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취재] 7人會 김기춘 비주류 연쇄 회동 막전막후
[일요서울ㅣ홍준철 기자] 박근혜 대통령 원로 자문그룹인 7인회를 대표하는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의 광폭 행보가 주목받고 있다. 지난 4.13 총선에서 비주류 후보들의 선거사무소와 유세 현장을 찾아 ‘조용하게 ‘선거’를 지원했다. 또한 연정을 추진하는 남경필 경기도지사와 ‘비밀 회동’을 가졌다는 지역 정가 소문까지 그럴 듯하게 돌았다.
그동안 조용하게 지내던 김 전 실장이 활발하게 주류와 비주류를 오가는 행보에 여권의 이목은 쏠릴 수밖에 없다. 여권 일각에서는 김 전 비서실장이 ‘차기 대선에서 친박 타이틀로 정권 재창출이 힘들다는 점에서 비박계 끌어안기에 나선 게 아니냐’는 시각도 나왔다. ‘대통령의 복심’으로 일컫는 이정현 당 대표가 친박 중심의 정권 재창출을 도모하고 있는 가운데 김 전 실장의 ‘통합’ 행보가 주목을 받는 이유다.
- ‘김기춘-남경필 회동설’ 윤여준, “난 모르는 일”
- 4.13총선 ‘MB맨’ 이상휘, 범비주류 나경원 지원
박근혜 대통령의 친박 원로자문 그룹인 7인회는 박 정권을 탄생시킨 후 ‘정중동’의 행보를 보였다. ‘7인회' 멤버로는 현경대(76) 전 민주평통수석부의장을 비롯해 김기춘(76) 전 비서실장, 강창희(69) 전 국회의장, 김용환(83)·김용갑(79) 새누리당 상임고문, 최병렬(77) 전 한나라당 대표, 안병훈(78) 전 조선일보 부사장 등이 있다.
7인회는 2012년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 경선과 대통령선거 과정에서 박근혜 후보에게 결정적인 정치적 조언을 해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인사 논란이 벌어질 때마다 간혹 막후 세력으로 거론되며 비공식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최근까지 7인회 멤버들은 대부분 정계를 은퇴하거나 은퇴 의사를 밝히고 공식 활동은 하지 않고 있다.
7인회 김기춘 주류-비주류 총선 지원 ‘왜’
그나마 언론에 얼굴을 공식적으로 비췄던 때는 2015년 YS 장례식장에 현경대 전 평통부의장과 김기춘 전 실장이 전부였다. 특히 김 전 실장은 7인회 멤버 중 최근까지 정치 행사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등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다. 지난 총선에선 김 전 실장은 수도권내 출마한 비주류, 범비주류, 주류 인사들을 ‘깜짝 방문’해 후보자들을 놀라게 만들었다.
김 전 실장은 지난 3월31일에는 서울 동작을에 출마한 새누리당 나경원 후보 유세장을 방문했다. 나 의원은 “며칠 전 김 전 실장이 갑자기 유세장에 나타나 격려를 해줘 깜짝 놀랐다”고 밝혔다. 나 의원실에서는 김 전 실장이 사전 연락 없이 혼자 나타났다가 몇 분 머문 뒤 자리를 떠났다고 전했다.
또한 김 전 실장은 4월6일에는 서울 동작갑에 출마한 이상휘 새누리당 후보 캠프를 전격 방문했다. 특히 이 후보는 MB정부에서 춘추관장을 지냈고 청와대 비서관을 지내 정통 ‘MB맨’으로 통하는 인사다. 당시 이 후보 측에서는 “내비게이션에 입력하는 주소를 물어보는 것으로 볼 때 김 전 실장이 손수 운전하고 온 것 같다”고 말했다.
김 전 실장은 이 후보와는 일정이 맞지 않아 얼굴을 보지 못한 대신 메모를 남겼다. 그는 A4용지에 자필로 “이상휘 후보님! 壓勝(압승)하여 國家(국가) 위해 큰일 많이 하시기 빕니다. 金淇春 拜(김기춘 배)”였다.
이 후보는 “김 전 실장이 방문할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했다”며 “하지만 정계 원로께서 직접 방문해 주신 데 대해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후보는 선거에서 패한 뒤 8.9 전당대회에서 비주류 대표로 나선 정병국 후보를 지원하는 등 비주류와 함께 하고 있다.
한편 김 전 실장은 4월3일에는 박근혜 정부하에서 청와대 대변인을 지낸 민경욱 후보도 찾았다. 인천 연수을에 출마한 민 후보는 박 대통령 측근으로 분류되고 있지만 나 의원이나 이 후보의 경우 민 후보와는 결이 다르다는 점에서 여의도 호사가들은 ‘정치적 의도가 있는 게 아니냐’는 추측이 무성했다.
이에 김 전 실장은 언론을 통해 “나도 선거에 세 번 출마해 본 사람으로서 고생하는 후보들에게 힘을 주려 간간히 찾아다니고 있다”며 “새누리당의 승리를 마음으로 늘 응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상휘 후보만 배지를 달지 못했고 나경원·민 경우 두 인사는 배지를 달고 국회에 입성했다.
하지만 김 전 실장의 당내 주류·비주류·범비주류 인사들과 접촉면을 넓히며 통합 행보를 보이고 있는 것에 대해 정치권은 예의주시하고 있다. 특히 선거 이후 야권과 ‘연정’을 통해 협치를 실현하고 있는 남경필 경기도지사와 ‘5월 회동설’까지 퍼지면서 더욱 주목받았다.
‘5월 회동설’의 주 내용은 ‘비주류’인 남 지사가 새누리당내 젊은 잠룡으로서 세력을 확대하기 위해 윤여준 전 장관을 영입한 이후 친박 주류 원로 자문그룹인 7인회를 대표하는 김 전 실장을 통해 주류 세력에게도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는 것이었다. 또한 ‘주류만으로는 안 되고 비주류와 힘을 합쳐야 정권 재창출을 할 수 있다’는 의견도 김 전 실장에게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남 지사와 김 전 실장이 회동하는 데 ‘가교 역할’은 경기도 산하 ‘G-MOOC(인터넷을 통한 교육 프로그램)’ 추진단장으로 내정된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이 했고 당시 동석한 것으로 알려졌다. 윤 전 장관과 김 전 실장은 올해 78세로 1939년생 동갑내기에다 한나라당 16대 국회의원직을 함께 한 인연이 있다.
김기춘-윤여준 39년생 동갑내기·16대 동료의원
또한 윤 전 장관은 김 전 실장이 청와대에 입성한 직후 가진 본지와 인터뷰(1006호, 2013.08.12.)에서 호평을 한 바 있다. 당시 윤 전 장관은 김 전 신임 비서실장에 대해 “정수장학회 출신으로 3공 때 공안검사, 중앙정보부 대공수사국 부장을 지냈고 유신헌법 초안을 작성했으며 법무장관 시절 많은 시국사건, 부산 초원 복집사건 등 김기춘 비서실장의 전력을 보면 강경한 공안 제일주의자처럼 보이지만 실제 인품은 그렇지 않다”며 “나름 유연한 면도 있고, 합리성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품성도 있다. 특별히 가까운 사이는 아니지만 의원 시절 그를 볼 때마다 경력과 인품이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고 밝혔다.
또한 그는 “국민 상당수가 부정적인 시선을 보내고 선입견을 갖는다. 심지어 ‘공안놀이 하는 것 아니냐’는 극단적 우려도 나오는데 그건 좀 지나치다. 대통령의 고위직 인사는 민심에 주는 영향이 매우 큰 고도의 정치 행위다. 다수의 국민으로부터 동의를 얻을 수 있어야 한다. 대통령 비서실장은 중요한 자리이기 때문에 개인이 가진 능력만큼 인사의 상징성이 중요하다.
때문에 대통령이 정치적 부담을 많이 떠안는 것이다”고 정치적 의미를 뒀다. 하지만 ‘3인 회동설’에 대해 윤 전 장관은 8월19일 본지와 전화 통화에서 “전혀 모르는 일”이라고 밝혔다. 윤 전 장관은 “남 지사가 개인적으로 따로 봤는 지는 모르겠다”면서 “개인적으로 얼굴을 안 본 지 몇 년이나 됐는지 모르겠다”고 ‘3인 회동설’을 일축했다.
한편 윤 전 장관은 3년 전 본지와 인터뷰에서 김 전 실장에 대해 호평한 것과 달리 이번 인터뷰에서는 비판적으로 돌아섰다. 그는 “당시에는 김 전 실장이 윗사람의 비위를 상하지 않게 하면서 자기 주장을 하는 능력에 대해 평한 것”이라며 “하지만 (김 전 실장은 박 대통령에게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고 아쉬움을 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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