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취재] ‘최순실 후폭풍’ 1987 대선 vs 2017 대선 ‘30년 평행이론’

文 역풍 시작되나? 연이은 막말 ‘자충수’ 트럼프 당선 악재까지 겹쳐…

2016-11-11     고정현 기자

[일요서울ㅣ고정현 기자] ‘최순실 게이트’ 파장이 일파만파 커지고 있는 가운데 여야의 대응책마저 혼란을 거듭하고 있다. 여권은 친박 비박으로 갈려 자중지란에 빠져있고 야권은 정국 타개를 위한 해법을 제시하기는커녕 연일 수위 높은 발언만을 내뱉고 있다. 말로는 국정 수습이라고 하면서 실제로는 정부의 대응책에 무조건적인 반대만 외치고 있는 모습이다. 특히 이번 최순실 사태로 가장 큰 ‘반사이익’을 챙긴 문재인 전 민주당 대표는 이미 대통령이 된 듯한 행보마저 보이고 있다. 이에 정치권에서는 벌써 대권을 잡았다는 민주당의 ‘오버 페이스’가 1987년 13대 대선 당시 유리한 환경에 도취된 야권 후보들이 ‘각자도생’을 선택, 여권의 노태우 후보에게 대권을 내줬을 때를 연상케 한다는 말이 나온다. 2017년 13대 대선과 1987년 19대 대선이 마치 ‘평행 이론’을 연상케 한다는 분석이다.

 

- “‘대통령은 우리가 먹었다’는 착각…국민이 확 뒤집어버린다”
- 87년부터 이어진 대선 공식 ‘안보관 의심받으면 왕좌에 앉을 수 없다’

1987년 당시 야권과 시민들은 전두환 정권의 폭압적 통치에 맞서 전국적 민주화 운동(6월 항쟁)을 벌였고 직선제 개헌까지 이뤄냈다. 그해 대통령 선거는 ‘군사정권 종식’을 의미했고 야권은 이미 정권을 이양받은 듯한 분위기였다. 김영삼·김대중·김종필 후보는 각각 대통령이 된 듯한 자신감에 단일화를 거부했다.

반면 여권에서는 노태우 후보만이 군복을 벗고 출사표를 던졌다. 선거 결과 야권의 참패였다. 그 누구도 예상치 못한 결과였다. ‘어쨌든 대권은 우리 것’이란 야권 후보들의 오만 속 ‘각자도생’을 국민들이 응징한 것이다. 민주화 세력에 의한 정권 창출을 한 가닥 희망으로 기대한 야권 지지자들은 충격 속에 결과를 받아들이지 못했다.

실제로 구로을 부재자 우편투표함은 1987년 12월 16일 오전 11시 30분께 선관위 관계자가 부재자 우편투표함을 개표소로 옮기던 중 이를 부정투표함으로 인식한 시민들에게 빼앗겨 개함하지 못한 채 얼마 전까지 중앙선관위 수장고에 보관되기도 했다.
이 같은 예상 밖 결과는 30년이 지난 2017년에도 벌어질 수 있다고 정치권은 경고한다.

1987년 때와 마찬가지로 현재에도 최순실 씨로 인해 국정운영이 사실상 파행 상태이다. 시민들은 대통령의 하야를 연일 외치고 있다. 나아가 야권은 이미 정권을 잡은 듯 행동하고, 문재인 전 민주당 대표는 1987년 당시 김영삼·김대중·김종필 후보가 그랬던 것처럼 이미 대통령이 된 듯 행동한다.

정권 이미 가져온 것처럼 생각한 ‘3김(金)’ 결국 대선에서 패배…

상황이 이렇다 보니 야권에서는 1987년과 같은 실수를 반복해서는 안 된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박지원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장과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역임했던 김종인 의원은 “야권이 마치 정권을 잡은 것처럼 행동하고 있다” 며 “신군부 출신 노태우 대통령을 당선시킨 1987년 사례를 보며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고 일침을 가했다.  

박지원 위원장은 한 언론사와의 통화에서 “전두환 정권에 맞서 직선제 개헌을 쟁취한 ‘3김(김)’이 정권도 다 가져온 것처럼 생각하다가 결국 대선에서 지면서 신군부 정권을 연장시켜준 셈이 됐었다”며 “지금도 그때와 상황이 비슷한데 야권이 벌써부터 ‘대통령은 우리가 먹었다’는 식으로 행동하면 국민이 확 뒤집어버린다”고 충고했다.

김종인 전 대표 역시 1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박 대통령이 하야해서 당장 선거를 치르면 야권이 승리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지만 야권 후보가 난립해서 불안한 상황이 되면 국민은 다시 안정된 (여권) 후보를 찾아갈 수 있다”며 “과거 1987년 대선의 사례를 잘 살펴봐야 한다”고 했다. 김 의원은 또 “우리나라 국민 성향이 상당히 보수적이기 때문에 민심은 언제든 뒤집힐 수 있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럼에도 1987년과 2017년 대선이 ‘평행 이론’이 될 것이라는 예측은 점차 현실이 되어가는 분위기다. 정치권 일각에선 국민들이 박 대통령에 대한 분노와 비판이 들끓는 건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야당에 정권을 넘길 것을 원한다고 볼 수도 없는 실정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정치평론가는 “야권의 주장대로라면 결국 대통령을 끌어내리고 조기 대선을 치르자는 것인데, 대선이 바로 실시되면 야권 후보들이 난립할 수 있다.

문 전 대표와 안 전 대표 등 유력 야권주자가 유리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유승민 ·김무성 새누리당 의원에게 기회가 올 수도 있다”며 “두 사람이 경쟁해서 단일후보를 만들어내면 여권이 호기를 잡게 된다. 지금 야당이나 범민주세력은 하야 정국에 대해 경계심을 늦추지 말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국민의당 박지원 비상대책위원장도 “조기 대선은 헌정 중단 사태를 초래하는 일이기 때문에 동의할 수 없다”고 말했다. 또 다른 정치권의 한 관계자도 “대통령 탄핵 또는 하야라는 선례가 생기게 되면 앞으로 조금의 문제라도 생기면 정치권에서 대통령 하야하라 탄핵해야 한다고 외쳐댈 것이다”며 “이 같은 선례가 생기는 것은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

‘4자 구도’ 가능성 농후한 2017 대선, 1987 대선과 판박이

게다가 2017년 대선은 과거 1987년 대선과 마찬가지로 ‘4자 구도’가 될 가능성이 농후한 상황이다. 이번 최순실 사태로 반기문 총장의 새누리당 행 가능성은 사실상 희박해졌다. 여기에 비박계 일색인 여권 대선주자들은 박 대통령과 최 씨에 대한 성역 없는 수사와 거국내각 구성 등을 주장하며 대통령과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이렇게 되면 여권에서는 비박 대권 주자들이 당권을 쥐고 최순실 사태를 수습한 뒤 그 영향력을 대선까지 이어갈 것이 자명하다.

즉 기존의 새누리당-반기문, 민주당-문재인, 제3지대-안철수 구도가 여권-비박계 야권-문재인·반기문·안철수 ‘4자 구도’가 될 공산이 커진 셈이다. 이는 과거 1987년 13대 대선 당시 노태우-김영삼·김대중·김종필 구도와 일치할 뿐만 아니라 일각에선 결과마저 같을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오는 실정이다.

설상가상으로 내년 대선까지는 1년 이상 남아 있다. 문 전 대표로선 다른 대권 주자들에게 집중 견제를 받는 기간이 1년 이상 남아 있음을 의미한다. 문 전 대표는 ‘최순실 게이트’가 터지기 직전까지 ‘대북 결재’ 의혹으로 안보관을 의심받고 있었다. 일각에서는 대선 철만 다가오면 ‘색깔론’을 내세운다며 비판의 목소리도 나오지만 연일 북한의 위협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안보관’은 대통령의 자리에 오르기 전 반드시 검증받아야 하는 부분이라는 게 정치권의 중론이다.

안보관이 흔들린다고 생각되는 후보에게 국민들은 표를 던지지 않는다는 것은 지난 2012년 18대 대선에서 입증됐다. 당시 문 전 대표의 승리를 예상한 사람들이 많았지만 결국 문 전 대표의 ‘아킬레스건’인 안보관이 그의 발목을 잡았다.

1987년 대선도 다르지 않았다. 당시 영남지역에서 김대중 후보를 입에 올린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김대중은 ‘빨갱이’라는 소문이 파다했었다. 더욱이 선거 직전 ‘KAL기 폭파 사건’이 불거지며 국민들의 안보관을 고취시켰다. 이로써 영남 민심은 단숨에 평정됐고, 노태우 후보는 민주화의 상징인 두 거물 (김영삼·김대중)의 분열을 틈타 대권을 잡았다.

뿐만 아니라 14대 대선 때도 당국에 적발된 대규모 간첩단에 김대중 평민당 후보 비서가 관여됐다는 소문이 돌았고, 결국 선거에선 경쟁자인 여당의 김영삼 후보가 당선됐다. 결국 ‘안보관을 의심받는 후보는 왕좌에 앉을 수 없다’는 공식은 87년부터 이어져온 셈이다. 이는 내년에 있을 대선에도 유효할 것이란 분석이다.

더욱이 미국 45대 대선 결과 모두의 예상을 깨고 공화당 트럼프 후보가 당선됐다. 트럼프 후보는 선거 내내 ‘주한 미군 철수’, ‘안보 무임승차론’ 등을 내세우며 ‘한미 동맹’이 언제든 깨질 수 있음을 시사해왔다.

이에 안보관 의혹이 꼬리표처럼 따라붙는 문 전 대표가 직격탄을 맞은 것이다. 문 전 대표의 ‘대북 결재’ 의혹이 ‘최순실 게이트’로 묻히며 대권 가도에 청신호가 켜졌으나 ‘트럼프 후폭풍’으로 인해 그의 안보관이 또다시 도마 위에 오를 것이라는 전망이다. ‘최대 수혜자’에서 ‘최대 피해자’로 전락한 문 전 대표의 향후 행보에 변화가 불가피해 보인다.

군(軍)통수권·계엄권 포기하라던 文, 본인은 트럼프에 축전?

한편 상황이 이러한데도 문 전 대표는 대통령이 됐다는 ‘착각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결정적 ‘자충수’를 두기에 이르렀다. 문 전 대표는 지난 9일 시민사회 인사들과 만나 "대통령의 고유 권한인 군(軍) 통수권, 계엄권 또는 국정원, 감사원, 사법부, 헌법재판소 내의 대법원장과 대법관, 헌재소장과 헌법재판관 등을 비롯한 많은 인사권 등 국정 전반을 거국 중립내각에 맡기고 대통령은 국정에서 손을 떼야 한다"고 했다. 한 술 더 떠 9일에는 대통령이 된 듯 주한 미국 대사관을 통해 트럼프 당선인에게 축전을 보내기도 했다.

이에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는 10일 최고위원회의에서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박 대통령에게 군 통수권과 계엄권 등을 포기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이는 초헌법적이고 반헌법적인 발상"이라며 "헌정과 국정을 완전히 중단시키겠다는 의지를 갖고 있는 것인지 꼭 해명을 들어야겠다. 당과 청와대가 진정성 있게 국무총리 추천을 국회에 요구한 만큼 이제 문 전 대표를 포함한 야당도 진지하게 임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이 같은 목소리는 박 대통령을 강도 높게 비판하며 이정현·친박 지도부와 대립각을 세워 온 비박계와 야권 내에서도 다르지 않았다.

유력 대선주자인 유승민 의원은 트럼프 당선 입장문에서 "대한민국 안보와 경제가 지금 매우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는데 이를 돌파해야 할 국가 리더십은 실종된 상태"라며 "야 3당은 대통령 제안을 무조건 거부할 게 아니라 하루속히 총리 적임자를 추천하고 새 총리로 하여금 실질적 거국내각을 이끌어 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야권은 거국 내각을 수용하자 별도 특검과 국회 추천 총리를 내걸었고, 국회 추천 총리 요구도 받아들였지만 돌연 입장을 바꿔 대통령 2선 후퇴에 이어 여당 대표 사퇴까지 요구하며 결국 길거리로 나갔다. 정치권에서 야권이 궁극적으로 원하는 게 국정 혼란의 수습이 아닌 이번 혼란을 내년 대선까지 지속시킴과 동시에 나아가 헌정 중단 사태까지 노리는 것 아니냐는 쓴소리가 나오는 배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