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가장 현실적인 재난영화 ‘터널’, 당연한 상식이 어려운 세상을 비꼬다.

2016-08-07     변지영 기자

[일요서울 | 변지영 기자] 김성훈 감독의 터널은 재난 영화 특유의 감동 공식을 과감하게 깨부수고, 현 시대에 대한 풍자를 빠른 전개력과 연출력에 코믹함까지 가미해 들고 왔다. 여기에 이유를 설명하지 않아도 어느 감독이라도 캐스팅하고 싶은 배우들인 하정우, 오달수, 배두나라는 믿음직한 배우들이 압도적인 연기력을 선보였다. 

영화는 초반, 불필요한 사전 설명 없이 터널이 무너지고, 주인공 이정수(하정우 분)가 갇히는 상황부터 시작한다. 김 감독은 재난이란 것이 우리 삶에 예고 없이 찾아오지 않는가. 그런 느낌을 주기 위해 영화 초반에 바로 터널이 무너지는 장면을 보여줬다고 말한다..
 
터널에 들어가기 전 정수가 들른 주유소에서 할아버지가 건네준 물병 두 개, 딸의 생일을 맞아 샀던 케이크가 그의 생명을 부지해줄지 누가 알았겠는가. 관객들은 이정수가 터널 속에서 취할 수 있는 요소들을 미리 파악하고 상상할 수 있다.
 
여느 재난 영화 주인공이라고는 보기 힘들게 터널의 주인공인 정수는 어떤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상황을 일사천리로 극복해 나가는 일명 히어로형캐릭터가 아니다. 정수는 아내와 딸을 둔 평범한 가장일 뿐이다. 덕분에 관객은 영화에 쉽사리 몰입할 수 있으며, 정석이 아닌 구성으로 신선함마저 전한다.
 
이후의 앵글에 비친 시선은 더욱 특별하다. 김 감독은 재난 자체보다 터널 정수의 처절한 생존기와 터널 에서 그 상황을 바라보는 외부의 시선으로 나눠 이야기를 전개해간다. 정수를 연기하는 하정우는 아주 보통의 사람이 극한 상황에 처했을 때의 공포와 고립된 공간에서 갖가지 방법으로 생존하려 고군분투하는 모습에서 안쓰러운 연민과 동시에 짠한 웃음까지 불러일으킨다.
 
그의 직관적인 연기는 재난 상황에 대한 현실적인 접근을 더욱 부각시키기에 충분했다.
영화는 드라마틱한 내용을 줄이되, 계속해 새로 생겨나는 사건들로 지루한 타이밍을 없앴다.
 
터널 안과 밖을 넘나들며 한국 사회의 단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정수를 둘러싼 터널 밖의 카메라는 구조 메뉴얼의 부재로 우왕좌왕 시간을 허비하는 모습을 비추며 11초가 아까운 정수와 반대로 느리게 흘러가는 시간을 보여준다.
 
터널 밖의 세상은 생명이 아닌 재난 생존일 기록 달성 등 단독보도에 혈안이 된 언론, 속이 말이 아닌 정수의 아내 세현과 기념사진을 남기며 윗선 보고에 급급한 공무원, 그리고 별다른 성과 없이 시간이 흐르자 점점 정수에게 무관심해져가는 국민들의 반응까지 마치 우리의 현실을 투영하는 듯하다.
 
터널은 이 요소들을 활용해 한국 사회의 보기 싫은 단면을 직시하며, 우리 사회에 거울을 비춘다. 관객들은 생명의 존엄성이라는 당연한 가치가 당연하게 들리지 않는 현실에 탄식할 것이다. 또 시간이 지나자 재난 사건에 관심을 거두는 여론의 모습에서 자기반성을 할 계기도 제공한다.
 
“‘터널은 단순한 재난 영화가 아니라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사건이기도 하지만 이 사건을 둘러싼 세상에 대한 이야기이다라는 김 감독의 말처럼 터널은 단순히 재난 영화 블록버스터가 아닌 생명의 존엄이라는 아주 기본적인 가치를 우리 사회가 간과하고 있지는 않았는지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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