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 넷을 죽이고도 웃기네∼
2007-08-29
<죽어도 해피엔딩>은 원작의 설정을 무리하게 한국식으로 변용하지 않으면서도 가볍고 경쾌하게 진행되는 블랙코미디의 본질을 그대로 살렸다.
칸 국제영화제 여우주연상 수상이 유력시되는 예지원(예지원)의 집에 예상치 못한 네 명의 손님이 찾아온다. 바람둥이 데니스(리차드 김), 무식한 조폭 최 사장(조희봉), 속물 지식인 유 교수(정경호), 소심한 영화연출자 박 감독(박노식)이 프러포즈하기 위해 그녀를 찾은 것. 네 남자의 청혼에 정신을 못 차리는 지원은 기쁨도 잠시, 남자들이 하나둘 예기치 못한 사고를 당하면서 위기에 봉착한다. 매니저 두찬(임원희)의 도움을 받아 이 상황을 모면하려 하지만 손을 쓰면 쓸수록 상황은 더욱 최악으로 치닫는다.
강경훈 감독의 데뷔작 <죽어도 해피엔딩>은 프랑스영화 <형사에겐 디저트가 없다>를 리메이크한 작품이다. 여류 추리소설가가 남자친구들을 초대한 후 벌어지는 원작의 잔혹유머를 살짝 비틀어 청혼하러 온 네 남자와 여배우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소동극으로 다룬 것.
<죽어도 해피엔딩>의 탁월함은 원작의 설정을 무리하게 한국식으로 변용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대신 원작에서 상대적으로 소홀하게 다뤘던 캐릭터 묘사에 더욱 힘을 실었다. 원작보다 캐릭터의 수를 두 배 이상 늘리는 한편, 각자의 개성이 확연히 드러나게끔 세부 묘사에 공을 들였다. 이 과정에서 감독은 라이터, 시계, 사탕 같은 소홀히 넘기기 쉬운 물건들을 통해 캐릭터의 개성을 부여하는 세심한 연출을 선보였다.
특히 여러 상황이 복합적으로 충돌해 웃음을 선사하는 이 영화에서 소품의 활용은 더욱 빛을 발한다. 주변 도구들을 능수능란하게 활용하는 성룡의 액션을 보듯 빠른 사건 전개의 묘미와 웃음을 동시에 선사한다.
<죽어도 해피엔딩>은 저예산 HD포맷으로 제작해 깜짝 흥행에 성공한 <달콤, 살벌한 연인>을 떠오르게 한다. 싸이더스FNH 제작, 저예산 영화가 주는 순간적인 재치와 최소한의 공간에서 모든 상황이 이뤄지는 경제적인 연출, 그리고 배우들의 앙상블 연기 등 여러 면에서 닮아 있다.
물론 아쉬움이 없지는 않다. 모든 캐릭터를 사건과 엮고, 모든 인물들에 개성을 부여하려다 보니 후반부로 갈수록 전개가 산만해진다는 인상은 어쩔 수 없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상황 전개와 맛깔스러운 배우들의 연기가 빛나는 <죽어도 해피엔딩>은 덩치 큰 영화가 대세로 여겨지는 요즘 한국영화 풍토에서 의미 있는 성과로 남을 것이 분명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