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서부지하도로 사업 갈등…의원 폭행 사건까지

도로 뚫으려다 꽉 막혔다

2016-11-18     권녕찬 기자

교통난 해소 지하도로 건설…주민 “매연 환기구 전혀 설명 없었다”

서울시, “설명회·공청회 거쳤다”…대화협의체 구성했으나 ‘글쎄’

[일요서울 | 권녕찬 기자] 서울시의 서부간선도로 지하화 사업이 ‘표류’하고 있다. 이 사업은 평소 교통 체증이 극심한 서부간선도로에 지하도로를 만들어 교통난을 해소하자는 취지에서 시작됐다. 하지만 매연 환기구 문제, 졸속 소통 과정 등이 도마에 올라 사업에 제동이 걸렸다. 주민들은 건강과 주민생활에 직결되는 매연 환기구 공사가 어떠한 사전 교감 없이 이뤄진 데 대해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 최근에는 ‘구의원 폭행 사건’까지 겹쳐 갈등이 격화되는 모양새다.

서울시는 서남권역의 상습 교통정체를 해소하겠다며 지하도로 사업을 추진했다. 총 사업비 5280억 규모로 지하도로와 지상도로를 분리시켜 지하는 1.5t 이하인 소형차 전용 도시고속도로, 지상은 일반도로로 추진할 계획이다. 올 3월 착공해 2020년 준공을 목표로 진행되는 이 사업은 영등포구에서 금천구까지 총 10.33km 구간을 왕복 4차로 터널로 뚫는다. 하루 5만대의 차량을 지하로 분산해 지상도로의 정체를 해소하겠단 취지다.

주민의 반발을 부른 것은 서울시가 서부간선도로 지하화 사업을 추진하면서 구로구 구로1동과 신도림동에 지름 11미터, 높이 9미터의 거대한 굴뚝 모양의 ‘환기구 설치 공사’였다. 매연가스를 내뿜는 환기구가 들어설 경우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일대 주민들은 이 시설이 들어서는 것에 대해 “전혀 듣지 못했다”고 입을 모은다.

송영덕 신도림동 환기구 반대 비대위원장도 “지하도로 공사에 매연 굴뚝이 들어선다는 얘기 전혀 들은 바가 없다”며 “공사 5개월이 지난 올 8월 중순 한 주민이 ‘신도림 커뮤니티’라는 인터넷 사이트에 올린 글을 보고 처음 알았다”고 설명했다.

서울시의 졸속 행정의 일례로 구로1동 환기구 공사 주변의 현수막을 들었다. 주수정 구로1동 비상대책위원회 사무국장은 “‘환경 생태 조성 공사’라는 식의 현수막이 붙어 있어 주민들은 그 공사가 매연굴뚝 환기구 공사인지 전혀 몰랐다”며 “그 곳은 사람들이 많이 지나다니는 곳이기도 하다. 서부지하도로 사업에 따른 환기구 공사라고 명시했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서울시와 구로구측은 충분한 설명을 했다고 주장한다. 2014년 9월 구로구청에서 사업 설명회를 하고, 2015년 3월에도 공청회가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주민들은 이 같은 소통 과정이 형식적이었다고 반박했다. 송영덕 신도림동 위원장은 “당시 공청회와 설명회 참석자는 10~20명이었고, 환기구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주민은 거의 참석하지 않았다”며 “구로구청 공청회에 신도림동, 구로1동 주민은 1~2명에 불과했다”고 강조했다.

게다가 환기구가 들어설 위치는 주변 학교와 인접해 있어 주민들의 반발이 더 컸다. 신도림 환기구에선 200여m 떨어진 곳에 초등학교가 있고, 고등학교는 135m 가량 떨어져 있다. 구로구 환기구도 200여m 거리에 초등학교가 위치해 있다.

하지만 시는 환기구가 학교 본관 외벽부터 229m 떨어져 있기 때문에 큰 문제가 없다고 주장했다. 학교 담장으로부터 직선거리 200m 내 유해시설을 제한하는 규정(상대정화구역)에 저촉되지 않는다는 논리다. 이에 주민들은 “학생들이 본관에만 있는 것도 아닌데 이 같은 측정은 말이 안 된다”고 반발했다. 이에 결국 지난 8월 서울시는 환기구 설치 공사를 잠정 중단했다.

구의원 폭행당해 전치 3주

최근에는 서부간선도로 지하화 사업을 둘러싼 폭행 사건도 발생했다. 지난 12일 오전 구일중학교 대강당에서 열린 구로1동 주민간담회에 참석한 구로구 구의원이 한 참석자로부터 물리적 가격을 당한 것이다.

해당 간담회는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구로구을), 이성 구로구청장, 서울시의원, 구의원, 주민 등 350여명이 모여 환기구 문제를 논의하는 자리였다. 사건은 10시부터 12시까지 예정된 간담회가 끝날 무렵 터졌다.

박종여 새누리당 구의원 등에 따르면 간담회가 대관했던 12시를 넘어 지연되자 방송실에 오후 일정을 물으러 갔다. 방송실의 한 학생에게 “다음에 일정이 있느냐”고 물었는데 김모씨(현 학교운영위원장·전 민주당원)가 학생에게 “대답하지 말라”면서 버럭 소리 지르며 박 구의원의 가슴쪽 부위를 밀쳤다. 바닥에 내동댕이 처진 박 구의원은 인근 병원으로 후송됐고, 가해자 김모씨는 현장에서 연행됐다.

박 구의원은 전치 3주를 받았지만 통원 치료를 위해 16일 퇴원했다. 박 구의원은 “현재 목 보호대를 착용하고 있다”며 “가해자를 폭행 혐의로 고소한 상태”라고 말했다. 새누리 구의원들은 16일 오후 구로구의회 앞에서 성명서를 내고 “가해자 김모씨는 전 민주당원으로 박 구의원을 잘 알면서도 폭력을 저질렀다”며 “법적으로 엄벌에 처해야 한다”고 규탄했다.

하지만 더민주·국민의당 구로구의원들은 17일 입장자료를 내 새누리당 성명서에 대해 즉각 반박했다. 이들은 “박종여 의원이 학생에게 다그치듯 물었고, 이에 김모씨가 학생을 보호하며 밖으로 나가달라면서 문을 닫는 과정에서 박 구의원이 넘어진 것”이라며 “새누리당 구의원들이 말하는 ‘연약한 여성의원의 급소를 가격’ 등의 표현은 사실을 왜곡하고, 과장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주민투표해야 vs 불가능

환경영향평가를 두고도 주민들과 시와의 공방이 있었다. 다만 시가 환경영향평가를 재검토하겠다는 의사를 밝히면서 일단락됐다. 시 도로계획과 관계자는 “이번 검토에는 평가 결과에 대한 신뢰성을 높이기 위해 1단계로 의부학회에 의뢰하고, 2단계로 국책 기관이 분석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문제는 이 결과가 나오면 최종 결정을 어떤 방식으로 할 것인지에 대해 주민과 시의 주장이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주민들은 ‘주민투표’를 통해 최종 의사결정을 해야 한다는 견해지만 이는 사실상 어렵다는 것이 시의 입장이다.

주민들은 환기구와 직접적으로 관계가 없거나 환기구 공사 반대에 나서지 않는 지역은 제외하고, 나머지 직접 이해당사자가 참여하는 주민투표로 결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시는 “이해관계자를 특정 짓는 것은 어렵다”며 “실시구역을 한정하는 주민투표는 할 수 없다”고 밝혔다.

최근 서울시, 시·구의원, 구청, 주민 등이 참여하는 대화협의체 구성이 합의됐다. 하지만 아직 실질적인 대화협의체로서의 첫발은 내딛지 못했다. 시 관계자는 “주민들이 원하시면 언제든 대화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박영선 의원은 “협의체의 결정사항대로 일이 진행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시와 해당 국회의원 등이 수동적이고 원론적인 입장에 그칠 것이 아니라, 좀 더 주도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송 비대위원장은 “현재까지 관련 의원들의 행보는 만족스럽지 못하다”면서 “최근 박영선 의원에게 현안 질의서를 보냈지만 부실한 답변을 받았다”며 실망감을 표했다. 이어 “협의체 구성원에 박영선 의원과 일부 시의원 등이 빠져있다. 소극적인 형태로 한 발 물러있지 말고 함께 참여해 힘을 실어달라”고 호소했다.

박영선 의원실 관계자는 “시에 바이패스(공기순환로를 설치하는 내부 정화시스템) 방식의 안을 제안했고, 박원순 시장에게 환기구 공사 중지 요청을 하는 등 문제 해결에 노력하고 있다”며 “환기구 문제와 관련해서 주민들과 같은 입장이고, 주민들께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노력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