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기업 농락하는 美 FDA 브로커들 ‘실체’
등록 확인서와 시험 확인서 모두가 가짜였다
[일요서울 | 오두환 기자] 기업 간 경쟁이 심하다 보니 각종 제품·원료 등을 개발하고 다양한 인증·등록을 받는 것이 필수코스가 돼 버렸다. 작게는 각종 언론사, 컨설팅 회사 등에서 수여하는 ‘대상’들부터 공공기관 등이 주는 인증 및 등록 자료들은 소비자들에게 좋은 홍보거리자 제품 선택의 기준이 되고 있다.
현재 기업들 사이서 가장 인기있고 필수로 인식되고 있는 인증은 식품의약품안전처 등록과 인증이다. 국내 식약처는 물론 미국 식품의약국(FDA) 등록 및 인증을 받는다면 그 제품은 전 세계 어디서나 판매를 용이하게 할 수 있다.
하지만 미 FDA 등록 및 인증이 미국에서 이뤄지다 보니 기업이 직접 신청하기보다는 대행사를 통해 진행하는 경우가 많다. 문제는 이런 대행사들이 국내 기업이 미국에 대한 정보가 어두운 것을 노려 다양한 사기행각을 벌이고 있다는 것이다.
대행사만 믿다가 고객·투자사에 사기친 꼴
대행사 등록·인증 후 반드시 확인과정 필요
사업가 김태영(60·가명)씨는 올 초 황당한 경험을 했다. 김 씨는 평소 여러 기업들에 대해 자문을 하며 투자하는 일을 해 왔다. 우연한 기회에 장래성 있는 기업 A사를 알게 됐고 2억 원을 투자했다.
A사는 첨단 신소재섬유를 개발하던 회사였다. 2005년 설립된 A사는 2010년에는 제네바국제발명전시회에 참가해 금상과 특별상을 수상했다. 이후 2012년에는 지식경제부 장관 표창, 2013년에는 국무총리 표창 등을 받았고 다양한 발명특허를 보유했다.
자연스럽게 해외진출에 대한 시도도 이뤄졌다. 김 씨는 유럽 등에 거주한 경험도 있고 지인이 미국에 거주하고 있어 해외진출을 모색하기 위해 다양한 의견을 타진해 봤다.
기존 A사는 미국 FDA 등에 신소재섬유에 대한 등록을 한 상태였고 기술력에 자신이 있었기 때문에 충분히 사업성이 있을 것이라는 확신도 있었다. 하지만 미국에서 자료를 검토하다 황당한 사실을 알게 됐다.
우리 제품 미국 FDA
등록된 줄 알았는데
A사는 2014년 B사를 통해 자사가 개발한 신소재 섬유의 미국 FDA 등록을 의뢰했다. B사는 등록비용으로 400만 원을 요청했고 A사는 관련 서류를 전달하며 비용을 지불했다.
시간이 흐른 뒤 B사는 미국 FDA 등록과 관련한 각종 서류를 보내왔다. 영문으로 된 FDA 등록확인서와 시험 확인서였다. 이후 A사는 FDA 등록확인서와 시험 확인서를 자사 홈페이지에 공개했고 각종 브로셔 등에 홍보용으로 활용했다. 고객 및 관계사들에게 자사 제품의 안정성과 품질의 우수함을 알리기 위해서였다.
미국 진출을 위해 자료를 확인하던 김 씨는 올 초 이 확인서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미국 FDA 홈페이지를 통해 A사의 신소재 섬유가 등록돼 있는지 확인을 해봤는데 아무리 조회를 해도 등록내역이 나오지 않았던 것이다.
B사가 보내온 등록증과 시험확인서에는 분명 2014년 1월에 등록한 것으로 나와 있었다. 의문이 생긴 김 씨는 A사 C대표에게 연락을 해 사실 확인을 요청했다. 당시까지 C대표는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C대표는 B사에 자초지종을 따졌고 이들이 자신들의 제품에 대해 FDA 등록을 하지 않았단 사실을 알게 됐다. 결국 B사에서 보내왔던 FDA 등록확인서와 시험 확인서는 가짜였다.
2년간 미등록 상태
사기 의심돼
2년여 동안 A사는 자신들이 개발한 신소재 섬유가 미국 FDA에 등록이 돼 있는 줄 알았고 홈페이지, 홍보 브로셔는 물론 여러 투자사 등과 만날 때 활용해 왔다. 김 씨는 “고의는 아니겠지만 결과적으로 A사는 투자사나 고객들에게 사기를 쳐온 꼴이 됐다”며 “A사는 B사에 사기를 당했다. 미국 FDA에 등록 신청하는 법을 몰라 대행을 맡긴 건데 B사는 그 사실을 악용해 나쁜 짓을 한 거다”라고 말했다.
C대표는 B사에 강력히 항의 했다. 그리고 빨리 등록할 것을 요청했다. 더 황당한 일은 항의하고 바로 다음 날 A사의 신소재 섬유가 미국 FDA에 등록됐다고 연락을 해 왔다는 점이다. C대표는 하루 이틀 밖에 걸리지 않을 일을 2년 동안 처리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분노할 수밖에 없었다.
B사가 처음부터 사기를 칠 의도가 있었던 것이 아닌지 의심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다행스럽게 A사가 피해를 본 것이 없어 그냥 넘어 가기로 했다.
이 과정에서 김 씨는 미국 지인 D씨를 통해 새로운 사실도 알았다. D씨는 미국 FDA에 등록을 하는 경우 품목에 따르지만 등록비를 내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 등록 대행사들이 말하는 등록비가 대부분의 경우 실제 등록에 필요한 비용이 아닌 대행비일 수 있다는 얘기다.
D씨는 A사의 경우도 등록비가 아닌 대행비로 400만 원을 지불 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대행비 등록비로 속여
대행사만 배불려
국내에서 미국 FDA 등 해외 인증 등록 대행을 해주는 업체직원과의 통화에서도 이러한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서울에서 활동하는 대행사 E과장은 “보통 대행비는 80만 원 정도를 받는다. 품목에 따라 대행비가 없는 경우도 있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국내 기업들이 모르는 경우가 많다. 대행비 80만 원도 미국에 있는 현지 대행사와 나누는 식이라 큰돈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문제는 B사를 통해 미국 FDA에 등록을 위탁한 업체가 한둘이 아니라는 점이다. B사의 행동으로 봐서 다른 기업들을 대상으로 똑같은 사기 행각을 벌였을 확률이 높다. 실제 B사에서 등록 대행을 맡긴 기업들도 자사 홈페이지와 브로슈어 등에 인증서와 시험확인서를 올려놓은 경우가 많은데 그 중에는 분명 A사와 같은 사례가 있을 것이라는 게 김 씨의 생각이다.
김 씨는 “우리나라 중소기업들이 부족한 것들이 많이 있다. 당장 미국에서 진행해야 하는 일들이다 보니 무조건 대행사를 믿고 맡기는 경우가 많은데 나쁜 대행사들은 바로 이런 점을 노리고 사기행각을 벌이는 것 같다”고 말했다.
또 그는 “B사의 경우 국내 많은 기업들을 고객사로 둔 것으로 알고 있다. A사처럼 등록비를 한 품목당 400만 원이라고 가정한다면 여러 회사에서 100개 품목만 등록 대행해도 수익이 4억여 원이다. 지금까지 문제가 발견되지 않았을 뿐 피해사실이 드러나면 큰 문제가 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국내 기업들이 미국 FDA 등록과정에서 피해를 입을 수 있는 상황에 많이 노출돼 있지만 마땅한 보호책도 없는 상황이다.
대기업의 경우 본사 또는 해외사무소에서 직접 등록을 할 수 있지만 규모가 작은 영세 기업들은 국내 대행사를 통하는 게 가장 손쉬운 방법이기 때문이다. 또 A사처럼 확인서와 시험인증서 등을 받으면 당연히 등록이 완료됐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아 사기를 당했는지조차 모르는 상황이 발생할 가능성도 높다.
정부 차원의
대비책 필요하다
최근 중기청과 국세청은 미국에 의료기기를 수출하는 우리나라 기업을 지원하기 위해 소기업 확인서 발급 절차를 마련했다.
의료기기를 미국에 수출하려는 기업은 별도의 수출 허가 심사를 위해 ‘수익자 부담금’을 미국 FDA에 지불해야 한다. 이 경우 가장 최근 과세연도 기준으로 매출액이 미화 1억 불 이하인 소기업에 대해서는 일정 부분 수익자 부담금을 감면해준다.
국세청을 통해 기업의 매출액이 소기업 자격 요건에 적합하다는 확인서를 발급 받은 후 이를 미국 FDA에 제출해 최종적으로 소기업 인증을 받게 되면 감면 혜택을 적용받을 수 있다.
이전까지는 국세청의 공식적인 소기업 확인서 발급 절차가 없었고, 의료기기 미국 수출기업들이 미국 식품의약국의 감면 제도 활용방법을 정확히 인지하지 못하여 혜택을 받기가 어려웠다.
A사의 피해사례와는 다르지만 정부기관에서도 미국 FDA 승인에 대한 국내 기업들의 손해를 줄이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시작했다.
가장 오래된
소비자보호기관 미국 FDA
김씨는 “차라리 미국 FDA 인증 및 등록 절차를 국내 식약청 등에서 대행해 주면 모든 문제들이 해결되겠지만 쉽지 않은 일이라는 걸 안다. 다만 국내 기업들이 영업활동을 하는데 있어 제도나 그 등록 절차 등을 몰라 피해를 보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미국 식품의약국은 미국 보건복지부 산하 소비자 보호 기관이다. 1906년 6월 29일 식품위생과 약품에 관한 법률 통과에 따라 식품 및 의약품 관련 감시 기관으로 설립 근거가 마련됐다. 1927년 식품 의약품 및 살충제국이라는 이름으로 특별법을 집행하기 위해 구성됐으며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정부 차원의 소비자 보호기관이다.
FDA에서는 미국에서 생산, 유통, 판매되는 의료기구, 가정용 기구, 화학약품, 화장품, 식품첨가물, 식료품, 의약품 등에 대한 안전기준을 세우고, 검사·시험·승인을 맡아 한다. 이들 업무는 연방식품의약품화장품법, 관리상의과정행위법, 규제약품행위법, 공정포장 및 표시법, 연방거래위원회법 등 FDA 세부 법령에 따라 이뤄진다.
조사, 분석, 연구 및 규정 준수 여부 감시는 국립의료기기 및 방사능보건센터, 생물학 및 연구센터, 의약품 평가 및 연구센터, 식품안전 및 영양센터, 수의약품센터에서 관장한다.
FDA는 시험을 거치지 않은 제품의 판매를 규제할 수 있고 유해한 제품의 판매를 중지시키기 위하여 필요한 법적 조치를 취할 수 있다. 또 소송을 통해 유해한 제품을 압수하거나 법규를 위반한 회사를 고발할 수도 있다. 법적 소송에 제출되는 일반적 과학적 증거는 전국 40개 연구소의 900명의 화학자와 300명의 미생물학자 등 2100명의 연구원들이 수집을 돕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