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인터뷰] 판도라 상자 연 배우 김남길, 애절한 절규로 관객의 마음을 훔치다
[일요서울 | 김종현 기자] 영화 ‘해적: 바다로 간 산적’을 통해 다시금 대중적 인기를 한 몸에 사로잡았던 배우 김남길이 영화 ‘무뢰한’에 이어 ‘판도라’를 통해 한층 더 친숙한 모습으로 대중들에게 다가 섰다. 특히 그는 영화 속 절규를 통해 오로지 가족을 지키기 위한 평범한 서민들의 애환을 담아내 영화가 주는 무거운 소재를 가족애라는 따듯함으로 바꿔냈다. 스스로 진화하기 위해 다양한 가능성을 실험하고 있는 배우 김남길의 연기 인생을 만나봤다.
영화 ‘판도라’를 통해 가족을 향한 애잔함을 들고 온 배우 김남길은 지난 2일 서울 종로구 소격동 한 카페에서 [일요서울]을 만나 개봉을 앞두고 여러 이야기들을 꺼내 놨다.
오랜만에 대중들에게 얼굴을 드러낸 그는 평상시 보다는 다소 핼쑥한 모습으로 인사를 전했다.
김남길은 “최근 몸이 안 좋아져서 살이 좀 많이 빠졌다”며 한동안 병원 치료를 받을 정도였다고 귀띔했다.
하지만 힘겨운 모습에도 그의 얼굴에 미소를 불어 넣은 건 단연 작품에 대한 애정이었다.
그는 “‘판도라’는 생각했던 것보다 아쉬운 것도 있고 재난영화라기보다 가족애가 중심”이라며 “재난 영화 촬영의 특성상 배우들끼리의 합이 잘 안 맞았지만 생각했던 것보다 그림이 잘 나온 것 같다”고 만족감을 내비쳤다.
특히 김남길은 이번 촬영의 공을 보조 출연자들에게 돌렸다. “피난민의 행렬을 연기하신 분들이 직접 뛰시고 사실감 있게 표현해주셔서 실감나게 잘나왔다”고 흡족해 했다.
더욱이 그에게 마지막 장면은 이번작품을 선택하는 결정적 단서였다.
김남길은 “재혁(김남길 분)이 같은 경우는 대사나 정서적 전달부분에서 욕심이 나는 장면이 있었다. 헐리웃 히어로물 같지 않고 한국적인 정서일지는 모르지만 신파적인 정서에 그 공포를 굉장히 사실적으로 그려진 것 같아서 욕심이 났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번 작품에 대해 여전히 아쉬움이 가득한 눈치다.
특히 촬영한지 좀 오랜만에 완성작을 봤을 때 사투리를 구사하는 부분이 여전히 어색하다는 게 그의 고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판도라’만의 차별성에 대해 김남길은 “재난 영화는 다 비슷비슷하다고 생각했다. 시나리오를 받았을 당시 현실적으로 일어나지 많을 것이라고 믿고 접근해서 출발했다”며 “감독님도 일어나지 않을 것들을 일어난 것처럼 사실적이었으면 좋겠다는 것에 방점을 뒀다”고 설명했다.
적어도 찍을 당시까지는 한국은 지진 안전지대였다며 “촬영 당시 감독님은 영화를 보는 동안만큼은 다큐영화를 보는 것처럼 만들고 싶다. 좀 더 사실적이고 다른 영화보다 조금 다른 외적인 도움을 받아서 사실적인 느낌이 많이 나는 영화를 만들고자 했다”고 전했다.
다만 최근 복잡한 시국들과 맞물려서는 “연기하는 배우 입장에서 부담은 갖지 않는다”며 “정치적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자연스럽게 받아드리지 않을까 싶다. 부담감이 들 수도 있지만 현실적으로 보면 공감을 하게 되고 희망을 찾자는 얘기가 전부”라고 담담히 속내를 드러냈다.
실제화하기 위한 여러 어려움 속에서도 특히 경험하기 힘든 방사능을 표현하기 위해 제작진과 배우들의 많은 고민이 담겨 있었다.
김남길은 “방사능이 눈에 보이지 않는다. 시각적 효과가 아니라 공기 중에 떠다니는 것이다. 피난민들에게 공기 중에 떠다니는 것이 묻어나는 느낌, 보이지 않아 아수라장이 되는 공포로 대신했다”며 “실제 자료들을 접했을 때는 더 잔인하고 끔직했다. 하지만 보시는 분들이 거부반응이 있을까봐 반점 등으로 대신했다”고 말했다.
이 같은 사실적인 표현 속에서는 김남길 스스로가 시도하는 연기자세의 변화도 숨겨져 있다.
최근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겠다는 언급을 자주 하는 그는 “선배들에게 조언을 구하면 ‘연기를 하지 않을 때가 좋은 연기’라고 말씀하신다”며 “20대 때는 얼굴 근육으로 표현하곤 했는데 ‘해적’ 때 처음 그런 것들을 깨닿고 ‘내가 과도기가 오고 있구나’ 정체성 대해 고민하는 때였고 ‘무뢰한’은 힘을 빼는 것을 시도해보는 계기였다. ‘판도라’는 거기서 더 나아가는 입장에서 가장 자연스러운 본연의 모습을 극대화하고자 했다”고 속 예기를 전했다.
특히 그는 “누군가가 봤을 때 거부감 들지 않고 철부지를 맞든, 개구쟁이를 연기하든지 제가 갖고 있는 본연의 모습에서 보여주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내 모습 그대로, 그런 식으로 접근하려고 한다”며 “시나리오에서 결정한 캐릭터들을 내 안에서 많이 녹여내려고 한다. 그럴 때 힘을 많이 뺄 수 있다”고 설명했다.
결국 어떤 캐릭터가 되더라도 그 캐릭터화 되는 연기를 하고 싶다는 게 김남길의 바람이다. 다만 그러기 위해 아직 많은 시간과 작품이 필요하다며 “천천히 하나하나씩 하려고 한다”고 강조했다.
가장 인상적인 촬영에 대해 그는 마지막 장면을 꼽았다.
김남길은 “마지막 장면에서 실제 쓰러졌다. 그 장면이 부담스럽게 느껴졌는데 촬영당시 욕심이 나기도 했는데 힘들었다. 두 번을 찍고 난 뒤 아쉬우면 다시 해보겠냐는 제안에 ‘나는 못하겠다’고 말할 정도로 힘들었다. 정상적인 감정을 전달하기 힘들었고 표현은 하고 싶은데 모자란 점을 인정하는 게 분하고 눈물 나고 자존심이 상했다. 내 몸에 분장팀의 손이 닿는데 감정이 폭발할 것 같을 정도로 예민해졌었다”고 회상했다.
그러나 결국 김남길은 3번째 촬영을 강행하며 박 감독의 갈증을 풀어냈다.
이 같은 투혼은 박 감독과는 끈끈한 동료애로부터 출발한다. 그는 촬영 전 수시로 박 감독을 만났고 사무실에 자주 드나들 정도로 감정을 완성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였다.
김남길은 “늘 사전 작업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스태프들과 연기를 공유해야 하고 집이 가까워서 종종 사무실에 갔다”며 “시간도 넉넉했고 집에서도 주지 않는 밥도 준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하지만 어떻게 연기를 해야 할까가 늘 김남길의 끊임없는 관심사였다.
덕분에 그는 시나리오를 고르는 작업부터 연기에 맞춰져 있다. 그는 “작품을 고를 때는 스토리가 중요하다. 영화라고 꼭 메시지를 전달해야 하는 건 아니다. 어떤 것이 중요한지 나한테 이해가 돼야한다”며 “아직은 모든 것이 버거워 연기를 어떻게 풀어나갈 지를 고민 하는 것이 우선순위”라고 전했다.
최근 변화된 연기 자세처럼 이제는 판단 기준도 바뀌었다고 털어놨다.
김남길은 “예전에는 해보고 싶어 접근을 하면서 굉장히 구체적인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요즘엔 단순해졌다”면서 “욕심을 많이 비우기도 했고 있는 그대로 편하게 할 수 있는 만큼만 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경험해 보지 않았기 때문에 억지로 보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단순해 졌다. 힘을 빼고 싶다는 의지가 반영됐다”고 말했다. 실제 스스로에게 자연스러워야 한다고 세뇌 시킬 정도다.
그는 “사람은 돌아가려는 습성이 있다”고 경계심을 드러내며 “‘판도라’도 단순한 선택에서 출발했다. 도전해서 표현해보고 싶은 장르가 있었고 이야기가 재미있었다”고 털어놨다.
덕분에 김남길은 시나리오 선택에 대중성이나 상업성을 고려하지 않는다며 “사실 그런 작품들을 많이 해왔다. 뒤에 개봉할 영화들도 상업적인 면은 떨어진다. 아마 ‘판도라’가 제일 상업적일 수 있다”고 전했다.
그는 “요금 영화계가 성공의 기준을 1000만 관객 기준에 맞추고 있어 그런 작품들만 만들어지는 경향이 있다. 작은 영화는 많이 안 만들어지는 우려도 나온다. 투자자입장에서는 큰 영화들 위주로 흘러가고 있지만 이에 대해 꼭 사명감이 있는 건 아니다. 이야기와 소재를 고르다 보니 주로 작은 영화를 선택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주변에서 “해야 될 연기, 하고 싶은 연기를 구별해야 한다고 걱정들을 한다. 무슨 뜻인지는 알지만 제 성향이 꽂혀야 하는 스타일이다. 행여나 마이너적인 느낌도 날 수도 있다”면서도 판단이 단순해 지다보니 크게 연연하지는 않는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다만 김남길은 “정서적인 표현을 잘해서 보는 관객 분들이 김남길이 하는 연기를 보고나면 여운이 정서적으로 가득 차있는 느낌이 들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싶다”며 오로지 연기로 승부수를 던지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이와 더불어 최근 화두가 된 ‘길스토리’에 대해 묻자 “길스토리를 드러내려한 것은 아니다. 눈에 보이는 성과가 있는 것도 아니고 참여하시는 분들이 그저 (포장된) 이미지를 보여주기 위한 것처럼 보일 수 있어서 조심스러웠다”면서 “혼자 할 때는 괜찮지만 그런 왜곡돼서 보여 지는 것들을 조심해야겠다고 생각해서 숨어서 했는데 제도적인 것들 때문에 비영리단체를 만든 것 뿐”이라며 거창한 것도 아니고 별개 없다고 말을 아꼈다.
다만 “그저 제가 조금씩 변화되는 것들, 주변사람들과의 이해, 각박해지고 이기적으로 변화는 마음에 대해 근본적인 것들의 해결, 제도적인 것은 잘 모르지만 내가 느낀 것들을 사람들과 같이 나누면 어떨까하는 마음에서 시작을 하고 있다”고 수줍은 웃음으로 대신했다.
한편 영화 ‘판도라’는 원자력 발전소가 들어서 있는 시골마을에 지진이 발생하고 이어 원자로가 폭발하면서 아비규환에 빠지게 되고 초유에 재난 앞에 한반도는 혼란에 휩쌓인다. 컨트롤타워마저 흔들리며 최악의 사태에 접어드는 가운데 발전소 직원인 ‘재혁’과 그의 동료들이 오직 가족들을 구하겠는 심정으로 사투를 벌이를 과정을 사실감 있게 그려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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