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경험이 있었는지 여부가  성폭력 판단에 영향을 준다”

성폭력 재판부 망언 공개

2016-10-14     오두환 기자

[일요서울 | 오두환 기자] 판·검사 등의 비리가 끊이지 않고 있다. 국민은 법조인에 대해 실망한 지 오래다. 법정에서 판·검사들의 언어폭력으로 인권을 보호받아야 할 피해자들이 2차 피해를 입는 것으로 알려져 문제가 되고 있다. 한국여성민우회 성폭력상담소와 정의당 노회찬 의원은 지난달 26일 성폭력 범죄 재판에 동행해 피해자 권리보호 상황을 모니터링한 보고서를 공개했다. 이 보고서는 총 221건의 재판 모니터링 내용이 담겼다. 

“군 복무 중에 여자랑 자면 안 된다고 얘기 안 들었어요? ”
“여성이 술 마시고 성관계 맺는 것 도덕적으로 문제 있다고 생각”

“성 경험이 있었는지 여부가 성폭력 판단에 영향을 준다. 성 경험이 있는 여성과 없는 여성은 성폭력 대응 방식에 차이가 있다”

“여성이 술을 마시고 성관계를 맺는 것은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사람이 많은 상황에서 노골적으로 성추행한다는 것은 상상이 안 간다”

“군 복무 중에 여자랑 자면 안 된다고 얘기 안 들었어요? 교육 제대로 안 받았구만”

위 발언은 지난 8월 18일 서울서부지방법원 성폭력전담재판부 이모 부장판사가 법정에서 직접 말한 내용이다. 성폭력 관련 재판임을 감안하면 실언을 넘어 망언에 가까운 발언이다. 성폭력 피해자들은 수사과정이나 재판과정에 인권 차원에서 특히 신경을 써야 한다. 하지만 정작 이들의 인권이 보호돼야 하는 재판과정에서 피해자들은 언어폭력에 노출되어 2차 3차 피해를 입고 있다.

법관 허울 쓴 망언
성범죄 기본 개념 없다

한국여성민우회는 이 부장판사의 발언에 대해 피해자의 인격침해, 성폭력범죄에 대한 잘못된 통념, 여성의 성경험에 대한 왜곡된 성의식이 담겨 있다고 분석했다. 이러한 발언들은 결국 재판부에 대한 불신을 키워 문제가 심각하다는 판단이다.

재판부의 망언에 가까운 발언들은 일반 재판에서도 많이 발생한다. 판사 개인의 편협한 생각을 밝히거나 반말, 인격모독적인 발언이 지속적으로 문제가 돼 왔다. 하지만 성폭력 재판은 사건의 특이성으로 인해 피해자가 받는 충격과 파장이 더욱 크기 때문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정의당 노회찬 의원은 “2016년 8월 18일 서울서부지방법원 성폭력전담재판부 이 모 부장판사가 법정에서 내뱉은 발언들은 현재 성폭력전담재판부의 문제점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며 “이날 이 부장판사의 발언은 성폭력피해자, 나아가 여성에 대한 편견과 왜곡된 성의식이 그대로 드러난 ‘망언’이다. 이렇게 낮은 수준의 성의식을 가진 부장판사가 성폭력피해자의 증언청취를 전담해 왔다는 사실에 참담함마저 느낀다”고 말했다.

또 노 의원은 “피해자의 성경험에 대한 발언은 성폭력범죄를 여성의 ‘성적 자기결정권’ 침해로 보지 않고, ‘순결’의 문제로 접근하는 구시대적 편견에 기초한 발언이다”라며 “공소사실을 ‘여자랑 자면’으로 표현한 것은 성폭력범죄와 합의에 의한 성관계조차 구분하지 못하는, 성범죄에 대한 기본 개념조차 결여된 발언이다. 성폭력범죄 담당법관으로서 ‘결격사유’다”라고 비판했다.

피해자 의사 무시한
합의종용 등

모니터링 보고서에 따르면 이 부장판사 외에도 재판부의 망언은 곳곳에서 관찰됐다. B 판사는 재판에서 가해자가 ‘피해자가 성관계에 동의했다’고 일방적으로 주장하자 “피해자와 혼인신고를 하는 것이 의도를 확실히 보여 줄 수 있다. 의사가 있다면 하는 것이 좋다”라고 말했다. 이 발언은 ‘피해자의 의사를 무시한 합의 종용’으로 인식될 수 있어 판사 발언으로 적절하지 않다는 지적이다.

C 판사는 “유부남인데 고객과 잠을 자면 어떡해요. 부적절한 관계를 맺으면”이라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이 발언은 ‘동의에 의한 성관계와 성폭력을 혼동’한 발언으로 자칫 성폭력이 동의에 의한 성관계로 잘못 이해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노회찬 의원은 “법관의 공정하지 못한 발언은 피해자에게 커다란 심리적 타격을 주어 재판이 공정하지 못하리라는 불안을 심는다. ‘재판부가 나의 말을 믿어 주지 않을 것’이라는 의심은 증언에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또 “성폭력 사건에서는 보통 피해자의 증언이 가장 중요한 증거다. 그런데 재판관이 피해자를 인격적으로 공격하여 객관적 증언을 방해한다면 진실 규명을 포기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현행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29조에 따르면 “수사기관과 법원 및 소송관계인은 성폭력범죄를 당한 피해자의 나이, 심리 상태 또는 후유장애의 유무 등을 신중하게 고려하여 조사 및 심리·재판 과정에서 피해자의 인격이나 명예가 손상되거나 사적인 비밀이 침해되지 아니하도록 주의하여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문제는 이러한 기본 법과 규칙조차 재판과정에서는 잘 지켜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판사가 피해자 이름
공개하기도

재판과정에서 판사의 망언도 문제지만 피해자의 신원이 밝혀지는 사례도 많아 문제가 되고 있다.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24조에 따르면 “성폭력범죄의 수사 또는 재판을 담당하거나 이에 관여하는 공무원 또는 그 직에 있었던 사람은 피해자의 주소, 성명, 나이, 직업, 학교, 용모, 그 밖에 피해자를 특정하여 파악할 수 있게 하는 인적사항과 사진 등 또는 그 피해자의 사생활에 관한 비밀을 공개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누설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적혀 있다. 

지만 이러한 법을 판사가 어기는 경우가 너무 많다. 지난해 3월 26일 서울고등법원에서 진행된 한 재판에서 D 판사는 피해자 증인 요청과 참석여부 확인 과정에서 피해자 이름을 노출했다. 이러한 피해사례는 한두 개가 아니다. 가장 기본적인 법조차 지켜지지 않는 재판장에서 피해자들은 두 번 울고 있다.  

이에 대해 노회찬 의원은 “성폭력특례법 등이 피해자 신원 비공개 조항을 둔 것은, 가해자 가족 등이 합의 종용을 위해 접근하거나, 보복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분석대상 사건 중, 가해자 부인이 지나치게 합의를 요구해와 경찰의 도움을 받거나, 피해자뿐 아니라 상담원에게까지 합의요구 편지를 계속적·반복적으로 보내 위협한 사례도 있었다”며 “법률을 수호해야 할 판사가 법률을 제대로 지키지 않아, 성폭력 피해자와 주변인에게 피해를 입힌 것”이라고 지적했다. 

판사들의 망언과 미숙한 재판 운영이 지속되자 전문가들은 성폭력 전담 재판부의 전문성 문제를 제기하고 나섰다. ‘전문재판부의 구성 및 운영 등에 관한 예규’에 따르면 전문재판부 법관의 경우 ‘2년간 변경되지 않도록 고려하라’고 정하고 있지만, 2년 마다 바뀌는 판사들이 성폭력범죄에 대한 전문성과 감수성을 얼마나 갖추고 있을지 의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