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고] 반기문 지지율의 허(虛)와 실(實)
- 내년 1월 귀국 현재 지지율 유지되나
- 지지율의 실체 대선출마 선언후 유의미
출마 선언도 하지 않았고 심지어 어느 당으로 나올지 조차도 정확하지 않은 사람이 차기 대선 지지율 1위를 달리는 기현상이 대한민국에서 벌어지고 있다.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유례가 없는 일이다. 주인공은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다. 지난 9월 추석 이후 발표된 언론사 여론조사의 특징은 반기문-문재인-안철수 3자 구도에서의 우열이었다. 반기문 총장은 이 대결에서 선두를 놓치지 않고 1위를 달렸다.
조선일보-미디어리서치가 실시한 조사를 보면 새누리당 반기문 후보 38.5%, 더민주 문재인 후보 28.1%,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 14.5%로 나타나 반 총장에 대한 지지가 심상치 않음을 보여 주었다.[9월 23∼24일 전국 19세 이상 1000명 대상 유선전화와 휴대전화 RDD(임의번호 걸기) 방식 조사. 표본 오차는 95% 신뢰 수준에서 ±3.1%p]
최근 실시한 조사결과에서도 반 총장은 대세론을 형성하고 있는 문 전대표를 앞서는 수치를 꾸준하게 유지하고 있다. 그럼 반 총장이 본격적으로 활동에 나서는 내년 초가 되어도 이 지지율이 유지될 수 있을까?
먼저 반 총장이 출마선언조차 하지 않았음에도 선두를 달리는 이유는 첫째 여권내에 부상하는 후보가 없다는 이유가 가장 크다. 야권으로의 정권교체의 가능성이 어느 시기보다 커져 있는데 여권 입장에선 그에 맞설 마땅한 대항마가 없기 때문에 여 성향의 표가 반 총장에게 몰리는 것이다.
둘째, 박근혜 대통령이 미는 후보라는 점이다. 현재까지 반 총장의 지지율은 전국적으로 고른 편인데 60대 이상 연령층과 TK가 핵심 지지층으로 나타나고 있다. 대통령의 ‘후광 효과’를 톡톡히 입고 있는 것이다.
셋째, 정치권에 대한 혐오감이 비정치인 출신 인물에 대한 기대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데 ‘유엔 사무총장’이란 반 총장의 직업적 타이틀은 이러한 기대감을 배가시켜 준다. 여기에 ‘충청 대망론’까지 얹어져 반 총장 지지율을 이끌고 있다.
하지만 반 총장의 지지율이 불안한 이유 역시 확실하다. 첫째는 새누리당 정당 지지율보다 낮은 인물 지지율이다.
현재 새누리당 정당 지지율은 33~36% 정도다. 이에 비해 반 총장 지지율은 22~26% 사이에 머물러 있다. 새누리당 지지층의 반 총장 지지율은 50%를 살짝 넘기는 수준이다. 당 지지층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는다고 보기 어려운 수치다.
또한 반 총장에 대한 인지도가 93.9%로 더 이상 올라갈 여력이 없는 수준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향후 지지율이 추가적으로 상승한다고 자신하기 어렵다. ‘오픈 발‘이란 말이 있듯이 아무런 상처를 받지 않은 ’신상‘일 때 최고 지지율을 찍는다고 본다면, 반 총장이 본격적으로 정치에 발을 담그는 순간 현재의 선두자리를 대선 투표일까지 지킨다거나 또는 당 지지율을 상회하는 인물 지지율을 유지할 것이라고 낙관하기 어렵다.
둘째, 반 총장은 처음부터 ‘지역 연합’이라는 낡은 구도를 바탕으로 기획된 상품이라는 점이다. 역대 ‘충청 대망론’의 주인공들이 인구 비중이 높은 충남 출신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충북 출신인 반 총장에게 유독 ‘충청 대망론’의 왕관이 씌워진 이유는 TK 출신 대통령과 호남 출신 여당 대표가 만드는 충청 후보라는 전략으로 ‘붐 업’되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번 정기 국회 시작과 동시에 파행을 불러일으켰던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의 ‘단식 파동’이 결국 정치적 실패로 끝나면서 반 총장의 내년 행보에도 부정적 영향을 주게 되었다. 친박 대표 인사의 볼썽사납고 사려깊지 못한 단식 파동은 친박 후보로 입지를 올려야 할 반 총장에게 부담으로 남았다. 이런 상황에서 반 총장은 충청-호남-TK이라는 삼발이의 한 축인 호남의 지지를 획득하면서 지역 연합을 완성해 낼 수 있을까.
셋째, 반 총장의 직업적, 성격적 특징이 승부를 걸어야 하는 정치의 세계에서 반 총장의 가장 큰 걸림돌이 될 것이라는 지적이다. 직업 외교관 출신의 일처리 스타일이 정치 현장에서는 한계가 명확하다는 점에 대해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의원은 ‘돌다리를 두드려 보고도 건너지 않는 스타일’이라고 이미 표현한 바 있다.
반 총장이 대통령감인지를 묻는 조사에 대해 '그렇다'(38%)보다는 '아니다'(41%)란 의견이 엇비슷하게 나온 것만 보더라도 국민들은 그를 대한민국을 이끌 지도자로 인정하는데 있어 아직은 물음표를 찍고 있다. 결국 반 총장 지지율의 실체는 그가 대선 출마를 선언하고 본격적인 정치 행보에 들어가는 순간에서 새롭게 시작한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즈음이 되면 강력한 후견인 역할을 하고 있는 박 대통령의 약발도 지금같지는 않을 것이라는 점은 명약관야하다. 대통령의 후광이 약화되거나 사라진 상황에서도 반 총장은 60대 이상 고령층과 TK의 전폭적인 지지를 등에 업고 지지율 1위를 달릴 수 있을까.
또한 새누리당을 지켜온 후보는 나라고 주장하는 남경필 지사나 유승민 의원과의 적통성 싸움 역시 반 총장이 넘어야 할 어려운 고개가 아닐 수 없다. 당 지지율보다 낮은 인물 지지율 상황을 타개하지 않고 당의 대통령 후보가 된 사람은 없다. 자당 지지층의 열정과 애정과 지지를 끌어내는 사람만이 당의 대통령 후보가 될 수 있다. 그런데 반 총장은 그런 측면에서 보면 태생이 너무나 이질적이다.
새누리당 경선 과정이 어떻게 전개될지 알 수 없지만 ‘반기문 추대’로 갈 것이라고 전망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런 면에서 보면 요새 유행하는 ‘무난한 경선’은 ‘무난한 패배’를 가져온다는 말이 꼭 더불어민주당에만 적용되는 말은 아닌 것 같다.
끝으로 난마처럼 얽혀 있는 국회 상황을 풀어낼 결기가 반 총장에게 있는지 의문이 아닐 수 없다. 반 총장이 설혹 운 좋게 대권을 거머쥐더라도 국회는 여소야대 상황이다. 피감 기관으로서 정부의 입장을 방어하는데 익숙한 반 총장이 내공있는 전문성으로 또는 배짱을 내밀면서 여야간 쟁점과 이슈를 요리하여 국정을 탄력적으로 운영할 가공할 능력을 갖고 있을까?
차기 대선 주자 1위를 달리는 반 총장의 지지율이 안정감 있게 느껴지기 보다 불안하게 보이는 것은 필자만의 기우는 아닐 것 같다.<이은영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