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칠 수 없는 유혹 ‘이력서 위조’

“재직증명 내용을 위조할 방법 많다”

2016-11-18     조택영 기자

[일요서울 | 조택영 기자] 최근 ‘최순실 게이트’로 인해 ‘문화계 황태자’라 불렸던 차은택(47) 씨가 구속됐다. 최순실 국정농단의 핵심인물로 불렸던 차 씨는 직권남용, 배임, 횡령 등 많은 혐의가 있었지만 그중에서도 학력위조 부분이 눈에 띄었다. 더불어민주당 신경민 의원실이 미래부로부터 넘겨받은 ‘문화창조융합본부 민간 본부장 후보자 추천서’에 따르면 차 씨의 주요학력이 ‘동국대학교 대학원 연극영화과 전공 석사’로 기재돼 있다. 차 씨는 지난 1997년부터 2000년까지 동국대대학원을 다녔지만, 재학 중 해당 학과가 없어지며 수료단계에 머물렀던 것으로 밝혀졌다. 차 씨가 추천서에 동국대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딴 것처럼 기재했다면 엄연히 허위 학력을 통한 임명이 분명하다.

이력서 위조, 5년 이하 징역 또는 1500만 원 이하 벌금

이력서 위조대행업체 국내서도 기승 부릴듯

차 씨뿐만 아니라 이력서 위조는 취업에 절박함을 가진 젊은이들에게 뿌리칠 수 없는 어두운 유혹이다.

우리나라 청년 실업률은 다른 나라보다 비교적 낮은 편이지만, 실제 얼마나 고용됐는지를 확인하면 상황은 좋지 않다. 15~29세 청년 고용률은 40% 수준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보다 10% 정도 낮다.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는 청년층이 많다. 경력직을 선호하는 기업의 추세로 이력서를 위조하는 젊은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낮은 청년 고용률은 청년들이 결혼을 늦추고 출산율이 낮아지는 원인이 돼 국가 경쟁력 악화로도 이어진다.

현대경제연구원의 2012년 설문조사 결과 ‘결혼을 꺼려 하는 가장 큰 이유가 무엇이었냐’는 질문에 남성 응답자의 68%가 ‘주택 구입 등 결혼 자금 문제’라고 답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남성의 초혼 연령은 1990년 27.8세에서 지난해 32.2세로, 여성은 24.8세에서 29.6세로 높아졌다.

이력서 위조

위조죄·업무방해죄까지

형법 제231조(사문서등의 위조·변조)에는 ‘행사할 목적으로 권리·의무 또는 사실증명에 관한 타인의 문서 또는 도화를 위조 또는 변조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명시돼 있다.

또, 형법 314조(업무방해)는 ‘1. 제313조의 방법(허위의 사실을 유포하거나 기타 위계) 또는 위력으로써 사람의 업무를 방해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5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2. 컴퓨터 등 정보처리장치 또는 전자기록 등 특수매체기록을 손괴하거나 정보처리장치에 허위의 정보 또는 부정한 명령을 입력하거나 기타 방법으로 정보처리에 장애를 발생하게 하여 사람의 업무를 방해한 자도 제1항의 형과 같다.’고 적혀 있다.

이력서 위조는 사문서 등의 위조·변조죄에 해당한다. 또, 허위경력증명서나 졸업증명서 등, 기업채용 시 서류를 위조하거나 변조해 회사의 채용업무를 방해한다면 업무방해죄도 될 수 있다.

경력사항은 기본

군대 이력까지 위조

현재 바리스타로 일하고 있는 안모(27·남)씨는 기자와의 인터뷰를 통해 과거 본인이 경험했던 이력 위조 사실을 털어놓았다. 안 씨는 “커피업계 현장 종사자들은 개인카페 또는 기업이 운영하는 카페에서 일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개인카페의 경우 경영악화로 인해 현 시장에서 없어지는 경우가 많아 재직증명을 위조할 방법이 많다. 면접 시에도 위조한 이력에 대해 조금만 알아보면 대답하기도 어렵지 않다”며 “바리스타의 경우 경력직을 선호하는 편이라 이력 위조를 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개인이 아닌 기업에 속한 카페들도 채용 시 경력자를 선호하면서 정작 사실 여부를 확인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또, 병원 보안직으로 일하고 있는 진모(32·남)씨는 “이쪽 계통에 취업 희망자가 많이 없어 인력이 부족하다. 더불어 기업은 이력사항도 꼼꼼히 보지 않고 채용하기 바쁘다”며 “보안직의 경우 야간에 벌어지는 상황이 많아, 채용 시 여자보단 남자를 희망하는 편이다”라고 전했다.

또, “군대의 조직력 때문에 보안직에서는 군필자를 선호 한다”며 “사실 나는 다리 수술로 인해 군 면제를 받았다. 하지만 이력 사항에는 군필로 기재했고, 아직까지도 동료와 관리자는 내가 군필자인 줄 안다”고 전했다.

통과 못할 이력서

위조하고 만다

전공과 상관없는 토익 때문에 위조를 고민하는 청년도 많아졌다.

한 언론사에 따르면 무작위로 뽑은 20~30대 취업준비생 60여 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시행한 결과 37%(22명)가 이력서에 허위 스펙을 기재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고 한다.

과거 대학 간호학과에 재학 했던 이(26·여)씨는 4년 내내 동아리 회장을 맡고, 평균학점도 4.3으로 매우 우수했다. 그녀는 서울 소재 병원들에 지원했지만 700점에도 미치지 못하는 토익점수 때문에 희망 병원에서 줄줄이 떨어졌다. 이 씨는 “이쪽은 토익 점수와 학점이 관건이다”라고 말했다. 또, “아직 양심상 시도해본 적은 없지만 갈수록 취업 걱정 때문에 유혹을 견뎌낼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털어놨다.

한편, 중국에서는 성적을 위조한 ‘가짜 생활기록부’가 인터넷을 통해 판매되면서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다.

중국 전자상거래 전문매체인 이브룬에 따르면 “지난 4월 중·고등학교 입학철이 다가와 인터넷상에서 가짜 생활기록부의 판매가 확산되고 있다”고 전했다. 가격은 100위안(약 1만8000원)으로 교사 도장과 유사한 도장을 찍고, 성적을 위조했다. 현재 상급학교 진학 시 교육부가 발급하는 생활기록부의 중요성이 커지면서, 입학 시 유리한 조건을 갖추기 위해 성적 등을 위조하는 사례가 늘고 있는 것이다. 중국 생활기록부에는 학생에 대한 평가를 비롯해 성적과 생활태도, 특기 등이 기록돼 있고, 이는 상급학교에서 입학을 결정할 때 중요자료로 쓰이고 있다.

이처럼 해외에서 이력서 위조를 대행하는 업체까지 생기는 터라 한국에도 전파될 우려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