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해부] 몸값 치솟는 호남민심 새누리당 연대론

2016-09-09     김희민 언론인

차기 대선을 앞두고 호남의 전략적 가치가 급등하고 있다. 한마디로 호남민심 상한가 행진이다. 호남을 정치적 텃밭으로 하는 야권은 물론 여권까지 호남공략 움직임을 본격화하고 있다. 이른바 여야 모두 호남을 향해 강력한 러브콜을 보내고 있는 것. 이는 호남이 갖는 정치적 상징성 때문이다. 야권 차기주자들의 경우 전통적 지지층인 호남민심을 얻지 않고서는 정권교체의 대표주자로 떠오르기 힘든 구조다. 여권 역시 상황은 다급해졌다. 4.13 총선을 거치면서 정치적 텃밭으로 여기던 영남에서 야권이 대약진하면서 호남을 더 이상 남의 땅이라고 내버려둘 수만은 없게 됐다.

- 이정현, 호남과 새누리당 연대 새판짜기 돌입
- 유동적인 호남민심 秋 전두환 예방 등 돌발변수


여권의 호남 공략선두주자는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다. 전남 곡성인 고향인 이정현 대표는 새누리당의 8.9 전당대회 과정에서 보수정당 사상 첫 호남 출신 대표에 올랐다. 이 대표는 ‘호남 득표율 20% 이상’을 강조했다. 영남 기반이라는 당의 외연을 호남으로 확대해서 정권재창출의 기반을 마련하겠다는 야심찬 프로젝트다.

이른바 호남민심 장악을 위한 새누리당의 서진전략이 본격화된 것. 장기적으로 보면 영남(박근혜 대통령)을 중심축으로 충청(반기문 유엔 사무총장)과 호남(이정현 대표)을 묶는 역 DJP연대 시도라고 볼 수 있다. 이 대표의 노림수가 성공하면 야권 우위의 차기 지형은 일거에 뒤흔들릴 수 있다. 동서화합을 명분으로 정권재창출에도 성공하면 도랑치고 가재잡는 1석 2조의 전략이다. 

너도나도 호남민심 구애 경쟁

야권의 대권시계가 빨라졌다. 9월을 전후로 유력 차기주자들이 속속 대선출마를 사실상 선언한 것.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 안희정 충남지사, 더불어민주당 손학규 상임고문, 이재명 성남시장, 김부겸 의원이 대표적이다. 야권주자의 첫 관문은 호남민심 확보다. 텃밭에서 정치적 지지를 얻지 못할 경우 이는 사상누각에 불과하다.

이 때문에 야권의 유력 주자들은 호남민심을 얻기 위해 치열한 물밑경쟁을 벌이고 있다. 호남민심은 여전히 유동적이다. 특정주자를 선택했다기보다는 아직까지 전략적 계산과 고민을 이어가고 있는 듯하다. 더구나 추미애 더민주 대표의 전두환 전 대통령 예방 논란처럼 호남민심에 엄청난 파급효과를 미치는 돌발 변수가 발생할 경우 호남민심이 어디를 향해 있는지는 여전히 안갯속이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을 제외하고는 여야를 통틀어 차기 1순위를 달리는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아킬레스건은 호남민심이다. 4.13 총선에서 더민주는 호남지역 전체 28석 중 23석을 국민의당에, 2석을 새누리당에 내주며 고작 3석에 그치는 수모를 당했기 때문.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 역시 상황은 비슷하다. 국민의당은 4.13 총선에서 호남을 싹쓸이하면서 호남민심의 적자로 올라섰지만 총선 이후 총선 홍보비 파동 등 악재에 지지율은 상당 부분 추락했다.

총선 때와 비슷한 수준의 호남 지지가 없다면 향후 정치적 행보에서 재도약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전남 강진에서 칩거해온 손학규 전 더민주 상임고문도 호남민심의 다크호스다. 2014년 재보선 패배 이후 2년여에 걸친 기간 동안 전남 강진의 토굴에서 칩거한 것은 호남 민심의 지지를 얻지 않고서는 야권 주자로서의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

이정현 ‘노무현 탄핵 사과· DJ 껴안기’ 속사정

“여와 야는 오직 국민을 위해 일하는 파트너여야 한다. 서로 집권 경험이 있는 여야가 이제는 역지사지의 정치를 펼쳐야 할 때이다. 김대중 대통령 집권 시절 국정에 더 적극적으로 협조하지 못한 점 사과드린다. 국민이 뽑은 노무현 대통령을 탄핵했던 것 역시 사과드린다.”(이정현 대표, 9월 5일 정기국회 교섭단체대표연설 中)

이정현 대표의 지난 5일 20대 국회 첫 정기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은 엄청난 화제를 모았다. 기존 새누리당 지도부가 단 한 번도 언급하지 않았던 내용들이 폭포수처럼 쏟아졌다. 핵심은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탄핵에 대한 사과와 호남민심의 핵이라고 할 수 있는 김대중(DJ) 껴안기였다. “이게 정말 새누리당 대표의 연설이 맞느냐”는 반응이 나올 정도로 파격적이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내친 김에 호남과의 연대를 공식화했다. 마치 참여정부 시절 노무현 대통령이 한나라당과의 대연정을 주장한 것과 유사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이 대표는 특히 새누리당과 전신 정당의 호남차별 정책을 인정하고 공개적으로 사과했다.

“보수 우파를 지향하는 새누리당의 당 대표로서 호남과 화해하고 싶다. 본의든 본의가 아니든 호남을 차별하고 호남인의 자존심을 상하게 한 것에 새누리당 당 대표로서 참회하고 사과드린다. 호남도 주류정치의 일원이 돼야 한다. 호남과 새누리당이 얼마든지 연대정치 연합정치를 펼칠 수 있다고 확신한다.”(이정현 대표, 9월 5일 정기국회 교섭단체대표연설 中)

이 대표의 파격행보는 더 이어졌다. 고 김대중 전 대통령에 대한 극찬이었다. 이 대표는 6일 서울 동교동 김대중도서관 접견실에서 취임 인사차 고 김대중 전 대통령 부인인 이희호 여사를 만난 자리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을) 정말 존경하고 제가 일찍 정치 시작해서 아주 어렸을 때부터 많은 걸 배우고 그렇게 자랐다”고 말했다.

이어 김 전 대통령의 업적으로 남북화해와 IMF 국난사태 극복을 언급했다. 이 대표는 “김 전 대통령이 남북관계에서 화해나 평화를 평생 일관되게 말씀하면서 좋은 업적을 많이 남겨줬다”며 “정치하는 후배들로서 많은 것을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아울러 “(김대중 대통령이) IMF라는 그 어려운 상황에서 국민을 하나로 만드는 높은 지도력을 발휘해주셨다”며 “초보야당이라 무조건 반대하는 게 야당 역할인 줄 알았다. 그 힘들고 어려울 때 김 전 대통령이 얼마나 어려우셨을까”라고 고개를 숙였다.

박·반·이 여권발 ‘역DJP 연대’ 구상

이 대표의 파격행보와 톡톡 튀는 발언은 단순한 정치적 수사가 아니다. 아무리 호남출신 보수정당 대표라고 할지라도 아무도 예상할 수 없었던 수위의 발언이다. 더구나 이 대표의 이러한 호남인식은 새누리당의 전통적 기반인 보수와 영남 지지층이 이반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이 대표가 지지층 이반의 위험성에도 파격 주장을 내놓는 속내는 무엇일까. 노무현 탄핵 및 호남 차별 사과, DJ 재평가, 새누리당과 호남의 연대 언급은 차기 대선을 겨냥한 정치적 노림수가 숨어 있다.

이 대표가 ‘킹메이커’가 아닌 ‘킹’을 노리고 있는게 아니냐는 말이 나왔다. 이 대표의 언행을 종합해보면 여권 핵심부의 차기대선 필승전략이 녹아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상징하는 영남,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상징하는 충청, 이정현 대표가 상징하는 호남을 묶겠다는 것이다.

마치 97년 대선 당시 김대중 전 대통령의 필승카드로 꺼내든 DJP(김대중+김종필) 연대 전략의 역발상이다. 볼륨은 더 커졌다. 호남과 충청의 결합에다가 영남이 추가됐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 대표는 누구나 인정하는 박근혜 대통령의 복심이다. 이 때문에 이 대표의 파격발언은 박 대통령과 떼놓고 생각할 수 없다. 이 대표가 탄핵 사과와 DJ 껴안기라는 예민한 화두를 던질 때는 적어도 박 대통령의 묵인 내지는 승인이 있었다는 것이다. 실제 박 대통령도 호남과의 역사적 화해에 적극적이었다.

대표적인 게 2004년 8월 김대중 전 대통령에 사과를 건넨 것과 2012년 대선 국면에서 대표적인 호남 인사 영입이었다. 박 대통령은 김 전 대통령과의 만남에서 “아버지 시절 여러 가지로 피해를 입으시고 고생하신 데 대해 딸로서 사과말씀을 드린다”고 고개를 숙였고 김 전 대통령은 “국민화합의 적임자”라고 화답했다. 영호남의 통 큰 화합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이다.

또 2012년 대선국면 막판에서는 한화갑, 한광옥, 김경재 등 이른바 동교동계 핵심인사들을 영입하며 호남세력과의 화해도 시도한 바 있다.

대선은 결국 중도를 누가 장악하느냐 게임이다. 이 대표의 전략은 영남·보수라는 집토끼만으로 정권재창출이 어렵다는 점을 반영한 것. 이른바 산토끼를 잡아야 내년 대선에서 승리가 가능하다는 인식이다. 이 때문에 이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발언들이 쏟아져 나온 것이다.

실제 이 대표의 파격적인 국민통합 행보는 야권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추미애 더민주 대표가 전두환 전 대통령 예방을 추진했다가 당 안팎의 전방위적인 비난공세에 이를 취소하는 해프닝까지 벌어졌다. 이 대표의 파격적인 동서화합 행보에 위기감을 느낀 야권이 국민통합 전략의 일환으로 추진하다가 스텝이 꼬여버린 것이다. 

이제 관심이 쏠리는 것은 새누리당의 호남 러브콜이 어느 정도의 파괴력을 갖느냐다. 찻잔 속 태풍에 그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지만 이 대표의 뚝심과 열정을 감안할 때 가공할 파괴력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상반된 관측도 나오고 있다. 실제 야권에서는 이 대표의 호남 구애에 크게 개의치 않는다는 표정이다. 이 대표가 호남과 새누리당의 연대론을 내놓았지만 더민주와 국민의당은 공식적인 논평 없이 애써 무시했다.

야권의 속내는 호남 출신 보수정당 대표의 파격행보는 점수를 줄 만하지만 대선국면에서 유의미한 수준의 득표까지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자신감이다. 특히 호남은 이명박, 박근혜 정부로 이어지는 보수정권의 피로감 때문에 내년 대선에서 그 어느 때보다 정권교체의 열망이 강렬하다는 것. 결국 호남민심을 얻기 위한 이 대표의 서진전략은 찻잔 속의 태풍에 그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반면 더 이상 호남은 야권의 텃밭이라는 등식에 매몰돼서는 안 된다는 경계감도 잇다. 이정현 대표가 20대 총선에서 전남 순천에 출사표를 던졌을 때는 물론 새누리당의 8.9 전당대회에서 당 대표 출마를 선언했을 때 계란으로 바위치기라는 부정적 전망에 특유의 돌파력으로 위기를 극복하고 기어이 이를 달성한 점에 주목해야 한다는 것. 특히 야권이 호남에서 단일대오를 형성하지 못하고 사분오열된 상황은 여권의 호남공략에 좋은 기회가 된다는 것.

이 대표가 던진 화두는 여권으로 확산되고 있다. 정진석 원내대표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과거 김대중 대통령은 김종필 총재와 짝짓기를 했고, 노무현 대통령도 정몽준 의원과 짝짓기를 했고, 박근혜 대통령은 김종인 박사의 경제민주화를 채택했다. 이번에는 특히 절대 강자가 없는 상황이어서 짝짓기가 불가피할 것”이라면서 “국민의당과 정책적인 것을 넘어 세력연대도 할 수 있다. 그렇게 된다면 명실상부한 전국정당이 된다. ‘영충호’(영남·충청·호남) 시대를 여는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