생각이라면 한번 더 고려해보라”고 조언한다.
먼저 아역배우도 성인 연기자와 마찬가지로 데뷔부터 쉽지 않다.
지인 소개나 직접 오디션에 참가하는 경우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아역배우는 연기학원이나 아카데미를 통해 연예계에 진출한다. 물론 아무나에게 출연 기회가 주어지는 건 아니다.
기본적으로 6~10개월 정도 교육을 받은 뒤 단역부터 활동을 시작한다. 이후 꾸준히 활동하며 얼굴을 알리고 연기력을 검증받아야 조연급에 해당하는 역할을 얻을 수 있다.
연예 관계자는 “단숨에 주목받는 경우도 있지만 대다수는 2년 이상 활동해야 어느 정도 이름과 얼굴을 알릴 수 있다”고 전했다.
이어 “이 과정에서 아역배우 절반 이상이 일상생활로 돌아간다”고 덧붙였다.
성인배우와 동등한 촬영?
또 아역배우들은 촬영장에서 생각보다 많은 고생을 감수해야 한다.
영화나 드라마는 정해진 기간 내에 일정 분량을 찍어야한다. 때문에 밤샘 촬영 등 무리한 스케줄도 소화해야하고 어렵고 힘든 장면 촬영도 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아무리 아역배우를 배려해줘도 한계가 있기 마련.
제작사 관계자는 “최대한 아역배우 위주로 촬영을 하려 한다. 하지만 아역배우 때문에 모든 일정을 무시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결국 아역배우도 성인 연기자들과 함께 졸음을 참으며 카메라 앞에 서야하고 추위와 더위도 견뎌야 한다.
실제 대다수 아역배우들이 영화나 드라마 제작발표회에서 가장 힘든 점으로 수면부족과 추위, 더위 등을 꼽는다.
아역배우 엄마 김모(35)씨는 “아이가 단역으로 방송에 출연한 적이 있는데 생각보다 고생을 많이 하더라”며 “배우이기 이전에 아이인데 그에 대한 배려가 약했다”며 안타까운 마음을 나타내기도 했다. 심리적 긴장감과 스트레스를 풀어주면서 촬영을 진행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상황이었다는 것.
실제 국내의 경우 아직까지 할리우드처럼 체계적인 아역배우 보호 시스템이 마련돼 있지 않아 오래 전부터 이 문제가 해결되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었다.
할리우드의 경우 아역배우에게 정해진 시간 외에 촬영을 요구하거나 계약사항을 지키지 않을 경우 강력한 제제가 가해지는 것으로 알려졌다.
연예 관계자들은 무엇보다 ‘아이의 미래’를 생각해 아역배우 활동 여부와 기간 등을 신중히 결정해야 한다고 말한다.
어려서부터 연예인으로 활동하면 평범한 학교생활이 쉽지 않기 때문에 도중에 연기를 포기할 경우 생각보다 큰 방황을 할 수 있다는 것.
배려와 관심 ‘필수’
뿐만 아니라 주변의 지나친 관심으로 심리적 괴로움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각별한 주의와 관심도 필요하다.
<순풍산부인과>의 ‘미달이’로 많은 사랑을 받은 김성은은 <그것이 알고 싶다>에 출연, 자신을 미달이로만 보는 사람들의 시선 때문에 우울증에 시달리고 자살시도까지 했다는 충격적인 고백을 하기도 했다. 김성은과는 반대로 늘 사람들의 주목을 받다가 관심 밖으로 멀어져도 혼란을 겪을 수 있다.
탤런트 매니저는 “연기활동은 궁극적으로 굉장히 좋은 경험이라고 생각한다. 아이에게 색다른 체험이자 감수성 등을 풍부하게 해준다”며 “단, 반드시 아이의 의지대로 활동해야하고 원치 않을 경우 언제든지 그만두도록 하는 것이 옳다고 본다”는 입장을 밝혔다.
귀여운 얼굴과 탄탄한 연기력으로 무장한 채 여러 어려움을 헤치며 연기에 매진하고 있는 아역배우들. 이들이 앞으로 영화와 드라마에서 어떤 활약상을 펼칠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