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건으로 2억 원을 손에”…‘김영란법’ 위반 적발하는 ‘란파라치’학원 성업 중
“최소 월수 300만 원…1000만 원도 거뜬!”…“수요시장은 커지겠지만 실효성은 글쎄…”
[일요서울|장휘경 기자] “한 건 잘만 하면 2억 원을 거머쥘 수 있다.” 오는 9월 28일 김영란법(부정 청탁 및 금품 수수 금지법) 시행을 앞두고 파파라치 학원들이 김영란법을 어기는 사람들을 몰래 적발, 신고해 포상금 또는 보상금을 받는 이른바 ‘란파라치’를 양성한다며 수강생들을 대거 모집하고 있다. 수강생들 역시 ‘대박’을 터뜨릴 수 있다는 기대감으로 학원으로 몰려들고 있다. ‘란파라치’의 실체와 실효성에 대해 일요서울이 분석했다.
지난 1일 오후 12시 서울 강남의 한 학원. 약 70여명의 수강생들이 수업을 마치고 학원을 나오고 있었다. 얼마 전 회사를 그만 둔 전모(52)씨는 “‘란파라치’를 하면 떼돈을 벌 수가 있다고 해서 수강하고 있다”며 상기된 표정을 지어보였다. 회사에서 나온 후 마땅한 직장을 찾기가 쉽지 않았는데, 한 번에 ‘큰돈’을 거머쥘 수 있다는 주위의 말에 귀가 솔깃해 학원을 찾은 것이다. 전 씨는 실제로 ‘란파라치’를 하면서 포상금 또는 보상금을 받을 수 있다는 강한 자신감을 내비치기도 했다.
‘일확천금’의 꿈 이룰 수 있다?
같은 학원에서 나온 김모(55)씨 역시 ‘일확천금’의 꿈을 안고 강의를 들었다고 했다. 자영업을 하다 장사가 되지 않아 집에서 쉬고 있던 중 ‘란파라치’가 되면 최소 월 300만 원은 벌 수 있다는 말에 '란파라치'가 되기로 결심했다고 털어놓았다. 김 씨는 강의를 들은 후 “평소 카메라 작동법에 관심이 많았던 터여서 생각보다 어렵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며 “충분히 해낼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여성 예비 ‘란파라치’도 있었다. 전업주부인 조모(45)씨는 “집에만 있기가 무료해서 아르바이트로 일할 수 있는 것들을 알아보았지만 쉽지 않았다”며 “지인 중에 파파라치가 있어 그의 소개로 ‘란파라치’를 알게 되었다”고 학원에 오게 된 배경을 설명했다. 조 씨는 “강의를 들어보니 여자들도 얼마든지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큰 욕심 내지 않고 한다면 괜찮을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실망했다는 사람도 있었다. ‘란파라치’학원이 성업을 이루고 있다는 뉴스를 접하고 학원을 찾았다는 이모(50)씨는 “강의대로라면 정말로 큰돈을 쥘 수 있을 것 같은데, 그게 실제로 될지는 의문이다”면서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이 씨는 “현장을 촬영하고 사실상의 도청도 해야 하는데, 도청 자체가 불법이라 증거를 확보하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며 “좀 더 생각해보고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공무원, 교원, 언론인 많은 장소가 타깃
이들처럼 예비 ‘란파라치’를 모집하기 위해 대대적인 선전을 하고 있는 학원은 전국적으로 약 20곳인 것으로 업계는 추정하고 있다. 이들 학원은 전단과 현수막을 통해 ‘월 300만 원 안정적인 수입보장’ ‘한 건 하면 억대 포상금’이라는 문구로 선전하고 있다. 일부 학원은 이론 3시간, 실무 4시간 교육을 무료로 진행한다며 수강생들을 모집하고 있다. 김영란법이 금지하고 있는 3만 원 이상 식사, 5만 원 이상 선물이 오가는 현장을 적발하는 법을 알려준 뒤 카메라 작동법도 가르쳐주는 방식으로 강의가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적발 현장으로 공무원들이 대거 모여 있는 세종시를 꼽고 있다. 또 공무원들과 교원들이 많은 시청을 비롯해 구청, 학교 주변을 면밀하게 분석하고 있다. 언론사 주변 역시 감시의 대상이다.
‘대박’의 꿈, 허상일 수도
이들 학원이 주장하는 대로 ‘란파라치’를 하면 2억 원대의 포상금을 받을 수 있을까? 전문가들은 다소 회의적으로 보고 있다. 보상금(포상금 포함) 지급 기준이 엄격하기 때문이라는 것. 현장을 몰래카메라로 찍기만 해서는 포상금을 받을 수 없다. 법을 위반한 사람들 이름과 직함, 근무부서, 접대 및 수수 내용 등을 서면으로 신고해야 된다. 법조계 관계자는 “민간인이 구체적인 범죄 정보를 입수해 신고하기가 쉽지 않다”며 “게다가 설사 신고를 해도 부정한 돈이 국고로 환수되지 않으면 보상금을 받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억대는 고사하고 100만 원도 받기 힘들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영란법이 시행되면 적발 건수가 많아져 ‘란파라치’ 수요시장이 커질 수 있다는 점에는 법조계 관계자들도 동의하고 있다. 그러나 적발할 때마다 포상금과 보상금이 지급되는 것은 아니라고 이들은 지적했다. 정소영 변호사는 “실제로 보상금이 지급된 경우는 지난해의 경우 단 3건에 불과하고 포상금 역시 29건에 지나지 않는 등 지난 10년간 보상금과 포상금이 지급된 경우는 고작 400여 건 정도였다”며 “특히 보상금 받기는 그야말로 ‘로또’에 당첨되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적발 건수가 많아지게 되면서 허위 신고도 증가할 것으로 법조계는 예상하고 있다. 정 변호사는 “당연히 많아질 것이다. 신고가 허위로 밝혀질 경우 형사상 무고죄가 성립돼 처벌받을 수 있기 때문에 ‘란파라치’들은 조심해야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축적된 20년 노하우로 증거확보 자신
그러나 ‘란파라치’ 학원 측의 생각은 다르다. 강남의 한 학원 관계자는 “김영란법 발표 후 요즘 수강생들이 평소 30명에서 70명으로 폭증하고 있고 전화문의도 폭주하고 있다”고 현재의 분위기를 전한 뒤 “파파라치 20년 노하우를 수강생들에게 전수하고 있기 때문에 ‘란파라치’들이 현장 증거확보에 어려움을 겪지는 않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따라서 불법도청은 있을 수 없다고 일축했다.
이 관계자는 ‘란파라치’의 수입에 대해 “김영란법 통과 후 월 수입이 평소에 비해 3~4배 증가, 한 달에 1000만 원 정도는 거머쥘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 관계자는 수강생들에게 초소형 카메라 판매목적으로 무료특강을 하고 있다는 지적에 “그렇지 않다”고 강하게 부인하며 “우리는 단지 카메라 작동 방법을 가르쳐주고 있을 뿐 구입은 수강생 본인이 판단할 문제”라고 주장했다.
한편 공무원, 교원들은 김영란법의 ‘시범 케이스’로 적발되지 않기 위해 대책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일부 정부 부처는 직원들을 대상으로 김영란법 교육을 실시하고 있으며, 법원 역시 ‘란파라치’ 신고에 대비, 규정과 적정 과태료 등을 연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법원은 김영란법 위반 사례가 아직 없어 처벌 관련 규정을 마련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