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 커넥션에 ‘팽’ 당한 사람들
경찰·공무원·교수 줄줄이…‘찍히면 죽는다’
좌천, 파면, 靑 압박 시달리다 극단 선택도
20일 최씨 기소…‘인사 전횡’ 드러날까
[일요서울 | 권녕찬 기자] 고 최경락 경위, 한일 경위, 노태강 문체부 국장, 진재수 문체부 과장, 황상민 전 연세대 교수. 이번 정부에서 ‘최순실 커넥션’으로 소위 ‘팽’ 당했다는 논란이 있는 인물들이다. 처음에는 의혹에 불과했지만 ‘최순실 국정농락 파문’이 확산되면서 구체적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이들은 경찰, 국가공무원, 교수로서 정년이 보장되는 자리에 있었지만 청와대의 ‘찍어내기’에 좌천, 파면을 당하고 심지어는 자살을 택했다.
권력 희생양의 중심에 경찰이 있다. 고 최경락 서울지방경찰청 정보분실 경위와 한일 경위다. 사건의 출발은 2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현 이슈의 블랙홀인 비선 국정농단 사건은 이미 2년 전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2014년 11월 이른바 ‘정윤회 문건’에서다. 당시 세계일보의 보도로 촉발된 파문의 초점은 비선의 국정 개입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러나 이 사건은 이내 ‘문건 유출’로 방향이 뒤틀렸다. 비선이 국정에 개입해 나라를 주무른다는 ‘범죄 첩보 문건’이 청와대에 의해 ‘지라시’로 규정된 직후부터다. 이 과정에서 문건 작성 및 유출자로 지목된 경찰들은 권력의 칼날에 힘없이 나가떨어졌다.
검찰은 문건 유출에 수사의 키를 잡고 이렇게 결론지었다.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 박관천 경정이 지라시를 작성, 서울경찰청 정보분실에 둔 문건을 최경락, 한일 경위가 빼돌려 언론에 넘겼다.”
문건 최종유출자로 지목된 최경락 전 경위는 수사를 받던 2014년 12월 13일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최경락 유족은 최근 언론에서 당시 청와대에서 회유·미행 등 압박에 시달리다 극단적 선택을 했다고 주장했다.
또 한일 전 경위는 사건 2년 만에 입을 열어 “청와대가 민정비서관실 직속 특별감찰반 행정관을 보내 나를 회유했다”며 청와대의 수사 개입을 폭로했다. 당시 민정비서관은 우병우 전 민정수석이었다. 우 전 수석의 청와대 입성에는 최순실 씨가 상당한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진다.
당시 한일 전 경위는 문건 유출의 첫 당사자로 지목돼 구속된 뒤 경찰에서도 파면됐다. 그는 “검찰이 나에게 ‘문건을 빼내 최 경위에게 전달했다’고 자백하면 불기소 편의를 봐주겠다”고 했지만 거절하자 이튿날 새벽 긴급체포 됐다고 했다. 그는 이어 “고인이 된 최 전 경위의 명예를 지켜드리고 싶다”고 밝혔다. 또 “당시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이제는 국민이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그는 현재 근황에 대해 “지인들에게 일거리를 소개받아서 근근이 생활한다”고 말했다.
승마협회 고질병 고치려다…
승마협회 비리를 들추다 최 씨의 심기를 건드려 잘렸다는 공무원도 있다. 문화체육관광부 노태강 전 체육국장과 진재수 체육정책과장 얘기다.
2013년 4월 최순실의 딸 정유라가 출전한 전국승마대회에서 판정시비가 일자 대회 직후 경찰이 심판 판정을 내사했다. 다른 정부기관의 감사보다 경찰의 내사가 바로 들어간 것은 매우 이례적이었다. 승마협회 소속 심판들과 임원들이 조사를 받았다.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청와대는 그해 5월 문체부에 관련 특별 진상조사를 지시했다. 노태강 전 국장은 당시 진재수 전 과장과 함께 승마협회 비리를 조사했다. 최 씨의 측근으로 알려진 대한승마협회 전임 전무였던 박원호씨는 승마협회 ‘살생부’를 작성해 이들에게 전달했다.
하지만 노태강 전 국장은 살생부에 적힌 인물들을 일방적으로 ‘제거’하지 않고, 고질적인 승마계 파벌싸움을 문제점으로 지적했다. 양측 모두가 문제라는 내용의 보고서를 제출한 것이다. 이 보고서로 최 씨에 찍힌 것일까. 이후 노태강 전 국장과 진재수 전 과장은 좌천 인사를 당했다.
노태강 국장은 대기발령에 이어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좌천된 끝에, 정년 퇴임을 4년 앞둔 지난 7월 ‘공직에서 떠났으면 좋겠다’는 압박에 결국 옷을 벗었다. 진재수 전 과장도 한국예술종합학교 총무과장으로 좌천됐다 7월 노 국장과 함께 공직을 떠났다.
당시 살생부는 최 씨의 지시로 만들어 청와대에 전달했다는 의혹까지 나왔고, 살생부에 이름을 올린 승마인 대부분은 문체부 압박 속에 옷을 벗은 것으로 알려졌다.
교수도 ‘파리 목숨’?
황상민 전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는 지난 1월말 학교에서 해임됐다. 당시 해임 사유는 겸직 의무를 위반했다는 것이었지만, 그간 황 교수의 ‘입’이 결정적이었던 것 아니냐는 얘기가 있었다.
황 교수는 최근 한 언론에서 과거에 박 대통령을 ‘촛불을 앞에 둔 무녀’로 분석한 적이 있었다고 말했다. 이후 청와대에 근무하는 한 지인으로부터 들었다는 황 교수의 친구가 황 교수에게 “청와대에 있는 사람들이 너 죽인다”는 발언을 했다는 것이다. 이유인즉 “이제 와서 생각해보니 당시 촛불을 앞에 둔 무녀라는 표현이 뒤에 비선이 있다는 사실을 자기가 미리 알았다고 판단해서 그 사람들이 죽이겠다는 말을 한 게 아닌가”라고 황 교수는 설명했다.
이 외에도 조양호 평창 동계올림픽 위원장이 지난 5월 위원장 자리에서 물러난 배경에 최 씨의 입김이 있었다는 의혹도 있다. 문체부가 스포츠시설 공사 입찰 과정에서 최 씨의 회사 더블루K 등이 혜택을 볼 수 있도록 관여했음에도 조 회장이 이에 따르지 않아 마찰을 빚었다는 것이다.
검찰이 20일 최 씨를 기소한 가운데 ‘최순실 커넥션’에 의한 인사 전횡이 어디까지 사실로 드러날지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