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민순 회고록 파문 - ‘기억 안 난다’ 문재인 대권가도 ‘휘청’
인권 변호사 출신 文 국민 인권보다 김정일 결재가 더 중요했나?
[일요서울ㅣ고정현 기자] 송민순 전 외교통상부 장관의 회고록을 둘러싼 정쟁이 심화되고 있다. 송 전 장관은 그의 저서를 통해 ‘2007년 11월 노무현 정부의 유엔 북한 인권결의안 입장을 정할 때 북한에게 의사를 물어보고 기권을 정했다’고 회고했다. 이병호 국정원장 역시 10월 19일 서울 내곡동 국정원에서 열린 국회 정보위원회 비공개 국정감사에서 “기억이 아니라 기록이라고 본다”며 송 전 장관의 회고록 내용이 사실임을 밝혔다.
이에 민주당은 ‘철 지난 색깔공세’라며 반박하며 동시에 야권 결집을 도모하고 나섰다. 그러나 논란의 당사자인 문재인 전 대표가 ‘기억 안 난다’고 발언함으로써 민주당의 ‘주군 감싸기(?)’는 자충수가 되고 만 모양새다. 대북정책 방향을 결정하는 중대 사안이 기억나지 않는다는 점은 의문스럽지만 결과적으로 문 전 대표는 그 당시와 마찬가지로 기권을 선택했다. 문 전 대표의 두 번의 기권이 그의 안보관, 나아가 대권 주자로서의 자질마저 시험대에 오르게 하는 모습이다.
- “잘 기억하는 분들에게 물어라” 자충수
- “의심받는 안보관 돌파 못하면 대권 주자 자격 없어”
여야가 ‘송민순 회고록’을 두고 전면전을 벌이고 있다. 2007년 11월 노무현 정부가 유엔인권위원회 북한 인권결의안 표결에 기권 결정을 하기에 앞서 북한의 의사를 확인했느냐의 여부가 핵심이다. 새누리당은 이번 사안에 대해 “국회 차원의 진상조사는 물론 법정까지도 가져갈 수 있다”며 “회고록 대로 김정일의 결재를 받아 우리의 외교안보 정책을 결정했다는 것이 사실이라면 국민과 역사 앞에 참회해야 한다”고 연일 강공을 펴고 있다. 뿐만 아니라 여당은 ‘송민순 회고록’을 통해 드러난 참여정부 시절 대북정책까지 문제 삼으며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전 방위적 공세를 이어갔다.
이병호 국가정보원장 역시 19일 국회 정보위원회 국정원 국정감사에서 새누리당 정보위원들의 집중적인 질의에 대해 “국정원장이 공식적으로 확인해주는 것은 부적절하다”면서도 “구체적이고 사리에 맞아 사실이나 진실이 담겨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밝혔다. 또한 김만복 전 국정원장의 북측 접촉 내용에 대해선 “어처구니 없고 상상을 초월한 발상이다. 수치스러운 일”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참여정부 인사들 상황 설명 서로 달라… 의구심 증폭
그러나 정작 논란의 주인공인 문 전 대표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북한의 반응을 점검하거나 정보를 수집했다면 참여정부의 높은 외교 수준을 보여주는 것’이라며 ‘새누리당은 북한 덕분에 존속하는 정당’이라는 글을 게시했다. 국민들과 정치권 모두 당시 청와대 비서실장으로서 논란의 중심에 서 있는 문 전 대표의 진상규명을 기다렸다.
그러나 정작 문 전 대표는 자신이 북한 정권의 의견을 확인토록 했다는 핵심 부분은 거론조차 하지 않았다. 오히려 “새누리당과 박근혜 정부는 북한과의 대화 단절이 북한 인권 개선에 무엇이 도움됐는지, 그리고 북핵 문제 해결에 무슨 도움이 됐는지 되돌아보고 반성해야 한다”며 “노무현 정부는 참으로 건강한 정부였다”고 엉뚱한 발언을 연이어 내놓았다.
설상가상으로 참여정부 인사들의 당시 기억마저 서로 달라 의구심을 자아내고 있다. 한 야권 인사는 “말이 안 된다”며 북한에 문의한 사실 자체를 부인했으나 김경수 의원은 “안보정책조정회의에서 기권하기로 결정한 뒤 북한에 통보하기로 했다”며 대북 채널 가동 자체는 부인하지 않았다.
또한 기권 방침이 결정된 시점도 11월 16일과 11월 20일로 엇갈린다. 반면 송 전 장관이 회고록에 기술한 당시 상황은 매우 구체적이라서 전혀 없는 사실을 썼다고 보기 어렵다는 게 정치권의 중론이다. 회고록 내용에 따르면 송 전 장관은 남북관계 진전을 위해 결의안 표결에 기권해야 한다는 기류 속에서도 계속 찬성 주장을 폈고, 이 과정에서 북한의 의사를 확인해보자는 제안이 나왔을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다.
‘북한 협의설’ 즉답 피해…의혹 확산
그러자 여론은 걷잡을 수없이 악화됐다. 이에 문 전 대표는 ‘기억 안 난다’며 황급히 태세 전환에 들어갔다. 그는 당시 진상을 묻는 언론의 질문에 대해 “잘 기억하는 분들에게 물으라”며 구체적인 언급을 회피하고 있다. 측근인 김경수 민주당 의원이 ‘북한 의견을 물은 것이 아니라 결정을 통보한 것’이라고 주장한 것이 맞는지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도 시종일관 묵묵부답이었다.
문 전 대표의 침묵에 정치권의 한 인사는 “2007년에는 북한 김정일 정권에 의견을 물어본 뒤 북이 반대하자 유엔의 대북 인권결의안 표결에 기권하더니 이번에도 일종의 기권을 했다”며 “회고록 내용을 시인하면 새누리당의 ‘대북 결재’ 주장을 인정하게 되는 것이고, 부인했다가 나중에 사실이 드러나면 ‘거짓말쟁이’로 낙인찍히게 되니까 입을 닫아버린 것”이라고 조소했다.
특히 문 전 대표의 ‘기억상실 전략’으로 인해 자당 대권주자 감싸기에 여념이 없던 민주당은 역풍을 맞은 모양새다. 당초 야권은 회고록 파문이 일자 여당이 ‘해묵은 종북몰이’, ‘철 지난 색깔론’으로 대야 협상카드를 쥐고 나아가 내년 대선에 주도권을 잡으려 한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한 야권 인사는 “북한과 내통이니 하며 간첩 집단처럼 몰아가는 태도는 지양해야 한다”며 “새누리당은 지난 대선 전후에도 노무현 전 대통령의 북방한계선(NLL) 발언을 놓고 집요하게 색깔론 공세를 폈지만 사실무근으로 밝혀졌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이런 상황에서 문 전 대표의 ‘기억 안 난다’는 발언은 이 같은 야권의 ‘색깔론’ 주장에 힘을 빼놓았고 나아가 국민들의 의구심은 정점을 찍었다. 논란을 초래한 장본인이자 야권의 유력 대권 주자로서 국민들의 질문에 답할 정치적 의무가 있음에도 침묵 하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과 관련된 논란은 가급적 피해 가는 게 상책이라 여기는 듯한 모습이다.
의심받는 文 이상한 ‘낙마론’까지…
더욱이 문 전 대표는 그간 북핵에 대한 대안은 제시하지 못한 채 사드 배치 반대, 대북전단 배포 반대, 개성공단 폐쇄조치 반대 등을 꾸준히 주장해왔다. 뿐만 아니라 정치권에선 문 전 대표가 인권 변호사 출신임에도 북한 주민들의 인권은 안중에 없고 북한 정권의 비위를 맞추는 데 급급했다는 쓴목소리마저 나온다.
실제로 북한 주민들의 인권 유린이 만천하에 알려져 국제사회가 이를 규탄하는 시점에 노무현 정부는 다섯 번의 북한 인권결의안 표결 중 북한이 1차 핵실험을 한 2006년을 제외하고 모두 불참 또는 기권했다. 또한 2007년에는 북한 주민의 입장에 서기는커녕 탄압 주체인 북한 정권에 우리 정부가 취해야 할 입장에 관해 의견을 물었다.
게다가 19대 국회에서 북한 인권법안이 통과될 때 문 전 대표는 참석하지 않았고 정세균 국회의장과 추미애 대표는 기권했다. 북한 인권 문제에 별다른 문제의식이 없는 듯 비쳤다. 인권 변호사로 알려진 문 전대표가 유독 북한 인권에는 눈 감고 있는 듯한 모습이다.
결국 문 전 대표는 그의 안보관뿐만 아니라 대권주자로서의 자질마저 시험대에 오르게 됐다. 문 전 대표가 모든 대권행보를 접고 당시의 사실관계부터 밝히고 안보관을 확실하게 검증받아야 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야권 일각에서도 문 전 대표가 대권주자로서 이번 논란을 본인의 안보관을 확실하게 밝힐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야권 대선 주자에게 아킬레스건으로 작용할 ‘안보 이슈’의 중심에 선 문 전 대표다. 지난 대선 때 북방한계선(NLL) 공방과 유사한 소모전이 되풀이돼서는 본인에게 득이 될 것이 없음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음이 자명하다. 야권인 국민의당조차 “문 전 대표가 사실관계를 밝혀 의문을 풀어달라”고 촉구하고 나설 정도다. 이럴 때일수록 문 전 대표는 본인 스스로 진상규명에 나서 여권의 공세를 정면으로 돌파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야권 전체도 이번 사안을 ‘색깔론’, ‘종북몰이’등으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며 “지금도 핵과 미사일 도발을 계속하고 있는 북한과의 잘못된 관계에 대한 비판을 여소야대의 수적 우세로 몰아붙이는 것이야말로 오히려 또 다른 의미의 ‘색깔론’”이라고 꼬집기도 했다.
宋 회고록 파문 ‘햇볕정책’ 진상 규명 계기 삼아야…
한편 정치권에선 이번 사태가 소모적 정치 공방에 그치지 않도록 청문회를 열어 당시의 전말은 물론 대북 정책 전반을 돌아보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대북 저자세 및 퍼주기 비판을 끊임없이 받아온 김대중·노무현 정권 10년의 ‘햇볕정책’의 실상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례이기에 철저한 진상규명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동시에 문 전 대표는 기권할 수밖에 없었던 당시 사정을 투명하게 설명하고, 국민의 심판을 기다려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국민의 비판을 경청하면서 당시 조치의 불가피성을 설득하려는 노력을 하는 것이 정치인으로서의 자세라는 것이다.
또한 헌법 정신을 재확인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회고록대로라면 노 정권은 당시 북한 주민 인권보다 독재체제를 우선시한 것으로 비친다. 북한 주민도 헌법상 대한민국 국민이기에 등한시해서는 안 된다는 설명이다.
차기 대통령의 안보관과 대북관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점이다. 북한이 핵무장 국가 문턱까지 올라선 상황이다. 문재인 전 대표는 최근 대규모 싱크탱크를 출범시켜 사실상 내년 대선출마를 선언했다. 문 전 대표는 논란의 핵심인 ‘북한 협의설’에 대해 본인 입으로 진실을 밝혀 ‘대권 재수생’으로서 최소한의 요건을 검증받아야 한다는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