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사랑과 닮았다" 제자 성추행한 前교수, 9400만원 배상
"호의적 언동 넘어 성적 굴욕감…인격권 침해"
[일요서울 | 변지영 기자] 자신의 첫사랑과 닮았다며 대학원생인 제자를 성추행한 전직 교수에게 인격권 침해에 대한 책임을 지고 9400만 원을 민사 배상하라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24부(부장판사 서민석)는 대학원생 A씨가 고려대 전 교수 이모씨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A씨에게 7000만 원, 그 부모에게 2400여만 원을 지급하라"며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고 18일 밝혔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A씨는 수사 과정 및 관련 형사 소송에서 매우 구체적이고 일관되게 진술했고 그 내용에 신빙성이 있다"며 "이씨가 강제로 추행한 사실이 있었다고 인정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이어 "사회통념상 일상생활에서 허용되는 단순한 농담 또는 지도교수로서 제자에 대한 호의적인 언동을 넘어 성적 굴욕감이나 혐오감을 느끼게 했다"며 "A씨의 인격권을 침해하는 위법한 행위"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씨는 자신의 행동을 부인하는데 그치지 않고 연인관계라거나 A씨가 학업상 편의를 위해 먼저 접근한 것처럼 거짓말해 정신적 고통을 가중시켰다"며 "A씨는 오랜 기간 공부한 전공분야에 관한 학자의 꿈을 사실상 포기하게 됐고 그 진로를 지원해온 부모도 정신적 고통을 입은 사실이 명백하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다만 내부 규정 등이 마련돼 있었지만 이씨의 행동이 은밀하게 이뤄졌고 A씨도 피해 직후 곧바로 교내 양성평등센터에 신고하지 않아 이를 막기 어려웠다며 학교 측의 책임은 인정하지 않았다.
이씨는 2014년 8월 자신의 승용차와 연구실에서 제자인 A씨에게 입을 맞추고 허벅지를 만지는 등 강제추행했다.
이씨는 또 같은해 6월부터 A씨에게 매일 사진을 보낼 것을 요구해 자신의 컴퓨터에 보관하거나 A씨를 작은 애인이라는 뜻의 애칭으로 부르기도 했다.
당시 이씨는 제자들의 생활을 관리한다며 대학원생들에게 출퇴근 여부 등을 확인할 수 있는 사진을 찍어보낼 것을 요구했는데, A씨에게는 전신사진이나 영상통화 등을 요구하며 남다른 관심을 보였다.
이씨는 A씨에게 "집안의 반대로 헤어진 첫사랑과 너무 닮았다"며 '사랑한다', '참 예쁘다'는 말을 수시로 하고 공개된 자리에서 손을 잡거나 포옹 등을 하기도 했다.
이후 A씨는 이씨를 고소했고 1심에서 강제추행이 유죄로 인정되며 징역 1년이 선고됐다. A씨의 아버지는 학교에도 피해를 신고했지만, 이씨는 조사위원회 출석을 계속 미루다가 사직서를 냈다. 이후 사직서가 수리되면서 진상조사는 중단됐다.
A씨 측은 "강제추행과 성희롱을 공개했다가 지도교수와 대학원생의 권력 관계에 따라 오히려 낙인 찍히고 학업을 이어가지 못하는 불이익을 입게 될까 두려워 제대로 저항하지 못한 채 수차례 피해를 입었다"며 "불안 증상으로 큰 정신적 고통을 받았다"며 3억7000만원의 이 소송을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