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게이트] “관계사업·인맥 꼭꼭 숨겨라” 특명
[일요서울 ㅣ 이범희 기자] 최순실 파문이 재계를 뒤덮고 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최순실 관련 보도가 이어지면서 관계 의혹이 제기되는 기업들 명단도 공개되고 있다.
일부 기업은 총수와 함께 관련 의혹이 제기되면서 사정기관 수사로 이어질까 전전긍긍하는 모습이다. 기업 내부적으로도 최순실과 관련된 사업부서나 인맥 찾기에 혈안이 됐다는 소식이 들린다.
혹시 모를 검찰 수사에 대비해 오해의 소지가 있는 사업 또는 인원에 대해 철저히 선을 긋자는 취지로 알려진다.
KT 이동수 전무 사의…최 씨 측근 부담감 탓
관계사업 부서 ‘증거서류 파쇄 중’ 소문 퍼져
최순실 정국이다. 정부는 물론 기업들도 최순실 이름 석 자가 가져오는 부담감에 몸서리를 친다. 괜한 불똥이라도 튈까 최대한 몸을 사리고 있다. 특히 박근혜 대통령과 비밀 독대를 가진 기업들은 최대한 선긋기를 하며 자신들과는 무관한 사람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모 대기업 대외협력팀 직원은 “최순실과 연관됐다는 말이 돌면 사정당국의 주목을 받는 것은 물론이고 일반인들도 의심의 눈초리를 보낸다”며 “소비재 사업을 하는 회사들의 경우 매출 부진으로 이어질 수 있어 불편한 상황이다”라고 귀띔했다.
이 때문에 실명이 거론되고 있는 업체들 대부분은 “순수한 기부 활동”이라는 ‘선긋기’, 또는 “지금 상황에서 어떤 이야기를 하겠냐”는 ‘함구’ 등으로 대처하고 있다. 하지만 사태가 확산되면서 언제 수사 대상에 오를지 모르기 때문에 노심초사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실제 최순실 게이트 논란의 중심에 서 있는 전국경제인연합회(이하 전경련)와 선 긋기에 나서는 기업들이 목격되고 있다.
확실히 선 긋는 전경련
전경련이 최근 사태 해결을 위한 회장단 회의를 개최할 예정이었으나 해당 기업들의 반응이 싸늘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지난 10일 진행하려 했던 회의도 연기된 것으로 알려진다.
10대 그룹의 고위 임원은 “총수들이 전경련과 선을 그으려는 분위기”라고 했다. 이승철 상근부회장 등 전경련 임원들이 최 씨 게이트 연루 의혹으로 검찰 조사를 받고 있고 전경련 회관이 압수수색까지 당한 상황에서 굳이 전경련 회장단 회의에 참석할 필요가 있겠냐는 얘기다.
KT는 최순실의 최측근으로 알려진 차은택의 소개로 입사한 이동수 전무의 사표를 즉각 수리했다. 관련 인맥에 대한 거취를 분명하게 한건 KT가 처음이다.
현재 차은택 감독은 검찰 조사 중이다. 차 감독이 소유한 회사 ‘아프리카픽쳐스’와 실 소유주라는 의혹을 받고 있는 ‘플레이그라운드’가 KT를 비롯해 대기업 광고 상당수를 집행했다.
KT의 ‘기업전용 LTE-직장인·CEO’편과 Y틴 ‘2배쓰기’편, ‘보야지 투 자라섬’편, KT 001의 ‘대한민국’편 등이 모두 플레이그라운드가 제작한 KT 광고다. 지난 2월부터 9월까지 8개월 동안 제작돤 KT 영상광고 24편 중 차 감독과 연관 있는 광고가 11편이다.
이 일이 가능했던 이유는 이동수 전무의 역할이 컸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동수 전무는 지난해 2월 KT에 입사한 인물로, 청와대 ‘문고리 3인방’ 중 한 명인 안종범 전 대통령정책조정수석비서관의 부탁을 받고 입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뿐만 아니라 이 전무는 과거에 차 감독과 1년간 광고제작사 ‘영상인’에서 함께 근무한 인연이 있다. 즉 이동수 전무가 차 감독과 KT 일감의 연결고리이며, 안종범 전 수석을 통해 최순실-박근혜 대통령의 지시를 받았을 것이라는 의심이 간다.
이런 의혹이 거세지자 심적 부담을 느낀 듯 이동수 전무는 15일 돌연 사임했다. KT 관계자는 “이 전무는 자신과 차 감독과의 의혹이 점점 거세지면서 KT의 이미지를 실추시킨 데 대해 도의적 책임을 느낀 것 같다”고 말했다. KT도 이 전무의 사임을 즉각 수용했다. 다만 KT 측은 “아직 검찰 수사가 진행 중이기에 이 전무의 의혹에 대해 언급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며 말을 아꼈다.
인천관광공사에도 최순실씨의 입김이 닿는 인물이 존재한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15일 시의회 문화복지위원회 행정사무감사에서 이강호 의원은 “인천관광공사 최혜경 본부장이 최순실 씨와 관계가 있다는 제보를 받았다”며 “최 본부장이 지난 2013년 부터 최순실씨가 단골인 서울강남 차병원에서 기획총괄브랜드전략 실장을 지내고 VVIP마케팅 사업에 참여했다”고 말했다.
이어 “차병원 근무 후 차은택씨의 개입 의혹이 제기된 평창동계올림픽조직위에서도 홍보부장으로 근무했다”고 덧붙였다.
차병원 계열인 차움병원은 최순실, 순득 씨의 단골로 박근혜 대통령도 시술을 받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최 본부장은 타 매체를 통해 “최순실과 차은택 씨는 전혀 알지 못한다”며 “마케팅 업무를 하다 보니 차병원, 평창조직위를 거쳐 관광공사에 들어왔을 뿐 인사는 황 사장이 주도한 게 맞다”고 일축했다.
‘속앓이’ 한국콘텐츠진흥원
한국콘텐츠진흥원도 골머리를 앓고 있다. 송성각 원장이 최순실 측근으로 분류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와중에 조각가 A씨는 최근 “지난해 드라마타운 조형물 설치와 관련해 부당하게 작가 교체를 지시했다”며 송 전 원장을 직권남용 혐의로 고발했다.
검찰 특별수사본부(본부장 이영렬 서울중앙지검장)가 사건을 배정받았으며 고발장을 검토한 뒤 송 전 원장과 콘진원 관계자, 시공사인 D사 관계자 등을 조사할 예정이다.
이에 대해 D사와 콘진원은 “송 전 원장의 개입은 사실이 아니다”라면서 “공공기관이 발주한 공사이기 때문에 수의계약이 아닌 공모를 통해 작품을 선정하는 게 더 좋다고 판단해 A작가와 계약을 해지한 것”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선 최순실 사업과 연계된 부서에서 일부 서류를 은폐하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한다. H그룹의 경우 서류 일부를 파쇄하는 과정이 모 매체를 통해 알려지면서 ‘최순실 서류 파기’라는 의혹이 제기됐지만 관련성을 부인한 것으로 알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