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7인-박근혜 ‘비공개 면담’, 무슨 일 있었나

헌납 강요? 민원 대가? 판도라의 상자 열릴까

2016-11-11     이범희 기자

[일요서울 ㅣ 이범희 기자] 검찰이 최순실 국정농단 의혹에 대한 수사 강도를 높여가고 있다. 검찰은 지난해 7월 진행된 박근혜 대통령과 대기업 총수 간의 비공개 면담 경위에 관한 수사에 착수했다.

박 대통령이 이날 면담에서 최순실과 관련 의혹을 받고 있는 재단에 모금을 직접 독려했다는 진술이 확보될 경우 박 대통령에 대한 검찰의 직접 수사가 급물살을 탈 전망이다. 또한 이날 모금이 해당 기업에 대가성이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날 경우 기업총수에 대한 검찰의 칼날이 거세질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비공개 면담이 수면 위로 드러날 경우 정부는 물론 기업도 불편해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더 주목받는다.

檢, 전경련 임원 불러 회동 경위·발언 내용 파악 착수
총수 줄소환 예고…임원 수사 뒤 직접·서면 ‘저울질’

지난해 7월 24일, 대기업 총수 17명이 청와대를 찾았다. 박근혜 대통령의 초청으로 전국 17개 창조경제혁신센터 설립을 축하하고, 지원 기업을 격려하는 자리였다.

이날 박근혜 대통령은 “혁신센터를 사회공헌뿐만 아니라 기업의 지속성장을 이끄는 또 다른 동력으로 생각하시고, 적극적인 지원과 협조를 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고 했다. 대통령의 이런 당부에 재계 총수들은 저마다 “최선을 다하겠다”고 화답했다.

하지만 공식행사가 끝난 뒤 박 대통령이 대기업 총수 17명 가운데 7명을 따로 불러 비공개 면담을 가진 사실이 확인되면서 회의 내용과 과정에 대해 이목이 쏠린다.

현재까지 알려진 바에 의하면 전경련은 자신들도 몰랐던 회의라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청와대가 직접 주재한 회의였다고 강조한다. 따라서 청와대 주재가 사실로 드러날 경우 청와대가 무슨 의도로 회의를 소집했는지에 대한 강도 높은 수사가 불가피하다.

일각에선 이 회의에 앞서 민정수석실이 기업의 고충을 수집했다는 확인조차 어려운 이야기도 들린다. 그 고충을 해결하는 조건으로 이날 회의에서 기금마련을 종용했다는 소문도 퍼지고 있다. 검찰도 이 부분을 심도 깊게 들여다보는 것으로 알려진다.

검찰 수사가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도 이어진다. 이미 기금 조성과 관련된 회사의 전문경영인을 불러 참고인 조사가 한창이다.

문제는 이들 대부분이 이날 비공식 모임에 대해 몰랐다고 진술하거나 언론을 통해 관련 내용을 확인했다고 증언하고 있다. 이 때문에 검찰도 총수들에 대한 수사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내부에선 직접 조사할지 서면조사할지를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청년희망펀드 조성?

다만 기업 입장에서 양심선언을 할 경우 추후 검찰이 해당 총수에 대한 대가성 혐의에 대해 수사를 벌일 수도 있어 증언이 쉽지 않다.

익명을 요구한 한 대외협력담당자는 “윗선 지시로 기금이 조성된다는데 돈을 내지 않을 수 있는 강심장이 얼마나 있겠나. 게다가 이 회의 전후로 기업 사정 소식이 하루가 멀다 하고 들려왔다”며 “괜한 불똥을 피하려고 기금을 내는 곳도 있었겠지만 당장 눈앞에 보이는 민원 해결을 위해서라도 보험성 기금을 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검찰에 출두해 양심선언을 하면 그건 바보 같은 행동이 될 것이라고 귀띔했다. 그는 “양심선언이 결국엔 자사에 비수를 꼽게 될 것”이라며 “검찰에게 자신의 잘못을 밝히는 꼴이고 이는 곧바로 총수에게 부담을 주는 꼴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

이미 재계 안팎에선 박 대통령이 공식 간담회와 별도로 총수들을 따로 만난 만큼 ‘청년희망펀드’ 또는 미르재단·K스포츠재단에 자금 출연을 직접 요청하지 않았겠느냐는 의혹을 제기한다. 당시는 최순실 씨가 실소유주로 드러난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 설립 각각 3개월, 6개월 전으로 설립과 관련한 구체적인 논의가 시작되던 시점이었다.

검찰도 이 면담을 수사하기로 한 건 독대 성사 과정과 대화 내용에 따라 박근혜 대통령이 미르·K스포츠 재단 설립에 어느 정도 관여했는지를 판단할 근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검찰이 총수들도 필요하면 수사하겠다고 밝힌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일각에선 이날 독대가 ‘청년희망펀드’와 관련됐을 가능성이 새롭게 제기된다. 오찬 직후 두 달이 채 되지 않은 시점인 9월 박 대통령이 ‘1호 가입자’로 등록한 이 펀드는 구속된 최순실 씨와 함께 현 정권 ‘비선 실세’로 꼽히는 광고감독 차은택 씨가 개입했다는 의혹이 불거진 상태다.

청년희망펀드 관련 의혹은 지난 9월 고용노동부 산하기관 등에 대한 국정감사에서도 제기된 바 있다.

당시 국감에서 문제를 제기했던 국회 환노위 소속 이용득 더불어 민주당 의원실은 지난 7일 ‘청년희망재단 발기 개요 및 준비 상황’ 등의 문건을 분석해 “문건에 등장한 문화창조융합센터는 차은택 씨가 기획하고 추진한 문화창조융합벨트 사업의 6개 거점 중 하나”라며 “청년희망재단은 실제 CJ E&M 소속 인사 등을 초청해 3번의 문화콘텐츠 강좌를 진행했다”고 차 씨 개입 의혹을 거론하고 나섰다.

같은 날 한국노총도 기자회견을 열고 “청년희망재단 관련 검은 거래의 실상을 소상히 밝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업계 한 관계자는 “이재용 부회장이 박 대통령과 독대를 했다면 계열사들이 출연한 미르·K스포츠재단보다는 개인 돈을 내야 하는 청년희망펀드를 논의하는 게 더 자연스럽다”고 지적했다.

삼성은 회사 차원에서도 모든 계열사 임원들을 대상으로 월급의 일정액을 갹출해 청년희망펀드에 50억 원을 출연한 것으로 파악된다.

사실관계 파악 어려워

복수의 소식통에 따르면 비공개 면담 참석자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정몽구 현대기아차그룹 회장, 구본무 LG그룹 회장, 김창근 SK수펙스추진협의회 의장,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손경식 CJ그룹 회장 등이다.

김창근 의장의 참석은 당시 복역 중이던 최태원 SK그룹 회장을 대리한 것이다. 한때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참석했다고 전해졌으나 이날 조 회장은 비공개 면담에는 참석하지 않았던 것으로 확인된다.

해당 기업들은 하나같이 대통령과 총수의 독대 여부에 대해 확인해줄 수 없다거나 만남 자체를 부인하고 있으면서도 검찰 수사 불똥이 어디로 튈지 노심초사하는 상황이다.

한 그룹 관계자는 “검찰에서 나온 내용이니 검찰에 알아보라. 그룹 입장에서 언급할 내용이 없다”고 했다.

다른 그룹 관계자는 “1년도 더 지난 일이라 해당 일자에 총수의 구체적인 일정 확인이 되지 않고 있다. 검찰이 수사하겠다면 협조하겠다”고 밝혔다. 이중 한진그룹만이 “당시 조양호 회장은 국내에서 업무를 보고 있었던 것으로 파악됐다”면서 “대통령과 비공개 면담을 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고 밝혔다.

앞서 특별수사본부(본부장 이영렬 서울중앙지검장)는 전국경제인연합회 박모 전무와 이모 상무를 참고인 신분으로 불러 조사했다. 검찰은 이들을 상대로 박 대통령과 대기업 총수 간의 비공개 면담 경위를 집중 조사한 것으로 전해졌다.

또한 안종범(구속)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을 수사하면서 박 대통령이 대기업 총수 7명을 따로 불러 미르·K스포츠 재단 출연을 주문했다는 정황을 포착했다.

검찰은 또 안 전 수석이 지난해 사용하던 다이어리를 임의 제출받았다. 박 대통령과 재벌 총수 간 독대 경위와 내용이 다이어리에 담겨 있을 것으로 주목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