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취재] 끊이지 않는 아동학대 범죄② 이배근 한국아동학대예방협회 회장 인터뷰
“좋은 부모 되기 위한 ‘부모교육’이 근본적 대안”
학대 줄이기 위해 적극적 ‘신고 의식’ 필수
아동보호시설↑·전문인력↑·법 시행의지↑
[일요서울 | 권녕찬 기자] “아동학대는 구겨진 종이뭉치와 같습니다.” 아동학대에 대한 경찰의 신고 안내메시지다. 한 번 구겨진 종이는 잘 펴지지 않듯 아동학대도 한 번 당하면 심각한 타격을 입는다는 뜻이다. 우리 사회에 이런 ‘구겨진 종이뭉치’가 끊임없이 만들어지고 있다. 올해만 11명의 아이들이 아동학대로 목숨을 잃었다. 아동학대는 부모의 무지, 물질적 남용, 정신건강장애, 빈곤, 실직, 사회적 고립 등 다양하고 복합적인 위험요인에서 비롯된다. [일요서울]은 지난 1일 오후 이배근(73) 한국아동학대예방협회 회장을 만나 아동학대 예방과 대응 방안에 대한 그의 주장을 들어봤다.
이배근 회장은 아동학대를 사전에 방지하기 위해 ‘부모교육’과 주위 사람의 적극적인 ‘신고’가 필수적이라고 역설했다. 그는 또 우리나라의 아동복지에 대한 수준이 예전보다 많이 나아졌다고 인정하면서도 여전히 부족한 면이 있다고 진단했다. 외국과 비교해 아동보호시설을 늘리고, 전문인력을 확충하는 한편 아동학대 발생 시 관련 기관의 강력한 법 집행의지가 뒷받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이배근 회장과 일문일답.
- 아동학대 원인을 보면 ‘부모의 부적절한 양육태도, 양육지식 및 기술 부족’이 전체 33.1%를 차지한다. 이를 해결하려면 어떤 노력이 필요한가.
▲ 우선 부모의 아동 양육 기술이나 지식 부족 등은 우리나라 가족 형태의 변화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전통가족이 빠르게 해체되고 핵가족화가 진행된 것이다. 전통가족 내에서는 자연스럽게 부모의 역할과 아동양육 기술에 대한 학습이 전해졌고, 조부모나 삼촌, 고모 등 부모의 폭력이나 학대로부터 아동을 보호해주는 가정 내 보호 장치가 있었으나 핵가족 내에서는 이 같은 보호 장치가 없다. 따라서 현재의 핵가족화 시스템에서 부모의 양육기술이나 지식 부족에 의한 아동학대 예방을 위해서는 ‘부모교육’이 필수적이다. 평생교육 기관이나 사회복지관 나아가 대학 공교육 등에서 예비부모교육이 이뤄져야 하고, 혼인신고 시 부모교육을 의무화하는 방안도 좋은 사례가 될 수 있다. 또 이를 위한 전국적인 캠페인도 필요하다. 현재 정부와 한국아동학대예방협회의 후원으로 사단법인 무궁화복지월드에서 ‘좋은 부모 되기 약속’ 서명 캠페인을 전개하고 있다.
- 아동학대 가해자 5명 중 4명이 ‘부모’다. 학대행위 주체가 부모인 탓에 학대를 발견하더라도 그게 훈육인지 학대인지 알아차리기 힘든 게 사실이다. 경계 기준을 어떻게 봐야 하나.
▲ 사실 훈육과 학대 사이의 경계선을 긋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러나 ‘고의적’이고 ‘반복적’인가 아닌가는 훈육과 학대를 구분하는 잣대가 될 수 있다. 대체로 가해부모들은 “자녀 잘되라고 때렸다”고 말하지만 그것은 훈육이 아니라 자녀에 대한 자기 화풀이인 경우가 많다. 자녀의 잘못된 행동을 수정한다면서 고의적이고 반복적인 신체·정서적 폭력은 분명한 학대 행위다. 훈육과 학대를 구분짓는 또 하나의 잣대는 가해진 행동의 결과가 어느 정도로 심각한가, 즉 심도(深度)가 될 수 있다. 아무리 부모와 자녀 사이에 미리 약속된 훈육으로서의 체벌이었다고 해도 그 상처가 깊고 아동이 감내할 수 없는 정도라면 이를 단순한 훈육으로 볼 수 없다.
- 우리나라의 ‘피해아동 발견율’은 외국과 비교해 매우 낮다(아동 1000명 당 한국은 1.1명, 미국과 호주는 각각 9.1, 17.6명). 선진국은 발견율을 높이기 위해 어떤 조치를 취하고 있고, 우리는 이를 위해 어떤 노력을 해야 하나.
▲ 아동학대 예방을 위해 주위의 ‘신고’가 최선의 방안이다. 미국·영국을 비롯한 세계 14개국은 ‘강제의무신고제도’를 둬 일반인이라도 아동학대를 목격하고 신고하지 않을 경우 즉각적인 처벌을 받게 돼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아동학대 신고율이 외국에 비해 매우 낮다. 미국이 60%, 가까운 일본은 68%나 되는데 우리는 29%에 불과한 실정이다. 2014년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시행으로 아동 관련 24개 직종 종사자들이 신고의무자로 지정되는 등 신고 의무가 강화됐다. 이들은 아동학대를 인지하고도 신고하지 않으면 최대 500만 원의 과태료를 물게 된다.
- 학대당한 아이들의 후유증이 심각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폭력 대물림 현상도 나타나고, 일부는 성인이 돼서 강력범죄를 저지르기도 한다. 그러나 학대당한 아이들을 보호할 수 있는 ‘보호시설’은 열악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보호시설의 수준을 어떻게 진단하나.
▲ 아동학대 방지를 위한 종합적인 예방과 치료를 담당하는 ‘아동보호전문기관’이 전국에 57개 설치돼 있고, 학대받은 아동을 일시적으로 보호하는 일시보호시설인 ‘그룹홈’(공동생활가정)이 36개, 청소년 위주의 일시보호시설인 ‘학대아동피해쉼터’는 38곳이 있다. 우리와 비슷한 인구 규모의 영국에 130여 개의 아동학대예방센터가 있는 것과 비교하면 우리나라는 상대적으로 부족하다. 각 시도, 나아가 전국 243개 시군구별로 아동보호전문기관이 설치돼야 한다. 또한 각 아동보호전문기관의 인력이나 예산이 부족한 형편이다. 그룹홈의 경우 평균 7~9명의 아이들이 보호되는데 인력은 원장 1명, 직원 1명으로 2명을 넘지 않는다. 보다 전문적이고 원활한 상담 치료를 위한 인력 확충과 피해아동 치료 및 학대가정 지원을 위한 예산 증액이 필요하다.
- 우리나라 법적 처벌 수준은 아동학대에 대한 국민 법감정에 뒤처진다는 목소리가 높다. 2014년 특례법 개정에도 처벌 수위가 여전히 낮은데, 이에 대해 어떤 의견을 가지고 있나. 외국의 처벌 수위는 어떠한가.
▲ 우리나라의 처벌 수위는 아직 낮은 편이다. 예를 들어 한국은 아동 성학대자에 대한 평균 형량이 약 4년 정도지만 미국은 특히 11세 미만 아동에 대한 성범죄자는 초범자도 25년 이상 구형하며 형량이 150년 또는 999년인 경우 등 사회적으로 영구 고립시킬 정도로 처벌 수위가 높다. 성폭행자가 석방될 경우는 집과 차량에 ‘위험. 성범죄자가 여기 있음’ 경고문을 표시한다. 일본은 언론에 성폭력범 신상을 공개해 이웃에 고지하기도 한다. 최근 우리나라도 아동학대치사인 경우 최대 무기징역까지 형량은 높아졌으나 무엇보다 사정기관의 법 시행의지가 강화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