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 후폭풍] 수갑 찬 ‘王 수석’ 줄소환되는 ‘국정 농단’ 주역들
‘진실’ 위해 수사 받겠다는 대통령, ‘감면’ 위해 책임 전가하는 前 수석
[일요서울ㅣ고정현 기자] 최순실 씨가 저지른 온갖 비리와 국정 농단 행태가 잇따라 폭로되면서 그의 손과 발이 되어 심부름꾼을 자처한 청와대 참모진의 행태도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다. 그중에서도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 수석의 행적이 도드라진다. 안 전 수석은 그간 본인을 둘러싼 의혹이 제기될 때마다 ‘모르쇠’로 일관하더니 급기야 “박근혜 대통령의 지시를 받아서 한 것”이라며 모든 책임을 대통령에게 떠넘기고 있다. 자신에게 무한한 신뢰를 보냈던 박 대통령을 면피용 방패막이로 삼은 모습이다. 그러나 이 같은 안 전 수석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정치권에선 최순실 씨가 대통령과의 친분을 악용해 갑질을 했다면 실제 ‘브레인’의 역할을 한 주인공은 안종범 전 수석일 것이라는 말이 나온다. 안 전 수석은 종범(從犯)이라 주장하고 싶겠지만 결국 안 수석이 주범이라는 지적이다.
- “최순실 모른다”→ “잘못한 부분 책임지겠다”→ “朴 대통령 지시 받았을 뿐”
- “靑의 참모인지, 崔의 브레인인지 헷갈릴 정도”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수석은 지난 10월 21일 국회 운영위 국정감사에서 ‘최순실을 아느냐’는 질문에 “전혀 모른다”고 말했다. 미르·K스포츠재단의 모금에 개입했는지를 묻는 질문에도 “대기업에 투자하라고 한 적이 없다. 순수한 자발적 모금이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최근 검찰 조사를 받은 정현식 K 스포츠재단 전 사무총장과 이승철 전경련 부회장이 재단 모금 과정에 안 전 수석의 지시가 있었다는 취지로 진술하며 상황이 급변했다. 정 전 사무총장은 언론 인터뷰에서 “안 전 수석과 최순실 씨의 지시로 SK에 80억 원을 요구했다”고 증언했다. 또한 롯데그룹의 70억 원대 추가 모금에 안 전 수석이 관여했다는 진술도 나왔다. 뿐만 아니라 안 전 수석 본인의 자택 압수수색에서도 그의 거짓말은 하나둘 드러나고 있는 실정이다.
박지원 “朴 배신한 안종범, 비굴하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안 전 수석은 박 대통령을 방패막이로 삼기에 이르렀다. 모든 책임을 대통령에게 떠넘기고 있는 모습이다. 안 전 수석은 지난 2일 서울 중앙지검 출두 당시 “침통한 심정이다. 잘못한 부분은 책임을 지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작 검찰 조사 과정에선 “모든 일은 박근혜 대통령 지시를 받아서 한 것”이라고 말을 바꿨다.
심지어 “최순실 씨와 박 대통령 사이에 ‘직거래’가 있었던 것으로 안다”고도 말했다. 그러면서 본인은 “(최순실 씨와) 옷깃 하나 스친 적이 없다. 전혀 모르는 사이”라고 했다. 법적 책임 상당 부분을 대통령에게 떠넘기려 한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는 부분이다.
이에 박지원 국민의당 비대위원장은 지난 2일 국회에서 “안 전 수석은 끝까지 ‘최순실을 모른다’, ‘자기하고 관계없다’고 계속 주장하다가 이제 해임되고 검찰에 출두하니 ‘모든 것을 대통령이 지시했다’고 했다”며 “사실을 밝히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슬픈 마음도 있다. 대통령이 그런 비굴한 자들만 측근 인사로 기용했다”고 안타까움을 내비쳤다.
또 다른 정치권의 한 관계자 역시 “올 1월 최순실 씨가 실소유주로 알려진 더블루케이 조모 전 대표를 정현식 전 사무총장에게 소개하는 자리를 주선한 것도 안 전 수석이다”라며 “두 조직 사이에 다리를 놓아준 셈인데, 안 전 수석이 대통령의 참모였는지 ‘비선 실세’의 심부름꾼이었는지 헷갈릴 정도다”고 비꼬았다.
결국 안 전 수석의 속내엔 자신을 ‘깃털’로 포장하고 박 대통령과 최순실은 ‘몸통’으로 만들어 어떻게든 법망을 빠져나가려는 의중이 깔려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같은 안 전 수석의 바람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정치권에선 이번 ‘최순실 게이트’의 주연은 안종범 전 수석이고 정작 최순실 씨는 조연에 지나치지 않는다는 말마저 나오는 실정이다. 결국 실질적인 ‘브레인’은 안 전 수석이라는 것이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현재 국민들이 원하는 것은 ‘진실’이다”며 “진실을 숨김없이 털어놓아도 용서받기 어려운 판국에 혼자만 살겠다고 아리송한 자세로 일관하는 모습은 참고 봐주기 어렵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안 전 수석의 행태를 보면 학자적 양심도, 공직자로서의 품위도 팽개친 듯하다. 권력을 휘두르다가 꼬리가 잡히니 모른다고 발뺌하다가, 피의자 신분으로 전락한 뒤에는 책임을 전가하고 있다”고 비난의 수위를 높였다.
안 전 수석의 거짓말… 엄청난 역풍 맞게 될 것
반면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4일 국민들이 원하는 ‘진실’을 위해 헌법에 규정된 불소추(不訴追) 특권을 뒤로하고 직접 검찰 조사뿐 아니라 특별검사까지 수용할 뜻을 밝혔다. 박 대통령은 대국민담화를 통해 “국민 여러분께 최순실 씨 관련 사건으로 이루 말할 수 없는 큰 실망과 염려를 끼쳐드린 점 다시 한번 진심으로 사과드린다”며 “이번 일의 진상과 책임을 규명하는 데 있어서 최대한 협조하겠다. 필요하다면 저 역시 검찰의 조사에 성실하게 임할 각오이며, 특별검사에 의한 수사까지도 수용하겠다”면서 이같이 밝혔다.
안 전 수석은 한때 ‘왕수석’으로 불렸다. ‘왕수석’이라는 호칭은 곧 대통령의 무한한 신임을 받고 있음을 의미한다. 물론 대통령 지시를 받아서 했다는 안 전 수석의 주장이 사실로 드러나면 안 전수석의 법적 책임은 어느 정도 경감되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직권남용이나 제3자 뇌물수수 혐의 등 법적 책임을 회피하거나 줄이기 위해 안 전 수석이 거짓말을 하는 것이라면 엄청난 역풍을 맞게 될 것이라고 정치권은 경고한다.
한 정치권의 관계자는 “안 전 대표는 대통령의 무한한 신임을 받았던 ‘왕수석’으로서 최순실 씨가 대통령과의 인연을 악용해 정부 안팎에서 국정을 농단하는 동안 어떤 노력을 했다거나 충언이 있었다는 흔적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며 “청와대 참모들 가운데서도 우병우 민정수석과 함께 안종범 수석은 그 어떤 법적 책임보다 대통령을 잘못 보좌한 책임을 먼저 져야 할 것”이라고 직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