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공공기관장 22명 미임명 내막
‘최순실 때문에…’ 공공기관 인사 사실상 마비상태
[일요서울 | 오두환 기자] ‘최순실 게이트’로 인해 국정이 사실상 마비 상태다. 매일같이 새롭게 터져 나오는 ‘최순실 게이트’ 내용에 국민도 질릴 지경이다. ‘이게 나라냐’는 말이 절로 나온다. 이런 가운데 전국 공공기관장 임명 상황도 사실상 정지 상태다. 전국의 공공기관장들의 임기가 끝나거나 사직을 했음에도 후임 인선이 되지 않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최순실 게이트’로 인해 국정을 정상적으로 다스릴 수 없는 상태기 때문이다. ‘탄핵’ ‘하야’ 요구가 빗발치는 가운데 섣불리 공공기관장을 임명했다가는 여론의 뭇매를 맞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계속 해서 자리를 비워둘 수는 없는 법, 안정적인 국가 운영을 위해서라도 해결책이 필요한 상황이다.
과도 내각 구성 되면 인사 원점 재검토될 수도
이번 기회에 각 공공기관장 임명 시스템 바꿔야
기획재정부에서는 매년 연말이 되기 전 공공기관 평가 지침을 각 공공기관에 내려 보낸다. 다음해 사업을 계획하기 전 평가 및 준비 기준이 될 수 있는 내용이 담겨 있어 사실상 기관 지침서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올해는 예년과 달리 아직도 각 공공기관에 평가 지침서가 내려오지 않았다. 작년엔 9월에 내려보냈는데 두 달이 지나도록 소식이 없는 것이다. 기재부에서는 수정요구가 많아 늦어진 것이라고는 하지만 최근 사실상 마비된 국정 운영 상태 영향이라는 소문도 있다.
보은 인사했다가
역풍 맞을라
‘최순실 게이트’가 터지면서 사실상 공무원들도 업무에 손을 놓고 있는 상황이다. 지금 상황에서는 ‘손을 대지 않는 게 일을 만들지 않는 것’이라는 말도 심심찮게 들린다. 한마디로 보신주의가 만연한 상황이다.
각 공공기관의 인사는 사실 마비상태다. 총리, 장관 등도 언제 물러날지 모르는 상황에서 공공기관장 임명여부에 신경을 쓰는 공무원도 거의 없다. 그러다 보니 임기가 끝난 공공기관장들이 그대로 자리를 지키거나 공석으로 있는 공공기관장 자리가 20여개가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공공기관장은 임기 만료 2달 전 각 기관 임원추천위원회가 공고, 서류심사, 면접시사 등을 거쳐 3배수로 후보를 추천한다. 그러면 기재부 산하 공공기관운영위원회에서 2배수로 추린 뒤 해당 부처 장관이 적합한 인물을 정하고 대통령이 최종 임명하게 된다.
하지만 ‘최순실 게이트’로 사실상 업무정지 상태인 박근혜 대통령과 해당 정부부처는 공석이거나 임기가 만료된 공공기관장 후임 인선에 선뜻 나서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과거 임기 말년에는 대통령 최측근 등을 보은 차원에서 공공기관장 자리에 앉히는 경우가 많았지만 박근혜 정부의 현 상황은 그럴 처지가 아니다.
단수 추천 받고도
임명장 못 받아 대기
현재 공석인 공공기관장 자리는 지난 3월 임기가 끝난 한국석유관리원, 지난 9월 임기 종료된 대한석탄공사, 10월 종료된 한국전력기술, 11월 8일 임기를 마친 한전 KPS 등이다. 대략 22곳이 넘는다.
후보 추천 절차를 마치고도 대통령 임명이 이뤄지지 않은 곳도 많다. 한국수력원자력 사장 후임으로 최근 이관섭 전 산업통상부 1차관이 단수 추천됐으나 임명장 수여식이 늦어지고 있다. 지난 9월 22일 임기가 끝난 남동발전 사장에는 장재원 이사가, 서부발전 사장에는 정하황 전 한수원 기획본부장이 각각 추천됐으나 역시 청와대 임명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런 가운데 오는 12월 말 임기 만료를 앞두고 있는 공공기관장도 있어 공공기관장 공백 사태는 더욱 더 커질 전망이다. 한국마사회 현명관 이사장, 한국도로공사 김학송 사장, 농림수산식품기술기획평가원 이상길 원장, 한국국토정보공사 김영표 이사장, 한국무역보험공사 김영학 사장 등이 12월 말 임기가 만료된다. 문제는 해당 공공기관 대부분에서 아직까지 후임 인사추천위가 개최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한국예탁결제원의 경우 유재훈 사장이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 회계감사국장에 임명돼 한 달 정도 일찍 퇴임했다. 하지만 임원추천위원회만 형식적으로 구성했을 뿐 이후 제대로 된 선임 절차를 진행하지 못하고 있다.
낙하산 내려오느니
없는 게 더 낫다
상황은 급박하지만 마땅한 해결책도 없는 상황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전면에 나서 국정운영을 할 수 없는 상황인데다 누구하나 선뜻 나서 공공기관장 인사의 필요성을 말하는 사람도 없다. 이런 가운데 야권에서 추진 중인 과도 내각이 구성된다면 인사권까지 가져갈 확률이 높은 만큼 지금까지 진행됐던 공공기관장 임명이 원점에서 다시 시작될 수 있는 상황이다. 그러다 보니 정부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다.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상황이다 보니 공무원 사회 내부에서는 ‘대통령의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다’라는 여론도 흘러 나오고 있다. 공공기관장 임명은 물론 진행할 수 있는 사업이 없어 사실상 손을 놓고 있어야 하는 상황에서 나오는 볼멘소리다.
또 일각에서는 ‘어중간한 낙하산이 내려와 기관을 망치는 것보다 현 상태가 낫다’는 말도 나오고 있다. 역대 정권 대부분 각 공공기관장을 낙하산으로 내려보내다 보니 전문성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자연스럽게 공공기관으로서 제 역할에 충실할 수 없었다.
오히려 이번 기회에 각 공공기관장 임명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는 여론도 나왔다. 외부 낙하산보다는 내부 승진 인사를 정착시켜 공공기관으로서의 역할을 강화하고 전문성을 키워야 한다는 소리다. 설득력이 있는 말이지만 이 또한 내부인들이 나서지 않는 이상 현실적으로는 쉽지 않은 게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