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판 암행어사 ‘암행순찰차’ 전국 질주
‘얌체족, 도로 위 무법자’, 게 섰거라
‘변신’하면 비틀비틀·우물쭈물 운전자 ‘멘붕’
교통사고 예방 효과 커…국민적 호응 증가
[일요서울 | 권녕찬 기자] 암행순찰차가 전국으로 ‘질주’하고 있다. 경찰청은 지난 3월부터 전국 고속도로에 10대의 암행순찰차를 배치해 시범 운영하다 이달 6일부터는 서울 시내 자동차전용도로 1대 포함 총 12대를 증차했다. 불쑥 나타나는 암행순찰차 특성상 운전자로 하여금 교통 위반 억제 효과를 일으킨다고 경찰이 판단해서다. 불시에 나타난 암행순찰차로 인해 운전자가 이른바 ‘멘붕’에 빠지는 모습도 연출됐다. 앞으로 전국의 차량 운전자들은 도로에서 ‘긴장’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단속에 걸린 시민들이 당황해 하다가 ‘아, 이게 암행순찰차구나’라며 본인의 위반 사실에 대해 빠르게 수긍하더라구요.”
지난 7일 암행순찰차에 탑승해 단속을 벌였던 서울지방경찰청 도시고속순찰대 소속 정재호 경사(41)는 암행순찰차에 대해 만족스런 평을 내렸다. 그는 “일반순찰차에 비해 단속 건수도 많았다”며 “앞으로 준법 의식 수준이 높아지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암행순찰차는 단속 차량임을 드러내지 않고 도로에서 위법 행위를 일삼는 운전자를 적발하는 차량이다. 평소에는 일반 차량처럼 운행하다가 교통법규를 어기는 차량을 발견하면 경광등과 사이렌, 전광판 등으로 경찰 차량임을 드러내고 단속에 나선다.
서울 시내에는 이달 6일부터 암행순찰차가 처음으로 실전 투입됐고, 정 경사는 7일 단속 작업을 벌였다. 그는 7일 하루에만 15건을 단속했다. 지정차로 및 버스전용차로 위반이 10건으로 가장 많았고, 상습 정체 지역 진출로에서 끼어드는 ‘얌체’ 운전 1건, 운전 중 휴대전화 사용 1건 등이었다고 밝혔다.
운행 결과 불시에 나타난 암행순찰차에 단속에 걸린 운전자는 당황하는 모습도 보였다고 말했다. 사이렌을 켜고 암행순찰차로 변신하자 차량이 비틀거리며 운전자가 우물쭈물 하는 모습을 보였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시민들의 반응도 전했다. 그는 “단속에 걸린 대부분 시민들이 당황하면서도 암행순찰차 존재를 알고 있었다”며 “본인의 위반 사실에 곧바로 수긍했다”고 말했다. 이어 개선해야 될 부분이 있는지 묻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아직까지는 별다른 문제점을 느끼지 못했다”며 “추후 간담회 등을 통해 고쳐야 될 사항이 있으면 개선해 나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검은색 쏘나타를 조심하라?
암행순찰차는 최근 사회적 이슈로 떠오른 보복운전, 난폭운전, 얌체 끼어들기 등을 근절하고 자발적 교통법규 문화를 조성하기 위해 도입됐다. 충남·경북·강원·인천·전북 등 전국 고속도로에 21대, 올림픽대로·강변북로·동부·북부간선도로·내부순환로 등 서울 시내 자동차전용도로에 1대 등 총 22대가 운행 중이다.
고속도로에서 운용 중인 암행순찰차는 전용차로 위반과 갓길운행 등을 주로 단속하고, 서울 시내에 투입되는 암행 순찰차는 보복 운전과 난폭 운전, 화물차 적재 위반, 상습 정체 지역 진출로에서의 끼어들기 등을 주로 단속한다.
암행순찰차의 겉모습은 일반 승용차와 거의 비슷하다. 유일한 차이점은 보닛과 좌우 도어에 탈·부착이 가능한 자석식의 경찰 마크가 붙어 있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경찰 마크를 붙이면 ‘암행 단속’이 아니지 않느냐는 의견도 있었다. 하지만 경찰은 아직 시민들이 익숙하지 않을 수 있고, 경광등을 개조한 일반차로 오해할 여지가 있어 그대로 남겨뒀다.
단속 경찰관은 사복이 아닌 제복을 입고 단속에 나서며, 모두 현대자동차의 쏘나타를 운행한다. 초기에는 검은 색상의 쏘나타만 운행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검은색 쏘나타를 조심하라’는 소문이 돌자 단속 효과를 높이기 위해 최근 색상을 다양화했다. 현재는 검은색, 은색, 흰색, 진청색, 진회색 5가지다.
시민 70.5%, ‘효과 있다’
이 같은 암행순찰차가 전국에서 질주하기까지는 적잖은 진통이 있었다. ‘함정 단속’이라는 반대 여론에 부딪혀 제도 도입에 어려움을 겪은 것이다. 암행순찰은 OECD(경제협력개발기구)가입국 중 미국, 영국 등 20여 개국은 이미 수년 전부터 시행해온 제도다. 그러나 최근 보복운전과 난폭운전이 심각한 수준에 이르자 경찰은 올해 3월 전격 도입했다.
도입 이후 시민 반응은 예상보다 호의적이었다. 지난 4월 한국도로공사가 경부고속도로 이용객 600명을 상대로 현장 설문조사를 벌인 결과 응답자의 70.5%가 ‘암행순찰차 도입이 효과 있다’고 답변했으며 ‘확대 실시 찬성’ 답변도 75.2%에 달했다.
국민 인식이 이처럼 크게 개선된 배경은 시범운행 기간 중 암행순찰차가 교통사고 예방에 기여했다는 분석이다. 실제 시범운행기간(3∼8월)에 발생한 교통사고 건수는 498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555건)보다 10.3%(57건)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또 사고 사망자수는 지난해 16명에서 6명으로 62.5%나 줄었다. 이 같은 효과에 경찰은 본래 11월쯤 전국으로 확대하려던 계획을 2개월 앞당기기도 했다.
경찰은 앞으로 제도가 정착하면 고속도로뿐만 아니라 일반도로까지 암행순찰차 투입을 확대할 방침이다. 경찰은 또 이번 추석 명절을 전후해 고속도로에서 나타나는 교통법규 위반에 대한 단속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