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취재] ‘동병상련’에 빠진 문재인·안철수
탄핵 정국 전면에서 ‘책임론’ 공방 벌이는 文·安
[일요서울ㅣ유은영 기자] 야당이 ‘촛불민심’을 받들어 뒤늦게 단일대오를 꾸리는 모양새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 정의당 등 야3당은 회동을 통해 박근혜 대통령 퇴진운동과 함께 ‘탄핵’을 위한 준비에 나선다고 밝혔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야당이 주도권을 놓고 수 싸움에 나서면서 한 달이라는 시간이 허비된 셈”이라며 “겉으로는 촛불민심을 내세우지만 사실상 정권 창출을 위한 당론 싸움”이라며 안타까워했다.
특히 야당의 유력한 대선 후보인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와 안철수 국민의당 전 대표의 한 달간의 행보와 관련해 정치권에서는 “국민을 위한 탄핵을 준비하는 것인지 자신을 위한 대선을 준비하는 것인지 구분이 안 된다”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시국 수습과 관련해 말을 아끼며 몸을 사린 쪽과 말을 뱉으며 몸을 내던진 쪽, 결국 둘은 야당의 ‘탄핵’ 전선 맨 앞에서 만나게 됐다. 그리고 ‘탄핵 책임론’을 고스란히 짊어지게 됐다.
- 文, 탄핵 무산 시 정치적 타격 때문에 ‘주저’
- 잃을 것 없는 安, 탄핵에 하야까지 ‘적극적’
문재인 전 대표는 최순실 사태가 발생한 후에도 줄곧 자신의 입장 발표에 조심스러운 모습을 보였다. 그런 그가 스스로의 ‘중대한 결심’을 언급한 것은 박근혜 대통령이 김병준 총리 카드를 꺼내든 직후다. 문 전 대표는 11월 2일 전남 나주 학생독립운동기념관을 방문해 “정치하는 사람의 도리로서 제안했던 거국중립내각 방안을 박근혜 대통령은 거부했다”며 “앞으로도 정치적 해법을 찾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판단되면 ‘중대한 결심’을 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문재인, 뒤늦은 탄핵 주장 왜?
그러나 “지금 국민들의 압도적 민심은 박 대통령이 즉각 하야, 퇴진해야 된다는 것으로 저는 그 민심을 잘 알고 있고 그 민심에 공감한다”며 두루뭉술하고 우회적인 표현에 그쳐 “즉각 물러나라”는 발언을 하는 박원순 서울시장 등 여타 야권 대선주자들과는 다른 모습을 보였다. 이에 대해 정치권에서는 “문 전 대표가 대권주자로서 표심을 의식해 너무 몸을 사리고 있다”며 “대통령 퇴진이 중도층 지지 확장에 걸림돌이 돼 대선전략 차원에서 박 대통령 퇴진을 부담스러워하는 것”이라는 평가가 오갔다.
그렇게 야권으로부터 ‘몸 사리기’라는 비판을 받던 문 전 대표는 15일 기자회견을 통해 공식적으로 입을 열었다. 이른바 ‘조건 없는 퇴진 운동’을 주장하며 나선 것. 그는 “이제는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며 “대통령이 조건 없는 퇴진을 선언할 때까지 저는 국민과 함께 전국적인 퇴진운동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탄핵 논의에 대해서는 선을 그었다. 문 전 대표는 “지금은 탄핵을 논의할 단계는 아니라고 본다”며 “국민의 압도적인 민심은 즉각적인 퇴진을 요구하는 것”이라고 재차 주장했다. 이에 대해 박지원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장은 “민심이, 정당이 박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자 퇴진을 요구했고, 로드맵 자체도 사실 없다”며 기자회견 내용에 대해 유감을 표했다.
최순실 관련 검찰 수사 결과 발표 이후인 21일, 문 전 대표는 드디어 ‘탄핵’을 입에 올렸다. 문 전 대표는 21일 경북대에서 연 ‘대구 대학생과 함께 하는 시국 대화’에서 “정치권이 여러 이유로 박근혜 대통령 탄핵을 주저했으나 검찰 발표로 선택의 여지가 없어졌고 탄핵 사유가 넘쳐난다”며 “국민은 촛불로 퇴진운동을 계속해나가고 정치권은 이와 병행해 탄핵 절차를 밟는 것이 맞다”고 밝혔다. 그리고 23일 ‘숙명여대생과 함께 하는 시국대화’에서는 “이제는 야3당이 탄핵발의에 대해 조금도 머뭇거릴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며 뒤늦게 탄핵 목소리를 높이는 중이다.
안철수, 이재명 때문에 긴장?
안철수 국민의당 전 대표는 야권 대선 주자 중 가장 먼저 대통령 퇴진을 주장하고 나섰다. 안 전 대표는 11월 2일 기자회견을 통해 “더 이상 박근혜 대통령은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아니다”라며 “박 대통령은 즉각 물러나라”고 밝혔다. 야당 지도부가 당론으로 하야나 탄핵을 거론하지 않은 상황에서 안 전 대표의 이 같은 강경 어조는 매우 돌발 행동이었다. 대통령 하야를 내세워 장외로 나설 경우 여론의 역풍을 맞을 것이라는 우려가 아직은 남아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의 강경한 태도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며 11월 첫째 주 리얼미터 주간동향 여론조사에서 0.2% 지지율이 소폭 상승하는 효과를 누렸다.
이후에도 안 전 대표는 박 대통령의 대처법에 대해 강도 높은 비난을 이어갔다. 11월 8일 박근혜 대통령이 정세균 국회의장에게 국회의 국무총리 추천을 공식적으로 요청한 데 대해 그는 “시간벌기용”이라며 “박 대통령이 총리에게 모든 권한을 위임할 것을 약속하고, 총리가 선임되는 대로 물러나는 것이 대한민국을 위해 마지막 애국을 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며 박 대통령을 압박했다. 9일에는 ‘대통령 퇴진’에 같은 목소리를 내는 박원순 서울시장과의 회동을 통해 촛불시위 동참과 비상시국회의 추진에 입을 모았다. 이후에는 서울과 지방 곳곳을 돌며 박 대통령의 퇴진을 촉구하는 서명운동을 펼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일부 시민들은 “하야라는 말도 제대로 꺼내지 못하는 일부 정치인보다 저렇게 거리에서 ‘하야’라고 당당하게 외칠 수 있는 용기가 보기 좋다”는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12일 대규모 촛불집회 이후 여타 야당 후보들이 모두 민심을 수용하며 ‘하야’를 외치게 되자 그의 존재감은 위협받기 시작했다. 특히 세월호 7시간 발언 등 박 대통령의 저격수를 자처한 이재명 성남시장이 연일 강도 높은 발언을 이어가며 관심을 받기 시작하면서 그의 강경 발언들은 더 이상 강경한 것이 아니게 된 모습이다. 이 같은 분위기에 밀려 안 전 대표는 11월 22일 리얼미터 여론조사에서 조사 이래 처음으로 이재명 시장에게 대권주사 호감도 3위 자리를 내주게 된다. 또 ‘대통령 퇴진’을 선점했던 때와 달리 ‘탄핵’에 대해서는 19일 촛불집회 이후 야당의 당론이 모아지며 후보자들 사이에 특별히 강한 인상을 남기지 못했다.
‘탄핵전선’에서 만난 두 사람
야권 유력 대선주자인 문재인 전 대표와 안철수 전 대표는 이제 탄핵과 하야라는 투 트랙 전략을 이어나가는 데 노선을 같이하고 있다. 11월 24일 리얼미터 여론조사 기준 19대 대선주자 지지도에서는 문재인 후보가 21.2%로 1위, 안철수 후보가 11.4%를 기록하며 4위를 달리는 중이다. 정당지지도에서는 더불어민주당이 33.4%로 1위, 국민의당이 17.9%로 2위를 기록했다. 문 전 대표는 당과 개인의 지지도 상승에 힘입어 뒤늦게 탄핵론에 강한 목소리를 내고 있는 중이다. 안 전 대표는 이재명 시장의 추격전 속에 자신의 존재감을 나타내기 위해 탄핵 정국에서 큰 역할을 하려 나설 것이라는 분석이다. 그러나 탄핵전선의 전면에 선 만큼 ‘책임론’ 또한 직격으로 맞게 됐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이번 탄핵의 결과에 따라, 혹은 탄핵 과정에서 나타나는 마찰에 따라 둘은 ‘대선 운명’을 넘어 ‘정치적 생명’을 걸어야 할 수도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