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계 hot인물]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

대통령 보좌하다 민간기업 고문으로…‘농심 기업’ 향방은

2016-09-02     이범희 기자

[일요서울 ㅣ 이범희 기자] 김기춘 청와대 전 비서실장이 민간 식품기업인 농심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그 배경에 이목이 쏠리고 있다. 고위공직자, 그것도 대통령을 직접 모신 인사의 민간 기업행이라 더욱 주목받는다.

농심은 “김 전 실장은 2008년부터 2013년까지 자사의 법률고문을 지낸 적이 있다”며 “이번에 다시 복귀하는 것”이라는 입장이다. 그러나 이를 바라보는 외부의 시선이 부드럽지는 못하다. 농심 신춘호 회장이 신격호 롯데그룹 회장의 동생이고 현재 사정당국의 강도 높은 수사를 받고 있는 곳이 ‘롯데’이기 때문이다.

2선 물러난 김기춘, 광폭행보…농심 비상임 법률고문으로
롯데 수사 영향 미칠까 vs 롯데와 사이 안 좋아…이목 쏠려

“대통령을 직접 보좌하던 사람이 민간기업으로 옮겼다니 놀랍다. 과연 그의 역할이 무엇일지 궁금하다”, “고위공직자의 민간기업 입성에 대해 취업 심사위가 승인을 했으니 문제는 없다지만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농심에 대한 불매운동을 벌이자” 등 김기춘 전 비서실장이 농심 비상임 법률 고문으로 자리를 옮긴다는 사실이 알려진 직후 누리꾼들의 반응이다. 대부분의 누리꾼들은 그럴 수도 있다고 하면서도 쉽사리 이해하지 못하는 분위기다.

재계의 한 인사는 “이번 인사로 농심이 주목받게 됐다”며 “향후 농심의 향방과 김 신임 비상임 법률 고문의 역할이 어떠한 작품을 만들어 낼지 기대된다”고 말했다.
현행 법률상 공직자는 퇴직 전 5년 동안 소속했던 부서의 업무와 퇴직 후 취업하려는 기관의 업무간 관련성이 인정되면 취업할 수 없다.

그러나 공직자윤리위는 지난 1일 “취업심사를 신청한 김 전 실장에 대해 퇴직 전 업무와 취업예정 업무 사이에 밀접한 관련성이 없다고 보고 취업가능 결정을 내렸다”고 밝혔다.

김 전 실장은 박근혜 대통령 취임 첫 해인 2013년 8월 대통령비서실장으로 발탁돼 2015년 2월에 물러났다.

김 전 비서실장이 농심에서 하는 일은 비상근으로 경영 전반에 대한 법률자문 역할을 할 것으로 알려진다. 앞서 김 전 실장은 2008~2013년 이 회사 법률고문을 지낸 적이 있어 이번에 복귀한 것으로 정계는 분석하고 있다. 김 전 실장은 2013년 8월 비서실장에 임명되기 직전까지 농심의 법률고문과 함께 새누리당 김세연 의원이 대주주인 동일고무벨트의 상임 감사로도 일하기도 했다.

김 전 실장은 신춘호 농심 회장과의 남다른 인연이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신 회장이 고등학교에 늦게 진학해 두 사람 모두 비슷한 시기에 부산에서 고교를 다녔고 바둑 애호가로도 유명하다. 김 전 실장은 한국기원 부이사장과 고문을 역임했으며 17대 국회에서 바둑진흥법을 발의하기도 했다.

신 회장은 1999년부터 매년 한국기원과 함께 ‘농심신라면배 세계최강전’ 바둑 대회를 개최하면서 김 전 실장과 친분을 쌓았다.

대한민국 정치인. 불사조

인터넷 백과사전 나무위키에 따르면 김 전 실장은 1939년 11월 25일 일제강점기 경상남도 통영군에서 태어났다. 경남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59년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에 입학, 1962년 사법시험에 합격해 광주지검과 부산지검, 서울지검에서 검사로 근무했다. 대구고검의 검사장을 지내기도 했다.

박정희 시대에 유신헌법을 만든 주역이며, 유신 후반기 중앙정보부 대공 수사국장을 지냈다.
70년대 공안검찰로 활약했고, 육영수 여사 저격 사건 당시 묵비권을 행사하던 문세광을 하루 만에 설득한 경력이 있다. 그 경력을 바탕으로 70년대 중후반에 공안통에서 가장 최전선직에 있는 중앙정보부 대공 수사국장으로 활동했다.

1977년 20사단 예하 62연대 1대대장 월북 사건에 분노한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로 중앙정보부 소속으로서 국군보안사령부 조직 축소 안을 제안해 시행하다가 10.26 사건으로 중앙정보부와 국군보안사령부 간의 관계가 역전되고 전두환이 집권하자 한직을 맴돌기도 했다. 그나마 그것도 후배 박철언이 허화평에게 충성편지를 쓰도록 권유해 그렇게 한 결과이기도 하다.

노태우 정권 시기 검찰총장을 시작으로 1991년 5월 27일에서 이듬해 10월 8일까지 법무부 장관으로 재직했다. 법무부 장관 시기 강기훈 유서대필 조작 사건 때 기획한 인물 가운데 한 명이었으며, 법무부 장관에서 물러난 이후 1992년 12월 11일에 부산 지역 기관장들을 모아 지역감정을 조장해 여당 후보를 지원하는 내용을 의논했던 초원복집 사건으로 기소됐다.

김기춘법률사무소를 개업해 변호사로서 활동했고 KBO 총재도 역임했다.

2013년 8월 5일에 제 2대 대통령비서실장으로 임명됐다. 허태열 전 실장에 이어 새로 취임한 김기춘 비서실장은 부속실로 쏠리던 힘을 비서실로 당겨왔다는 평을 들었다. 김기춘 비서실장은 이재만 총무비서관을 포함해 5명으로 구성된 청와대 인사위원회의 위원장을 맡고 있었으며, 평소 인사 문제에 있어서 뜻을 강력히 관철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2013년 9월 13일 채동욱 검찰총장이 혼외자 문제가 불거지며 사퇴를 결정하자, 이의 배후에 김기춘 실장이 거론되며 사퇴를 주장하는 목소리가 높아진다.

언론에서 김기춘 비서실장 경질설 등의 보도가 자주 나오자 상부에서 이에 대해 조사하라는 지시가 박관천에게 하달된다. 박관천은 조사 도중 정윤회에 관한 제보를 입수하고 이에 관해 보고서를 작성한다. 이때 작성된 보고서가 언론에 유출되며 비선실세 국정개입 의혹에 휘말리게 된다.

이듬해인 2015년 3월 자원외교 비리 조사에 따른 성완종에 대한 사정이 본격화하기 직전 비서실장직에서 사퇴한다. 이른바 성완종 리스트에서 그의 이름이 등장해 해명하는 곤란을 겪어야 했다.

가족 얽힌 안타까운 소식도

가족과 얽힌 안타까운 소식도 전해진다. 김 전 실장은 교통사고로 인해 의식불명에 빠진 외아들의 성년후견인으로 지정됐다.

법조계에 따르면, 법원은 지난달 22일 김기춘 전 실장의 신청을 받아들여 아들 김모씨에 대한 성년후견 개시를 결정했다. 김 씨의 아내도 김 전 실장과 함께 공동 후견인으로 지정됐다.

성년후견 제도는 의사 결정능력이 부족한 사람에게 법원이 후견인을 지정해 각종 법률행위를 대신하도록 허락하는 제도다. 앞서 김 전 실장은 지난 5월 아들에 대한 성년후견 개시를 서울가정법원에 신청했다.

김 전 실장의 아들은 2013년 12월 말 교통사고로 의식불명 상태에 빠진 것으로 알려졌다. 김 전 실장은 재직 중이던 지난해 1월 9일 국회 운영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자식이 병원에 누워 사경을 헤맨 지 1년이 넘었는데도 자주 가보지 못한다”며 안타까움을 드러냈었다.

한편 윤리위는 지난달 26일 55건의 퇴직공직자 취업심사를 벌여 2명은 취업제한, 53명은 취업가능 결정을 각각 내렸다고 이날 밝혔다. 취업제한 결정은 퇴직 전 5년 동안 소속됐던 부처의 업무와 취업 예정기관의 업무 간에 밀접한 관련성이 있는 경우에 내려진다.

그 결과 김희락 전 국무총리비서실 정무실장도 부실채권 관리 기관인 연합자산관리㈜(UAMCO) 고문으로 재취업한다. 경찰청 치안정감 퇴직자는 SK㈜에 취업하게 됐다.
윤리위는 이달 한국시설안전공단 본부장으로 취업하려던 국토교통부 4급 퇴직자에 대해서는 취업 불승인 결정을 내리고, 사회복지법인 ‘손과손’ 부평지원장으로 취업을 신청한 인천시 3급 퇴직자에 대해서는 취업제한 조치를 했다.

취업 불승인은 퇴직 전 5년간 소속됐던 부서와 업무상 관련됐고 취업을 승인할 수 있는 특별한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 경우다. 또 취업 제한은 퇴직 전 5년간 소속됐던 부서와 업무상 밀접하게 관련됐을 때 내리는 판정이다.

지난해를 통틀어 취업심사를 요청한 퇴직 공무원 347명 가운데 89%인 309명이 재취업 가능 결정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