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이면 애인도 대신해주는 ‘대행(代行)민국’

당신의 아바타가 돼 드립니다

2016-08-20     권녕찬 기자

설득·사과·이별 등 감정 대행까지 성행
자소서 대필·아이돌 공연 표 구매 대행도
 
[일요서울 | 권녕찬 기자] 그야말로 ‘대행민국’이다. 기본적인 심부름 대행에서 각종 대필, 설득, 사과, 이별 등 감정 대행까지 해준다. 최근에는 ‘하늘의 별 따기’인 아이돌 콘서트 표를 대신 끊어주는 대리 티켓팅도 성행하고 있다. 불편하거나 자신이 하기 꺼려지는 일을 대신 하도록 맡겨버리는 것이다. 이 같은 업체들은 인터넷 검색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을 정도로 성업 중이다.
 
“오래 사귄 남자친구가 있는데 헤어지려고 많은 시도를 했지만 집착이 워낙 심해 헤어지지 못했어요. 업체에서 저희 아빠의 대행으로 전화를 잘해줘서 남자친구가 단념을 하는 것 같아요. 혹시 저와 비슷한 상황이신 분들 혼자 고민하지 말고 도움 받길 추천합니다.”
 
“근무하는 직장에서 저를 쫓아다니는 남성 직원을 떼어놓고 싶어 반신반의하면서 전화신청했어요. 절 맘에 두고 있는 사람이 있다고 인기있는 척하면서 제 직장으로 남친처럼 방문해주는 형태로 요청했어요. 책임감 있게 잘 해주시더라구요. 강추합니다.”
 
한 대행사이트에 올라온 후기다. 단순한 심부름 대행을 넘어서 ~척, 설득, 이별 등 ‘대행’의 영역이 넓어지고 있다. 집착하는 애인 단념시키기, 남자친구 있는 척 작업남 떼어놓기 등 대행의 업무가 세분화되고 있다.
이 사이트의 누적 이용고객은 약 60만 명이라고 돼 있다. 하루에도 게시판에만 수십 개의 상담 글이 올라온다. 이 업체는 대행 서비스를 진행하는 직원이 단순 알바생이 아니라 대학교 때 연기를 전공했거나 심리학을 전공한 전문가들로 구성돼 있다고 강조한다.
 
이 같은 대행 서비스는 상대방이 업체에서 나왔다는 사실을 모르는 상태에서 이뤄진다. 때문에 의뢰인과 대행자간 사전 정보 공유는 필수다. 대행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집착하는 여자친구와 헤어지는’ 이별 대행을 가정해 이 곳에 문의해봤다.
 
우선 가격에 대해 “지역·시나리오·난이도에 따라 다르지만 부모로 가장해 전화상으로 대행할 경우 12~20만 원 정도”라고 말했다. 직접 대면해 연기를 펼치면 금액은 더 커진다. 최대 50만 원까지 올라간다. 자신이 처한 상황과 정보를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거기에 맞는 대안을 내놓는다. 의뢰인이 세부적으로 역할과 지침을 설정할 수도 있다.
 
비슷한 내용으로 다른 업체에 문의해봤다. 이 곳도 가격, 절차 등 유사했다. 연기력·경력·난이도에 따라 15, 25, 50만 원 3등급으로 나뉜다고 했다. 세부내용 상담 후 계약금 일부를 입금하면 대행 도우미가 선정된다. 구체적 상황과 정보를 숙지시킨 뒤 최종 점검 후 행사에 나선다.
 
최종렬 계명대 사회학과 교수는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대행서비스를 이용하면 비용 지불을 통해 익명성을 보장받고 직접 사람을 만나지 않아도 자신의 행위에 자유를 얻을 수 있다”며 “사람들과 대면하고 상호작용하는 것이 부담스러워지는 사회에서 정서적인 압박감을 벗어나기 위해 서비스를 이용하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다 써드립니다
 
대행 서비스 중 글을 대신 써주는 ‘대필’도 대표적이다. 2003년에는 10여곳에 불과했던 인터넷 대필 업체가 요즘은 100여개가 왕성하게 활동 중이다. 이 들은 각종 연설문, 주례사, 논문, 직장인 독후감, 정치인 매니페스토(선거 공약)까지 다양한 글을 취급하고 있다. 이 중에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여야 하는 탄원서나 반성문, 편지 같은 글도 포함돼 있다. 보통 분량은 2~3매 이내가 일반적이고 가격은 7~12만 원선이다. 소요 시간은 내용, 분량마다 차이가 있지만 3일 이내 빠르면 하루 안에도 가능하다.
 
대필 중에서도 자기소개서 대필 서비스가 인기다. 영어능력, 봉사활동, 학점 등은 좋지만 서류 전형에서 번번이 떨어질 때 청년들은 자소서 대필업체를 찾는다. 이 가운데 재능기부 형식으로 저렴한 가격에 대행 서비스를 진행하는 곳이 있어 사람들의 관심을 끈다. 재능 거래 중개 업체인 이 곳은 작가, 디자이너, 블로거, 프로그래머, 번역가 등 재능 판매자와 구매자를 연결해주는데 매달 1만여건의 거래가 발생하고 있다. 가격도 저렴하다. 자기소개서는 초안이 있으면 1만 원, 복잡하거나 많은 내용을 수정하지 않으면 무료로 수정해 주기도 한다.
 
하지만 이 같은 대필 서비스에 대해 일각에서는 우려를 표시한다. 홍세희 고려대 교육학과 교수는 “스마트폰이 일반화되고 책이나 신문 등 텍스트(text)를 읽고 해석할 기회가 줄어들면서 어휘력과 글쓰기 능력은 물론 종합적인 사고력과 논리력도 떨어지는 부작용이 일어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대리 티켓팅 전쟁
 
최근에는 아이돌 가수 콘서트나 톱 배우 팬 미팅 티켓을 대신 구해주는 대리 티켓팅도 성행이다. 빅뱅 콘서트 티켓팅은 ‘하늘의 별 따기’로 알려져 있다. 예매 시작 2초만에 스탠팅석 등이 매진된 사례도 있다. 때문에 팬들은 전문 티켓팅 대행 업체를 찾는다. 현재 10개 정도의 업체가 성행 중이다.
 
해당 업체들은 예매 시작 전 고객들로부터 예약금 일부를 받은 뒤 미리 고용해둔 아르바이트생들을 동원해 표를 확보한다. 이후 예매에 성공하면 표 값에 수고비 명목의 대행수수료를 더한 돈을 받고 고객들에게 표를 넘겨준다.
 
일각에서는 대리 티켓팅과 암표의 차이가 없다며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하지만 일부 팬들은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표를 구하기가 어려워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다.
 
kwoness7738@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