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이용객 300만 명 ‘지진불감증’ 서울지하철

“한 차례 지진으로 대재앙 이어질 수도”

2016-10-07     권녕찬 기자

1~4호선 내진성능 36.3% 불과…1호선 내진확보율 최저

화재 비상대피시간 ‘초과’ 역 수두룩…대피소도 턱없이 부족

[일요서울 | 권녕찬 기자] 지난달 12일 경주 인근에서 진도 5.8의 역대 최대 규모의 지진이 발생한 이후 여진이 계속되는 가운데 서울지하철은 사실상 ‘무방비’로 밝혀져 시민들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서울지하철 1~4호선의 30% 이상이 내진성능을 확보하지 못해 지진에 취약한 것으로 밝혀졌기 때문이다. 지하철 하루 이용객이 수백만 명인 만큼 대형 지진이 발생할 경우 대재앙이 벌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4일 더불어민주당 진선미 국회의원(서울 강동갑)이 서울메트로와 서울도시철도공사에서 제출받은 자료를 보면, 비교적 최근에 만들어진 5~8호선은 내진성을 확보했지만 1~4호선의 경우 36.3%(146.8km 중 53.2km)가 내진성능을 확보하지 못했다. 특히 1호선은 내진성 확보 비율이 33%에 불과해 지진에 가장 취약한 것으로 드러났다.

1~4호선의 일일 평균 이용인원이 300만 명을 넘는 것을 감안하면 실제 지진 발생 시 대형 참사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실제 1995년 일본 고베 대지진 당시 철길은 엿가락 구부러지듯 땅에서 솟아올랐고, 일부 역은 천장이 내려앉았다. 또 선로 기둥이 파괴돼 건물이 부서지고 운행하던 지하철이 전복되기도 했다. 갑작스런 지진에 평온했던 일상이 순식간에 지옥으로 변한 것이다.

평소에도 사람이 많아 ‘지옥철’이라고 불리는 서울지하철은 대형 지진이 발생하면 이보다 더 큰 피해가 우려된다. 특히 출퇴근시간에 지진이 발생한다면 대혼란이 벌어지게 된다. 매일 지하철로 출퇴근하는 서울 시민 최태욱(30)씨는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며 “하루빨리 지진에 대한 내진보강이 이뤄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서울시는 지하철 1~4호선의 지진 취약성을 보완하기 위해 2020년까지 내진성능을 확보할 방침이다. 특히 지진에 취약한 고가철도·교량 및 지하구간에 우선적으로 보강공사를 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 내진보강이 필요한 53.2km 중 2km만 완료된 상태여서 아직 갈 길이 멀다는 지적이다.

진선미 의원은 “매일 300만 명이 사용하는 1~4호선이 지진에 취약하다는 것은 한 차례 지진이 대규모 재앙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라며 문제의 심각성을 지적했다. 이어 “서울시는 지하철 내진공사 예산을 빠른 시일 내 확보해 지하철 내진성을 보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불나면 어쩌나

서울지하철은 내진성뿐 아니라 화재에도 취약한 것으로 드러났다. 서울시의 ‘도시철도 정거장 및 환승·편의시설 설계 지침’에 따르면 서울시 지하철 역사 중 약 40%가 화재 발생 시 비상대피시간을 초과하고 있다.

비상대피시간은 승객이 승강장을 벗어나는 데 4분, 연기나 유독가스로부터 안전한 외부출입구를 벗어나는 데 6분이 기준이다. 하지만 서울시 지하철 276개 역사 중 109개가 이를 초과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지역별로 분석한 결과 마포구가 11개역으로 가장 많고, 서초구 9개, 강남구와 중구가 각각 8개 순이었다. 비상대피시간 초과 역사가 없는 구역은 금천구가 유일하다. 이에 대해 서울시는 “지하철 1~8호선의 경우 기준이 제정된 2002년 11월 이전에 비상대피시간을 고려하지 않고 건설돼 승강장이 땅속 깊은 데 있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또 서울 시내에 지진이 발생했을 때 몸을 숨길 수 있는 대피소도 턱없이 부족했다. 대형지진 시 도로·선로 등이 마비될 수 있기 때문에 각종 2차 피해를 막기 위한 대피소는 필수적이다.

하지만 현재 서울시의 지진대피소 수용인원은 64만 명(538개)으로 서울시 주민등록인구 980만 명(올해 8월말 기준) 대비 7%, 유동인구 3,425만 명(15년 자료 기준)의 2%에 불과했다. 특히 중구, 종로구, 양천구, 구로구, 관악구는 유동인구의 1%도 수용하기 어려운 것으로 밝혀졌다. 서울시 ‘지진재난 현장조치 행동매뉴얼(2015.10)’에는 재난 발생 시 지정된 대피소로 이동하게끔 돼 있는데 정작 대피할 대피소가 없는 실정이다.

이와 관련 박원순 서울시장은 지난 4일 서울시 국정감사에 출석해 “선제적으로 지난 6월 지진종합대책을 만들었고, 진도 6.5 이상의 강진이 올 수 있다는 위기감이 있어 좀 더 보강하는 등 여러 가지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며 “다양한 방법을 검토해 지진으로부터 안전한 도시를 만들겠다”고 밝혔다.

지하철 내 행동요령

서울지하철 양 공사의 지진 관련 위기대응 매뉴얼에 따르면 규모 4.0 이상 지진 발생하면 일단 지역 내 모든 열차가 멈추게 된다. 역무원들은 안내방송을 통해 지진발생 사실과 정상복구 시까지 소요시간 등을 알려야 한다.

열차 내부라면 승객들은 먼저 화물 선반이나 손잡이 등을 꽉 잡아서 넘어지지 않도록 하고, 열차가 멈추었다고 서둘러 밖으로 나가면 부상의 위험이 있으므로 차내 방송 등에 따라 침착하게 행동한다.

이후 탈출은 열차 출입문 주변에 있는 비상개폐장치(비상코크)를 이용하면 된다. 방법을 미리 숙지하지 못했으면 주변의 사용방법 안내나 열차 내 방송의 설명을 따른다.

시민 대피는 발생 5분 이내에 이뤄져야 한다. 역무원은 시민들을 낙하물이 없는 곳으로 유도하고 부상자에 대한 응급조치에 나서야 한다. 또 시민이 엘리베이터에 갇혔는지 확인한다. 엘리베이터를 이용하다 지진이 발생했을 경우에는 종합관제센터에 연락하거나 역무원을 기다리는 게 좋다.

서울도시철도공사 관계자는 “지진 규모가 약하더라도 피해상황이 발생하면 위기대응 매뉴얼에 따라 즉시 조치를 하게 돼 있다”며 “당황스럽더라도 침착하게 역무원의 안내를 따라달라”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