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건 유출’ 혐의 故 최 경위, 가혹행위 의혹 전말

최 경위 兄 “동생은 자살이 아니라 타살됐다” 주장

2016-12-09     권녕찬 기자

‘정윤회 문건’ 유출 수사 도중 “소변금지·밥도 굶겨”

“죽음으로 결백 증명하려 했다”…배후에 우병우·김기춘

[일요서울 | 권녕찬 기자] 2014년 정윤회 게이트와 2016년 최순실 게이트. 시기와 이름은 다르지만 본질은 같다. 사적 시스템이 국정에 개입해 나라를 주무른 것. 이 과정에서 공적 시스템은 무력화됐다. 2년 전 ‘정윤회 문건’ 파동으로 드러난 비선실세의 국정농단이 현재 또다시 대한민국을 덮치고 있다. 2년 전 ‘대청소’를 하지 못한 탓이다. 그 과정에서 비극도 발생했다. 당시 문건 유출 당사자로 지목돼 스스로 목숨을 끊은 故 최모 경위가 그렇다. 지난 6일 최 경위의 형은 CBS 라디오에 출연, 당시 조사 과정에서 동생이 ‘가혹행위’를 받았다며 그의 죽음을 비통해했다.

2014년 11월 세상에 알려진 VIP측근(정윤회) 동향 보고서, 이른바 ‘정윤회 문건’의 주된 내용은 박근혜 대통령의 국회의원 시절 비서실장이자 최태민 목사의 사위인 정윤회씨가 ‘문고리 권력 3인방’을 포함, 청와대 안팎 인사 10명을 통해 각종 인사개입과 국정농단을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당시 문건 파문의 초점은 비선의 전방위적 국정 개입을 가리키고 있었다.

하지만 돌연 ‘누가 문건을 유출했나’로 사건이 방향을 틀면서 초점이 흐려졌다. 같은 해 12월 청와대에서 이 사건을 ‘문건 유출’로 규정한 직후부터다. 최고 권력기관의 이 같은 ‘지침’에 수사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는 비판이 일기도 했다. 이후 검찰은 문건 유출의 배후로 당시 문건 작성자 박관천 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실 행정관, 그의 상관이었던 조응천 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실 비서관(현 민주당 국회의원), 한일 전 서울경찰청 정보분실 경위와 동 소속 최 경위 등을 지목했다.

수사 받던 최 경위 스스로 생 마감

당시 검찰은 수사를 이렇게 결론냈다. “조응천 비서관이 주도해 박관천 경정이 지라시를 작성, 서울경찰청 정보분실에 둔 문건을 최 경위, 한일 경위가 빼돌려 언론에 넘겼다.”

문건 최종유출자로 지목된 최 경위는 수사를 받던 2014년 12월 13일 차 안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당시 최 경위에 대한 구속영장이 기각됐지만 이후 최 경위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최 경위의 형은 동생이 그 같은 결정을 한 데 대해 도저히 이길 수 없는 권력에 대한 무력감이라고 해석했다.

최 경위 형의 설명에 따르면 최 경위는 체포되기 전 얼굴이 반쪽이 된 채 형의 집을 찾았다. 가족들과 상의해 변호사를 고용, 자신을 방어하기 위함이었다. 당시 사정이 넉넉지 않았던 최 경위는 변호사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어머니의 임대아파트 보증금 3500만 원을 빼야 할 형편이었다.

최 경위는 승산이 없는 싸움에 어머니 자금을 빌린다는 것에 대해 고통스러워했다고 한다. 최 경위는 ‘내가 변호사 사는 것도 아깝다’, ‘이거 해봐야 되지도 않을 거고, 이건 아니다. 그냥 하지 말까’라며 괴로워했다. 그리고 조사 받으러 가기 전 형에게 ‘형, 애들 좀 부탁해’라고 말했다고 한다.

구치소 직원이 가혹행위 제보

최 경위 형에 따르면 동생이 조사를 받을 무렵 구치소에서 누군가 제수(동생 아내)에게 전화를 걸어왔다. 구치소 관계자가 당시 최 경위가 조사 받던 상황을 알려줬다고 한다. 당시 조사관들이 소변도 못 보러 가게 하고, 밥까지 굶겼다고 했다. 가혹행위가 있었다는 것이다. 또 한겨울에 얇은 외투를 입은 최 경위가 벌벌 떨게끔 방치했다며 형은 분통을 터트렸다.

최 경위의 동료 한일 전 경위는 2014년 12월 초 검찰에서 “최 경위에게 문건을 넘겼다”고 진술했고, 최 경위는 언론에 이 문건을 제공한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다가 목숨을 끊었다.

한일 경위는 최근 언론에 나와 당시 청와대의 협박과 회유가 있었다고 폭로했다. 한일 경위는 사건 2년 만에 입을 열어 “청와대가 민정비서관실 직속 특별감찰반 행정관을 보내 나를 회유했다”며 청와대의 수사 개입을 털어놨다. 그는 “검찰이 나에게 ‘문건을 빼내 최 경위에게 전달했다’고 자백하면 불기소 편의를 봐주겠다”고 제안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를 거절하자 이튿날 새벽 긴급체포됐다고 했다.

고 최 경위는 이러한 사실을 미리 예측한 것으로 보인다. 최 경위는 아내에게 ‘한 경위가 회유될 것 같다고, 마음이 약해서 걱정’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또 최 경위는 “한일에게. 나는 너를 이해한다. 민정비서관실에서 그런 제의가 들어오면 당연히 흔들리는 것은 나도 마찬가지”라고 쓴 유서를 남기기도 했다.

“자살토록 만든 것…그 정점에 우병우”

최 경위 형은 동생의 죽음은 자살이 아닌 ‘타살’이라고 주장했다. 당시 권력자들이 유출 누명을 뒤집어씌워 자살로 몰고 갔다는 것이다. 최 경위 형은 “동생이 검찰 조사에서 자신에게 ‘(유출)네가 시켰잖아’라며 주동자로 몰아갔다고 했다”면서 “동생은 미치도록 억울해했다”고 말했다.

최경위 형은 이를 주도해 ‘기획’한 인물로 우병우 전 민정수석을 꼽았다. 한일 경위도 유사한 증언을 했는데, 당시 협박과 회유, 불기소 편의 보장 등을 제시한 쪽이 청와대 민정비서관 쪽이라고 했다. 당시 민정비서관은 우병우 전 수석이었다.

이 사태와 관련해 빠지지 않는 인물이 있다. 바로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다. 김기춘 전 실장은 정윤회 문건 작성을 실제 지시했고, 이를 받아봤지만 덮기에 급급, 오히려 박관천 경정을 해임했다고 알려진 인물이다. 김기춘·우병우 모두 2014년 정윤회, 2016년 최순실의 국정농단 사태에 핵심 인물로 거론된다.

이들의 범죄 의혹에 대한 성패는 결국 최근 본격적인 닻을 올린 ‘특검팀’에서 갈릴 것으로 보인다. 역사 앞에 죄를 엄하게 물어야 한다는 여론이 커가는 가운데 특검팀의 수사 칼날에 국민적 관심이 쏠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