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추적] 부산 엘시티 이영복-현기환 커넥션 ‘대해부’
이 회장, 아들 살리려 닫혔던 자물쇠 입 연다
[일요서울 | 오두환 기자] 부산 해운대 엘시티 관련 500억 원대 회삿돈을 횡령한 혐의를 받았던 이영복 회장이 자수한 지 보름여가 지났다. 하지만 검찰의 수사가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이 회장 자수 초기만 해도 정치권을 강타할 초강력 이슈가 터질 것 같은 분위기였지만 너무나 잠잠한 상황이다. 그동안 최순실과 계를 함께 했던 것이 밝혀지긴 했지만 사건의 핵심인 정치권 로비 등에 대해서는 딱히 밝혀진 것이 없다. 그나마 최근 엘시티 사업 연루 의혹을 받고 있는 현기환 전 청와대 정무수석이 출국 금지를 당하고 자택이 압수수색을 당하면서 정치권을 향한 검찰의 수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됐음을 짐작할 뿐이다.
심리 불안한 이 회장, 아들 때문에 심경 복잡
현기환 전 수석 분양가상한제 해지 앞장서
검찰의 수사가 속도를 내지 못하는 이유는 이 회장의 ‘자물쇠 입’을 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회장의 무거운 입은 이미 정재계에서 유명하다.
이 회장은 1998년 다대·만덕지구 택지개발 비리 의혹 당시에도 검찰수사에서 자신을 돕거나 로비의 대상이 됐던 인사들에 대해 이름을 끝까지 밝히지 않았다. 모든 죄를 자신이 떠 않고 구속되는 상황에 몰렸어도 절대 입을 열지 않았다. 이 회장의 행동을 본 인사들은 “이 씨 돈은 안심하고 받아도 된다”는 말을 할 정도였다.
하지만 최근 이 회장을 면담한 변호사의 말에 따르면 이 씨가 심경의 변화를 일으키고 있는 것 같다. 이 회장의 변호인은 지난 22일 이 회장을 접견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당시 이 회장이 ‘너무 힘들다’며 펑펑 울었다고 전했다.
수사가 장기화 될수록 심리적인 압박감이 크고 우울증과 공황장애를 앓고 있어 몸과 마음이 많이 지쳐 있었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또 재범이라 형량이 길어질 것을 우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다른 이유는 이 회장의 아들 때문이다. 이 회장은 아들과 함께 엘시티 시행사인 청안건설을 운영하고 있다. 실질적인 주인은 이 회장이지만 현재 운영은 아들이 맡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자칫 잘못할 경우 자신은 물론 자신의 아들까지 피해를 입을 수 있는 상황이다 보니 심경이 복잡할 수밖에 없다.
이영복 자수
아들 위한 선택?
이영복 회장은 지난 10일 자수 했다. 이 회장은 이틀 전인 8일 이미 변호사를 통해 자수서와 함께 검찰에 출두하겠다고 의사를 밝혔었다. 하지만 10일 이 회장은 심경의 변화를 일으켰다.
자수를 위해 가족, 지인과 차 2대에 나눠 타고 서울에서 부산으로 향했지만 저녁 8시경 천안에서 갑자기 방향을 틀었다. 마음이 바뀐 것이다. 결국 차는 다시 서울로 향했고 서울에 도착할 즈음 다른 차에 타고 있던 아내가 경찰에 신변보호를 요청했다. 이 회장은 저녁 9시를 조금 넘어 서울 모 호텔 근처에서 출동한 경찰에 붙잡혔다.
당시 이 회장이 심경의 변화를 겪은 데에 대해서는 분석이 다양하다. 자수 의사를 번복했다가 다시 자수를 한 것에 대해 검찰의 압박과 설득이 통한 것으로 보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아들을 살리기 위한 이 회장 아내의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는 소문도 들린다. 이 회장이 형사처벌을 피할 수 없는 상황에서 계속 도피행각을 벌인다면 청안건설을 운영하는 아들에게 검찰의 손길이 미칠 것은 불을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이 회장 아들은 서울대를 졸업한 후 부산에서 아버지와 함께 청안건설을 운영하며 다양한 사업을 벌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회장의 아내는 남편보다는 아들을 걱정할 수밖에 없었고 서울에 도착할 즈음 경찰에 전화를 건 것도 이 회장 아내의 의지가 강하게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도 도피 과정에서 이 회장을 설득하기 위해 가족을 통해 회유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평생 도피생활을 할 수 없는 점과 자수를 해야 정상참작이 가능한 점이 이 회장의 마음을 바꾸는 데 결정적 요인이 됐을 것이라 분석이다. 하지만 이 회장은 자수를 한 뒤에도 입을 열지 않고 있다. 과거와 똑같이 자신과 연루된 일체의 관계자에 대한 진술을 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검찰이 아들을 무기로 이 회장을 압박한다면 이 회장이 계속 입을 다물고 있을 것이란 보장은 없다.
검찰은 이영복 회장이 엘시티 사업을 진행하며 500억 원대 비자금을 조성한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이 비자금이 정치인이나 인허가권을 가지고 있는 부산시 고위간부, 국정원, 언론 기관의 유력인사 등에게 흘러갔는지를 파악하는 것이 이 사건의 핵심이다.
알선수재 혐의 받는
현기환 전 정무수석
당연히 사건의 당사자인 이 회장의 진술이 필요하다. 하지만 ‘자물쇠 입’이라는 별명처럼 이 회장은 입을 굳게 닫고 있다. 검찰 입장에서는 이 회장의 입을 열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이 회장의 아들도 예외는 아니다. 엘시티 비리 의혹은 최순실 게이트와 함께 국내 정치판도를 뒤 흔들 수 있는 사건이다.
현재 엘시티 비리와 관련해 검찰의 수사를 받고 있는 인사는 현기환 전 청와대 정무수석, 전 국정원 부산지부 처장 정모씨, 정기룡(59) 부산시 경제특보 등이다. 이밖에 여야를 막론하고 현역 국회의원들도 이름이 오르내리고 있지만 본격적인 수사를 받은 인사는 아직 없다.
수사를 받은 인사 중에는 현기환 전 청와대 정무수석이 가장 큰 주목을 받고 있다. 검찰은 현 전 수석에 대해 알선수재 혐의를 적용할 방침이다.
검찰은 현 전 수석이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엘시티 사업과정에서 알선이나 부당한 압력을 행사한 단서를 포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 전 수석의 휴대전화 분석 등 혐의내용을 확인하고 본격적인 수사를 진행할 예정이다.
엘시티 사업은 시행 전부터 특혜성 인허가·대출, 포스코건설 시공사 참여 등과 관련해 이 회장의 정관계 로비설이 끊임없이 제기돼 왔다. 검찰은 수사과정에서 현 전 정무수석의 범죄 혐의 단서 일부를 포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 전 수석에 대한 압수수색과 출국금지도 이 단서 때문에 취한 조치라는 것이다. 하지만 현 전 수석은 지난 21일 ‘엘시티 수사와 관련한 입장’ 자료를 통해 “엘시티와 관련한 의혹을 다룬 보도는 모두 사실이 아니다”며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추측보도에 대해서 법적으로 대응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현 전 수석, 엘시티 위해
법안 고쳤나?
검찰이 현기환 전 청와대 정무수석과 이영복 회장과의 관계에 대해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는 이유는 현 전 수석이 18대 국회의원 시절 ‘해운대 엘시티’ 사업에 유리한 법안을 발의했던 전력도 한 몫하고 있다.
현 전 수석은 지난 2009년 5월 ‘주택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당시 부산은 초고층 복합건축물에 대해 분양가상한제를 적용하고 있었는데 경제자유구역 및 관광특구 내 50층 이상 초고층 아파트에 대해서는 이러한 제한을 해제해 해당지역을 활성화 하자는 내용이 법안의 골자다.
당시 이 법안은 현 전 수석 등 국회의원 12명이 공동 발의했다. 해당 법안은 상임위를 거쳐 병합 심사된 끝에 대안으로 의결됐고, 2010년 3월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법안 통과 당시 국회 국토해양위원회 수석전문위원이 제출했던 법안 심사보고서에서는 분양가상한제 폐지가 공공택지를 저가로 공급받아 높은 분양가로 분양해 건설업체가 과도한 이익을 얻을 수 있다고 지적했지만 법안은 그대로 통과 됐다. 이외에도 타 지역 개발사업자들과의 형평성 문제를 제기하는 의견도 있었다.
검찰은 황태현 전 포스코건설 사장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포스코 건설 사장이 엘시티 사업에 참여하기 전 현기환 전 수석을 만난 사실도 확인했다.
2014년 이영복 회장의 엘시티 시공사 감사보고서에는 영업손실 116억원, 계속기업으로서의 존속능력에도 의문이 있다고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포스코건설은 책임준공까지 약속하며 시공사로 뛰어들었다.
당시 포스코 권오준 회장의 반대를 무릅쓰고 엘시티와 계약을 성사시킨 인물이 황태현 당시 포스코 건설 사장이다. 그 직전 이 회장이 현 전 수석을 만난점이 검찰은 석연치 않다고 보고 있다.
도피중 현 전 수석과 연락
아들 구명·친박 구하기?
검찰은 이영복 회장이 도피 중에도 현기환 전 청와대 정무수석과 연락을 취한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이 회장은 도피 중 주로 강남일대에 숨어 지냈는데 법조인맥을 찾아 구명활동을 벌인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회장은 주로 대포폰을 사용해 연락을 취했다. 검찰은 이 회장이 사용한 대포폰만도 수십대였던 것으로 확인했다. 확보한 대포폰 통화내역을 분석중인 검찰은 이 회장이 현 전 수석과 통화한 정황을 찾은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서는 친박인사인 현 전 수석과 이 회장이 수사를 앞두고 말을 맞춘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나오고 있다. 박근혜 정부가 위기에 몰린 상황에서 자칫 이 회장이 여권 정치인 또는 친박 인사의 이름을 로비 대상으로 지목할 경우 현 정권은 치명타를 입을 수 있다. 그래서 이 회장이 아들의 구명을 조건으로 현 전 수석과 거래를 했을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이 회장과 호형호제
수사 무마 시도 의혹도
상황이 이렇다보니 현기환 전 수석의 엘시티 사업 특혜 관여 의혹은 점점 짙어지고 있다. 그런 가운데 현 전 수석이 친박인사로 알려지면서 최순실 게이트와 함께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게다가 현 전 수석은 현직에 있을 때 엘시티 비리 의혹 수사와 관련해 검찰 간부에게 수차례 전화를 해, 수사 무마를 시도한 것으로 의심받고 있다. 또 이 회장과 호형호제할 만큼 친분이 두터웠다고 알려져 있다.
검찰은 이 회장의 골프 접대리스트를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회장은 엘시티 사업과 관련해 지난 3~4년 동안 현 전 수석을 비롯 인·허가 등을 담당하는 부산시 행정 부서 인사들과 골프를 즐긴 것으로 알려졌다.
이중에는 현 전 수석 외에도 앞서 검찰 조사를 받은 부산시 정기룡 전 경제특보, 포스코건설 황태현 전 사장, 전 부시장, 부산시장 전·현 은행장 등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감찰은 이 리스트를 바탕으로 수사를 이어간다는 방침이다.
한편 엘시티 비리 관련 야권 정치 인사들도 간간히 이름이 오르내리고 있다. 아직까지는 특정혐의가 밝혀진 인사는 없지만 모두 다 숨죽이고 검찰의 행보를 주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