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보는 국감] ‘전쟁이 임박했다’ 밤낮 없는 보좌관 일상 엿보기
“하루 16시간 줄야근···보좌관 무능하면 국민이 손해”
피감기관과 치열한 ‘자료 쟁탈전’…고성 오가기도
국감 뒤에 부는 해고 칼바람…“그래도 보람 있는 직업”
[일요서울 | 권녕찬 기자] 20대 정기국회 첫 국정감사가 오늘 26일부터 시작된다. 잘못을 들추어내려는 입법부의 ‘창’과 이를 저지하려는 행정부의 ‘방패’가 치열하게 격돌할 것으로 보인다. 창의 역할은 대단히 중요하다. 날카롭게 잘못을 지적해 정부를 견제하고 국민들에게 존재감을 부각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창의 담당은 국회의원이지만, ‘보좌관’ 없이는 그들의 창끝이 무뎌질 수밖에 없다. 자료 수집, 분석, 요약까지 보좌관들의 역할이 상당하기 때문이다. [일요서울]은 국감을 앞두고 밤낮없이 분주한 보좌관의 일상을 따라가 봤다.
국감을 일주일 여 앞둔 지난 20일 오후 의원회관. 졸음이 몰려올 법만 점심시간 직후인 데도 사람들의 분주한 발걸음이 이어졌다. 야당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소속 김철민 의원(59·경기 안산시상록구을)의 김현목 보좌관(52)은 “국감 준비로 주말을 다 반납했다. 이번 연휴에도 추석 당일과 이튿날만 쉬었다”며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김 보좌관은 올해로 27년째 보좌관 생활을 하고 있는 베테랑이다. 정세균 현 국회의장을 과거 12년 동안 보좌한 그는 올해로 28번째 국감을 맞이한다. 국감 시즌이 되면 보통 아침 7~8시에 출근해 밤 11시까지 하루 16시간 줄야근이지만 그는 당연하다는 듯 담담했다. 그는 “나뿐만이 아니라 다른 보좌관들도 다 이렇게 근무한다. 요즘 이 곳은 밤이 돼도 환하다”며 다가올 전쟁에 의지를 다지는 모습이었다.
김 보좌관은 이번 국감에서 공기업 방만 경영에 대한 감사와 용산 화상경마장 사례 등 도박 폐해에 대해 중점적으로 다룰 예정이다. 이를 위해 피감기관으로부터 충분한 자료 확보는 필수다. 정부의 국정운영을 날카롭게 비판해야 하는 만큼 자료 요청을 둘러싼 줄다리기가 시작되는 것이다.
그는 “보통 피감기관은 자료를 한 번에 주지 않는다. 전략적으로 나눠서 천천히 보내준다”며 팁을 제시했다. 이어 “국감 시즌에는 그들도 민감하다. 필요한 자료를 사전에 요청해야 그들도 여유 있게 준비할 수 있다”며 “관련 자료 요청을 8월 초부터 일찌감치 해뒀다”고 밝혔다.
하지만 미리 요청한다고 다 해결되는 건 아니다. 자료의 ‘무엇’만큼이나 ‘왜’, ‘어떻게’도 중요하다. 이에 따라 돌아오는 자료의 수준이 결정된다. 자료 요청 이유와 포인트를 집어서 세밀하게 요청하지 않으면 대충 온다는 얘기다. 한 줄 답변이 오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뿌린 만큼 거두는 셈이다.
때론 정부 기관과 실랑이가 벌어지기도 한다. 전화 연결이 며칠째 안 되기도 하고, ‘좋은 자료’를 두고는 고성도 오간다. 정부 기관에서 제출을 거부하고 열람만 하라고 했는데 보좌관 쪽에서는 이를 그대로 돌려줄 수 없어 필사·녹음·사진 촬영을 하다가 생기는 ‘자료 쟁탈전’이 그것이다.
국감 시즌에는 해당 상임위원회당 피감기관이 많게는 수백여 개에 달하기 때문에 자료의 양 또한 방대하다. 이를 의원실 내 비서, 인턴 등을 제외하고 3~5명의 실무인력이 검토 작업을 거친다. 때문에 때론 밤을 새우기도 하고 사무실 소파에서 쪽잠을 자며 업무에 매달리기도 한다.
방대한 자료 분석과 요약을 거치면 질의서가 만들어진다. 이는 해당 국회의원이 국감 때 날카로운 질문을 하게 만드는 토대가 된다. 김 보좌관은 “보좌진이 유능해야 의원이 살고, 의원이 살아야 국민이 이익”이라며 “실력 없는 사람이 있으면 국민이 손해 보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렇게 열심히 준비해서 여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면 ‘대박’이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가 훨씬 많다. 김 보좌관은 “성과 못 내면 해고되는 일도 비일비재한 게 이 바닥이다. 국감 뒤에는 의원회관에 낯선 사람들이 보이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직원들이 대거 ‘물갈이’ 된 것이다. 한 번에 100여명이 바뀐 적도 있다고 했다.
‘사회적 반향’을 일으킬 수 있어 뿌듯
국회의원 보좌관은 별정직 공무원 신분이다. 하지만 해당 의원이 임명권과 동시에 면직 권한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실적 부진으로 ‘오너’의 눈 밖에 나면 책상을 빼야 하는 경우가 생긴다. 김 보좌관은 “보좌관 직업은 4년 계약직이다. 안정성 없는 하루살이 인생이기도 하다”며 “하지만 안정성이 없어야 하는 직업이 맞다”며 소신 있게 밝혔다. “물이 고여 있으면 썩듯이 안정성이 있으면 이 바닥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 현안에 대해 끊임없이 공부하고 정보의 홍수 속에서 아이디어를 내 의원의 ‘존재 가치’를 입증하는 데 일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보좌관은 이런 보좌관 세계의 매력에 대해서 “‘사회적 반향’을 일으킬 수 있는 직업”이라고 밝혔다. 그는 “보좌관은 눈에 잘 띄진 않지만 실무적으로 만든 법과 제도가 통과돼 많은 사람이 혜택을 누릴 때면 큰 보람을 느낀다”며 “아동학대방지법·공공산후조리원 등 사회적 약자를 위한 법이 통과됐을 때 뭔가 뭉클한 감정을 느꼈다”고 전했다.
이런 사회적 영향 때문에 유능한 보좌관이 더 많이 만들어져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그래서 그는 그동안의 경험과 노하우를 바탕으로 유능한 후배를 양성하기 위해 사단법인 한국비서협회에서 ‘보좌관 양성 교육’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2012년부터 4년째 후배들을 가르치고 있는 김 보좌관은 “교육을 들었던 후배 수십 명이 현재 20대 국회에서 활동하고 있다”며 “가끔 감사 인사나 법률안 만들어 검토 받으러 오는 후배들을 보면 큰 보람을 느낀다”고 미소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