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자보다 조선족이라고 말하는 게 더 낫다”

탈북민들의 고달픈 정착생활

2016-08-20     오두환 기자

[일요서울Ⅰ오두환 기자] 북한 주민들의 탈북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이미 우리 주변에는 많은 탈북민들이 함께 생활을 하고 있다. 하지만 목숨 걸고 탈북 한 그들의 정착생활은 결코 쉽지만은 않다. 탈북민이라는 꼬리표와 낯선 자본주의 사회에서 겪는 치열한 경쟁 등 그들은 아직도 생존을 위해 힘겨운 하루를 살고 있다.

북한에서는 의사였어도 막노동밖에 못하는 게 현실
가족·형제 대하듯 따뜻한 마음과 관심이 필요하다

최근 언론을 통해 안타까운 사연이 알려졌다. 가족과 함께 탈북한 의사 출신의 40대 남성이 인천의 한 빌딩 유리창을 닦다 추락해 숨지는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자유를 찾아온 그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경찰에 따르면 지난 13일 오전 8시 35분께 인천 연수구 송도동의 한 빌딩 2층에서 실내 유리창을 닦던 중 의사 출신 탈북자 김성구(48) 씨가 지하 1층으로 떨어졌다.

경찰 조사결과 김 씨는 안전모와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안전장비 등을 착용하지 않은 채 2층 외부 유리창을 닦던 중 에스컬레이터와 유리창 사이 13m 높이에서 떨어진 것으로 드러났다.

숨진 김 씨는 북한 함경북도 청진시에서 의대를 졸업한 뒤 의사로 일하다 아내의 간질환과 고혈압 치료를위해 딸과 아내를 데리고 지난 2006년 한국으로 입국했다.

김 씨는 그동안 아내의 치료비와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 일을 가리지 않고 공사장에서 막노동을 하며 지내온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북한에서는 의사였지만 그 경력을 인정받지 못해 제대로 된 직장에 취업을 못했다.

탈북자 중에는 전문직 출신자들도 많다. 통계자료에 따르면 총 685명의 전문직 출신 탈북민 중에 일하는 탈북민은 51.3%에 그쳤다. 이 중 관련 전문직 종사자는 16.8% 뿐이다. 전문직 탈북자들의 현실이 이 정도인데 일반 탈북자들은 어떻게 생활하고 있을까.

탈북자로 할 수 있는 일
식당종업원·막노동 등

탈북자들이 국내에서 취업을 하기란 하늘의 별따기 만큼 어렵다. 오죽하면 탈북자임을 밝히는 것보다 차라리 조선족이라고 말하는 게 취업하기 쉬울 정도다. 그러다 보니 일반 직장에 다니는 것은 꿈도 꾸기 어렵다.

그래서 많은 탈북자들은 식당 종업원으로 일하거나 공사장 등에서 막노동을 한다. 일주일, 한 달씩 근무하며 수시로 직장을 바꿀 수밖에 없다. 이렇게 버는 돈이 하루 6만 원가량 한 달 내내 일을 해도 150만 원에서 180만 원선이다. 각종 공과금과 월세 등을 내면 혼자 살기에도 빠듯하다. 가족이 있는 경우는 더 힘들 수밖에 없다.

탈북자들이 정착생활을 하면서 겪는 가장 큰 어려움은 편견으로 무장한 눈초리다. 오죽하면 취업 시 탈북자라고 밝히지 않고 조선족이라고 밝힐까. 하지만 이를 악용하는 악덕 고용주들도 많다.

하루 일당 6만 원을 주기 싫어 생트집을 잡는 고용주도 많다. 잘 지내던 식당 사장이 돌변해 당장 일을 그만두라고 내쫓는 경우도 허다하다. 이뿐만이 아니다. 탈북자들은 대부분 중국을 통해 들어오다 보니 중국어가 가능한 경우가 많다.

식당 등에서 일을 하다 보면 조선족과 함께 일할 경우가 많은데 탈북자들이 조선족에게는 남한사람 취급을 받는다. 하지만 식당에서는 조선족 취급을 받으니 마음 편하게 이야기할 상대를 찾는 것도 쉽지 않다.

범죄자로 전락하거나
재입북 시도하기도

대부분의 탈북자들은 힘겨운 생활 속에서도 꿋꿋이 버티며 희망을 갖고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하지만 남한 생활을 견디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조선인민군 중사로 복무하던 이태한(22·가명)씨는 2014년 6월 북한을 탈출해 국내에 입국했다. 한국사회에 적응하기 위해 일을 시작했지만 쉽지 않았다. 결국 그는 최근 1년간 직장을 5곳이나 옮기는 등 적응에 실패했다. 그러다 물건을 훔치고 무면허로 차를 운전하다 전과자로 전락했다.

이 씨는 집행유예 기간에 또 범죄를 저질러 재판을 받던 지난 5월 10일 유죄 선고를 받을 경우 구속될 것이 두려워 북한으로 돌아가고자 중국 연길행 비행기표를 샀다가 수사기관에 잡혔다.

김화선(24·가명)씨는 북한에서 고등학교에 다니던 2006년 어머니가 불법장사를 했다는 이유로 보위부에 적발돼 교화소로 끌려가자 탈북했다. 극심한 생활고 끝에 북한을 탈출, 중국에서 생활하다가 2009년 8월 한국에 들어왔다.

김 씨는 식당 종업원 등으로 일하며 번 돈을 북한에 남은 가족에게 송금하고 일부는 생활비로 쓰며 지난 7년간 한국생활을 해왔다. 그러던 올해 초 “잠시 북한에 다녀가라”는 어머니의 연락을 중국의 탈북 브로커로부터 전해 듣고 북한에 들어가기 위해 지난 3월 중국 연길로 향하려다가 공안당국에 붙잡혔다.

결국 이 씨와 김 씨는 국가보안법상 탈출혐의로 검찰에 기소되고 말았다.

탈북자끼리 사기쳐
빈털터리 되기도

탈북자들은 힘겨운 한국생활을 같은 탈북민들끼리 공유하기도 한다. 국내에 정착한 뒤에 완전히 연락을 끊는 경우도 많지만 탈북자들끼리는 딱 보면 서로 알아본다고 한다. 하지만 인적 네트워크 속에서 각종 사기가 등장해 탈북자들에게 상처를 입힌다.

대표적인 사례가 한성무역 한필수 대표의 사기사건이다. 한 대표는 탈북자 사이에서 신화적인 존재였다. 두 번의 탈북을 통해 국내에 정착한 뒤 사업가로 성공해 성공적인 삶을 살았기 때문이다. 기자가 만났던 한 대표는 자신감이 충만한 인물이었다. 또 탈북자들의 성공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았다. 그의 회사 직원 대부분은 탈북자들이었다. 심지어 북한의 가족들에게 돈을 보내야 할 일이 생기면 자신이 조금 더 챙겨 주기까지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한 대표는 2014년 탈북자들을 포함해 약 230명으로부터 총 160여억 원의 투자금을 받아 중국으로 도망쳤다. 다행히 지난해 5월 중국공안에 붙잡혀 지금은 구속된 상태지만 한 푼 두 푼 모았던 돈을 투자했던 탈북민들은 빈털터리가 됐다. 당시 피해자들은 정부라도 나서 구제해 주길 기대하지만 상황은 쉽지 않다.

탈북자들에게 한국은 기회의 땅이다. 그래서 목숨을 걸고 한국으로 넘어온다. 하지만 이들은 이 땅에서 또 다른 차별 속에 힘겨운 생활을 하고 있다. 우리가 그들에게 동포애를 표현해야 할 때다.

odh@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