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 사각지대에 놓인 택시기사

“폭언·폭행에 포기하는 마음으로 운행 나서”

2016-11-21     조택영 기자

[일요서울 | 조택영 기자] 지난 7월 부산에서 택시비를 요구하는 기사를 폭행한 사건이 발생했다. 경찰 조사에 따르면 목적지에 도착하고 택시기사가 잠든 승객을 깨웠다. 그러자 승객이 느닷없이 욕설을 하며 주먹으로 택시기사의 얼굴을 수차례 때리고 택시비조차 내지 않았다. 또, 승객은 택시 밖으로 도망가던 택시기사를 쫓아가 휴대전화기로 머리를 수십 차례 내려치고, 철제 안내표지판을 집어 던졌다. 택시 운전기사는 전치 2주의 상해를 입었다. 최근 들어 택시 운전기사들의 안전 관련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다. 블랙박스가 있어도 마찬가지다. [일요서울]에서는 안전 사각지대에 놓인 택시 기사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경찰서 가서 택시비 받아도 시간·비용 손실 너무 커”

운전자 폭행·협박 5년 이하 징역 2천만 원 이하 벌금

지난 17일 수능 당일 다수의 택시회사들은 무료 수험생수송 차량을 지원했다. 또, 일부 개인택시 운행운전사들도 무료 수송을 지원했다. 택시운전사 특성상 저임금·고노동에도 불구하고 인생의 첫 기로에 놓인 수험생들을 위해 지원을 아끼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이처럼 선행을 베푸는 택시기사 내면엔 승객에 대한 두려움도 존재한다.

지난해 수원에서는 여대생이 택시기사를 폭행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여대생 이모(21)씨는 수원시 한 대학교 앞에서 택시를 탄 뒤 갑자기 기사의 목을 잡아당기고 팔에 상처를 입혔다. 당시 만취 상태였던 이 씨는 탑승 지점 인근으로 행선지를 밝히고는 갑자기 “여기가 어디냐”며 기사를 폭행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처럼 택시기사에 대한 음주손님들의 무차별적 폭력 행위는 2차·3차 피해를 일으킬 수 있어 큰 문제가 되고 있다.

승객 중 음주 손님

가장 꺼려져

서울에서 개인택시를 운행을 하고 있는 하모(62·남·가명)씨는 경력이 20년이다. 그는 “승객 중 가장 꺼려지는 대상이 만취객이다. 또, 일반 승객보다 택시업계를 잘 아는 사람들이 행패를 부리는 경우가 많다”며 “만약 사고가 터지게 되면 경찰 조사를 받고, 영업을 못하는 시간이 길어지지만 이것에 대한 임금손실 보상이 없는 경우가 많다. 그러므로 개인합의를 많이 하게 된다”고 말했다. 그는 “승객의 폭언·욕설·폭행 등이 바뀌지 않아 포기하는 마음으로 운행에 나선다”고 전했다.

또, “돈을 못 받을 것 같으면 지인이나 가족 연락처를 달라고 한다. 그러나 잘못된 전화번호를 주는 것이 태반이고, 현장에 도착해서 기다리는 시간도 영업상 큰 손실이다”며 “취객들은 술값 쏘는 것은 안 아까워하면서 택시비 100원에 대한 집착은 상당히 심하다”고 말했다.

하 씨는 “나만 당하는 것이 아니고 주변 동료들 모두가 피해를 본다. 최근 겪었던 승객은 목적지에 도착했는데 그때 돼서 돈이 없다고 했다. 어쩔 수 없이 경찰서로 이동해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갑자기 승객의 태도가 180도 변하더라”며 “느닷없이 눈빛이 변해 카드도 되냐는 질문을 했고, 돈은 받았으나 시간적 손실이 너무 컸다”고 말했다.

블랙박스

현장에선 무용지물

정모(55·남·가명)씨는 서울에서 기업택시를 운행한다. 그는 블랙박스가 현장에서 겪는 상황을 무마해주지는 않는다고 호소했다. 오히려 안하무인 격으로 ‘신고 해볼 테면 해 봐라’는 식이다.

그는 “물론 블랙박스와 GPS덕분에 택시강도가 많이 사라지고, 폭행사고율이 낮아진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취객들은 이성적 판단보다는 본능에 충실하기 때문에 택시내부를 발로 차거나, 블랙박스를 부수려는 행동까지 보인다”며 “운행방해 사고가 많아 지난해부터 ‘여객의 배상 책임’으로 특정범죄가중처벌법이 시행됐으나, 이것을 아는 승객도 많지 않다”고 전했다.

특히, 정 씨는 “담배를 피거나 토사물을 쏟는 경우, 다음 운행을 진행할 수가 없다. 법적으로 영업 손실 비용을 받을 수 있지만 토사물의 경우 시트를 완전히 갈거나 세차를 해도 냄새가 안 빠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나와 마찬가지로 동료들 또한 만취객을 일부러 안 태우는 경우가 많다. 시간과 돈을 날리고, 폭언과 욕설을 당하면서까지 만취객을 태우고 싶은 마음이 없다. 태우면 벌어질 상황이 안 봐도 뻔하다”고 전했다.

특정범죄가중처벌법 제5조 10항에는 ‘운전자 폭행, 협박은 5년 이하 징역 또는 2천만 원 이하 벌금’이라 명시돼 있다. 또 2015년 2월부터 차량오염은 15만 원 이내 세차 실비 및 영업 손실 비용을 배상해야 하며, 운행방해, 차량·차내 기물 파손, 운임 미지불 등 승객의 잘못된 행동은 가중처벌로 이어진다.

시민의식만이

택시기사 살린다

한편, 하 씨는 택시운전사라는 직업이 굉장히 피곤한 직업이라 말했다. 그는 “개인택시의 경우 하루에 7~8만 원 벌기도 힘들다. 특히, 기업택시의 경우 하루 총매출에서 회사사납금을 뺀 금액이 수입이라 ‘빈차’ 표시가 꺼질 새 없이 일해야 하루 5만 원이라도 벌 수 있다”며 “택시비가 오르긴 했어도 노동에 비해 적은 것이 사실이고, 손님들은 기사를 무시하고 하대하는 경우가 많다. 요즘엔 취객이 아님에도 탑승 의사를 발로 표현하는 사람도 있다. 그럴 때마다 자존심이 무너지고, 운전대를 놓고 싶다. 택시운전사들의 인권보호와 시민의식 수립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