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권 독립’ 외치던 10만 경찰의 수상한 ‘침묵’
대형 이슈 발발·‘檢총장-警청장’ 특수관계설까지
2016-08-06 권녕찬 기자
[일요서울 | 권녕찬 기자] 정운호 게이트·홍만표 전 검사장·진경준 검사장·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까지 최근 검찰과 관련한 각종 비리가 터져 나오는 가운데 검찰 개혁에 대한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경찰은 검찰 개혁 방안 중 하나로 ‘검·경 수사권 조정’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그런데 수사권을 둘러싼 갈등은 박근혜 정부에서는 좀처럼 이슈화되지 않고 있다. 과거 정부에서 ‘수사권 독립’을 외쳤던 경찰이 박근혜 정권 이후에서는 침묵을 지키고 있다.
박근혜 정권은 초기에 검·경 수사권 조정 문제에 상당한 관심을 보였다. 2012년 박근혜 당시 대통령 후보는 수사권 조정을 공약으로 들고 나왔다. 박근혜 후보는 부분적인 경찰의 수사권 독립이 이뤄져야 한다는 의지를 보였다.
그는 “효율적이고 책임 있는 수사를 위해 검·경간 견제와 균형의 원리에 따른 합리적 역할 분담이 필요하다”며 “검찰과 경찰을 서로 감시·견제하는 관계로 재정립해 국민이 바라는 안정적인 치안시스템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또 “경찰 수사권이 확립되고 수사역량이 최대한 발휘되도록 노력하겠다”며 경찰에 힘을 실어주는 뉘앙스의 언급을 했다.
수사권 조정 자취 감춰
그러나 정부 출범 이후 검·경 수사권 조정 문제는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과거 역대 정부에서 검찰과 날카롭게 대립하던 경찰의 모습도 자취를 감췄다.
그 배경에 대해 한 고위공무원은 “경찰이 박근혜 정권 초기에 특수수사에 많은 신경을 썼다. 자신들의 능력을 증명함으로써 수사권 조정의 필요성을 이끌어내겠다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계속 실패하면서 수사권 조정은 요원한 일이 됐다”고 밝혔다. 또 2013년 초 국정원 대선 개입 수사를 벌이던 채동욱 당시 검찰총장이 혼외자 의혹으로 시끄러워지면서 수사권 조정 문제는 끼어들 틈이 없었다는 지적도 있다.
2014년 8월에는 강신명 경찰청장 내정자가 “경찰의 수사권 독립을 본인 임기 중 이루겠다”며 취임했다. 하지만 새로운 경찰청장 취임을 앞두고 있는 현 시점에서 경찰의 수사권 독립은 사실상 물 건너갔다. 2014년부터 시작된 세월호 사건, 메르스 사태 등 대형 이슈에 묻힌 측면도 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2015년 말 검찰 수장으로 임명된 김수남 총장과 강 청장 사이의 인연에 주목하기도 한다. 김수남 검찰총장은 대구 경북 출신, 강 청장은 경남 합천 출신으로 둘은 대구 청구고 선후배 사이다. 당시에도 김수남 대검찰청 차장이 내정된 것을 두고 강 청장 임기 내 수사권 조정은 어렵다고 보는 시각이 많았다.
한 경찰 관계자는 “강 청장이 지금껏 잡지 못한 수사권 조정 타이밍을 고교 선배를 상대로 들고 나올 수 있었겠느냐”며 “강 청장 스스로도 취임 이후 검찰과 최대한 부딪히지 않으려는 언행을 보여왔다”고 지적했다.
일부에서는 수사권 조정이 이슈화될 때마다 불거졌던 검·경의 정면충돌에 부담을 느끼고 경찰 수뇌부조차 소극적인 태도로 일관했다는 분석도 있다.
60년간 풀리지 않는 숙제
검·경 수사권 조정 논의는 검사가 막강한 수사권을 독점해 부작용이 크다는 지적에서 시작됐다. 현재 형사소송법에는 수사의 주체는 검사이며, 경찰은 검사의 지휘를 받는 보조기관으로 돼 있다. 검사는 수사지휘권·수사종결권·기소독점권 등 형사소송법상 모든 수사를 책임진다.
1955년 경찰의 기구독립을 골자로 한 법무부의 경찰법안 제출을 시작으로 논의된 수사권 조정 문제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1997년 대선 후보자 시절 경찰의 독립적인 수사권을 보장한다는 공약을 내세우면서 본격적으로 테이블에 올라왔다. 경찰에게 단순·경미 범죄에 한해 독자적인 수사권과 공소결정권을 부여하도록 관련법을 개정하겠다는 것이 요지였다. 그러나 검찰은 경찰에 독자적인 수사권을 보장하면 각종 비위나 인권침해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며 반발했고, 경찰의 자질과 수사 통제 필요성 등이 제기되며 경찰은 더 이상 논의를 확장시킬 수 없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 당선 이후 수사권 조정 문제가 다시 불거졌다. 2003년 1월 경찰청이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 사법경찰의 수사권 독립안을 공식 제출하면서 불을 붙였다. 또 2005년 취임한 허준영 당시 경찰청장은 사실상 검찰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하지만 수사권을 둘러싼 검·경의 입장이 첨예하게 맞서 합의에 실패했다. 또 경찰 수사권 독립을 강하게 밀어붙이던 허준영 경찰청장이 경찰의 과잉진압으로 시위 농민이 사망한 사건을 책임지고 사퇴하면서 논의가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죽었던 수사권 논의는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다시 거론됐다. 2010년 5월 ‘검·경 개혁 범정부 태스크포스’를 구성했다. 하지만 두 기관은 또 부딪쳤다. 2011년 6월 국회가 ‘경찰 수사개시권’을 명시한 형사소송법 개정안을 의결하자 김준규 당시 검찰총장이 사퇴하며 강하게 반발한 탓이다. 이에 정부는 ‘수사 개시는 경찰이 할 수 있지만, 주요 사건에 대한 내사를 진행할 때 검찰 통제를 받도록 한다’는 강제조정안을 마련함에 따라 경찰은 숙원이었던 ‘수사권 독립’에서 다시 멀어지게 됐다.
20대 국회는 경찰에 ‘적기’?
수사권 조정 문제가 20대 국회에서 진전을 이룰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대형 검찰 비리가 잇따라 터지면서 검찰 개혁에 대한 목소리가 커지고 있어서다. 게다가 이번 20대 국회에서 경찰 출신 국회의원은 모두 8명으로 역대 국회 중 가장 많다.
이들은 시기나 정도에 따른 차이를 보이긴 하지만 수사권 조정의 필요성에 대해선 이견이 없다. 경찰대 교수 출신인 더불어민주당 표창원 의원은 전·현직 검사가 연루된 사건에 대해 일정기간 검사의 수사지휘권을 제한하는 내용의 형사소송법 개정안을 추진 중이다. 지난달 11일 입법토론회를 열고 의견 수렴을 거쳤다.
표창원 의원은 “법치주의의 원칙상 누구도 자기 자신의 사건에 대해 심판자가 될 수 없음에도, 검사들은 검찰이 기소권과 수사권을 함께 독점하고 있는 현실로 인해 사실상 ‘셀프 수사’를 하고 있다”며 “최소한 경찰 수사단계에서라도 전·현직 검사에 대한 비리 수사가 충분히 이뤄지도록 보장해야 한다”고 밝혔다.
경찰서 수사과장 출신인 국민의당 권은희 의원도 “검찰이 가지고 있는 독점적인 권한을 나누는 문제”라며 “수사권 조정이 이뤄지거나 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가 신설될 수 있겠지만, ‘경찰의 수준이 부족해서 수사권을 내줄 수 없다’는 논리라면 통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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