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내 편 맞지?”

2007-04-20      
비열한 거리

유하 감독의 신작 <비열한 거리>는 뒷골목 건달들의 세계를 직설적으로 그린 영화다. 살아남기 위해 칼을 꺼내 들고, 자신이 죽지 않기 위해 상대방을 찌르는 싸움과 배신이 숨 가쁘게 이어지면서 영화는 비정한 세계의 핵심을 향해 거침없이 치고 들어간다. 유하 감독은 적당히 세상과 타협하지 못하고 앞만 보고 달려갈 수밖에 없었던 한 건달의 비극적 운명을 육중한 화면에 담는다.

<말죽거리 잔혹사> 이후 2년 만에 돌아온 유하 감독은 섬세한 화법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조폭 영화 주인공이 겪을 수밖에 없는 좌절이 <비열한 거리>에선 정면으로 응시된다.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출세에 몰입했던 병두(조인성)는 조폭사회의 먹이사슬 앞에서 꿈을 접을 수밖에 없다. 자신의 손에 피를 묻히면서 가까스로 황회장(천호진)의 오른팔 위치까진 올라서지만 안정된 지위에까진 이르지 못한다. 그곳을 향해 도약하려고 하는 순간 세상이 이미 만들어놓은 장애물에 그만 좌절해 버리고 만다.

유하 감독은 <비열한 거리>를 통해 되물림될 수밖에 없는 폭력 구조를 보여준다. 힘으로 타인을 굴복시키는 ‘폭력’이 ‘권력’ 앞에서 얼마나 이율배반적일 수밖에 없는지 이 영화는 제대로 보여준다. 병두가 겪는 고통이 뼛속 깊이 스며들 만큼 <비열한 거리>의 화면은 가식이 없고 냉정하다.
이처럼 <비열한 거리>에서 비쳐지는 ‘병두’의 이야기는 온 몸 구석구석이 아플 정도로 슬프다. ‘병두’의 비극적 삶이 성공하기 위해 발버둥 칠 수밖에 없는 우리네 이야기가 너무나 닮아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영화가 진행될수록 관객들은 날카롭게 가슴을 베는 듯 한 통증을 느끼게 된다.

<비열한 거리>는 ‘병두’의 눈으로 본 세상 살아가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다. 병두는 민호가 의리 넘치는 조폭 영화를 만들어 주기를 바라지만 세상이 그렇지 않다는 것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은 그 세계에 몸을 담고 있는 자신이다. 이들의 삶에는 희망이 없다. 주먹질 말고는 잘 하는 것이 없는 이들은 이 세상에서 가장 ‘강한 자’인 동시에 ‘약한 자’다. 그래서 살아남기 위해서 살인도 불사하는 이들의 모습을 우리는 차분하게 바라볼 수 없다.

<비열한 거리>의 미덕은 조폭과 민간인이라는 이분도식에 빠지지 않고 이야기를 풀어나갔다는 점이다. 처음 이 영화의 시나리오를 쓸 때부터 유하 감독은 조폭을 미화하지도 않고 그들에게 도덕적 잣대를 들이댈 마음도 없었다. 배우의 능력을 최대한 끌어낼 줄 아는 유하 감독은 모든 상황을 치열하게 화면에 담아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