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베 vs 메갈리아 전운 고조…여성혐오와 남성혐오 대립
메르스 사태로 촉발…티셔츠 문구로 갈등 최고조
2016-08-05 장휘경 기자
[일요서울|장휘경 기자] 남성과 여성이 서로 ‘혐오’하는 문화가 온라인 커뮤니티와 SNS를 통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남성은 여성을, 여성은 남성을 극도로 싫어하는 집단들이 서로를 향해 극단적인 언어를 써가며 갈등을 부추기고 있는 것. 특히 최근에는 여성 혐오에 대항하는 ‘여혐혐’(여성혐오를 혐오한다) 사이트 ‘메갈리아’가 논란의 중심에 서기도 했다.
남성 대 여성의 대결 구도를 첨예하게 만든 사건이 터졌다. ‘메갈리아4’라는 페이스북 계정이 신고 누적으로 삭제되던 중 메갈리아 측이 페이스북의 조치에 대해 소송을 걸기 위해 티셔츠를 판매하며 모금을 하고 있었다. 티셔츠에는 ‘GIRLS Do Not Need A PRINCE’라는 글이 적혀 있었는데, 넥슨 게임에 출연한 성우가 이 셔츠를 입고 찍은 사진을 SNS에 올린 것이 남성과 여성 간 갈등 폭발의 도화선이 됐다. 이 사진 공개 후 넥슨을 남성들이 신랄하게 공격하자 넥슨은 해당 성우가 맡은 캐릭터의 음성을 교체한다고 공지했다. 성우를 갈아치운 셈이다.
일베와 메갈리아, 그들은 누구인가
넥슨의 이 같은 조치에 여성들은 발끈했고 심지어 정치권까지 이에 가세했다. 정의당이 “기업이 개인의 정치적 의견을 이유로 직업 활동을 제약하는 것은 기업의 노동권 침해라는 논평을 발표했다. 그러나 정의당은 갑자기 논평을 철회했다. 남성 혐오 사이트인 메갈리아를 옹호한다는 비난이 일었기 때문. 이 같은 정의당의 오락가락하는 태도에 메갈리아를 비롯한 남성 혐오 사이트 회원들은 비난의 목소리를 높였다. 이에 남성 혐오 사이트와 여성 혐오 사이트 회원들이 서로를 격렬하게 비난하고 있다. 그리고 이들 양 측의 싸움은 위험 수위를 넘어서고 있는 상황이다.
일베는 일간베스트 저장소의 약칭으로 주로 정치, 유머 등을 다루고 있는 인터넷 커뮤니티이다. 2010년경부터 디시인사이드의 사용자들이 갈라져 나와 활동하게 된 것이 시초. 정치적 성향은 극우로 평가되고 있다.
일베에서 활동하고 있는 회원(주로 남성)은 약 5만여 명으로 추산되고 있지만 회원가입을 하지 않아도 활동의 제약을 크게 받지 않는 사이트의 특성상 실제 사용자는 이보다 더 많을 것으로 보인다. 동시 접속자는 평일 낮 기준으로 평균 2만 명 정도이며, 가장 사용자가 적은 늦은 새벽 시간대에도 1만 명 정도의 동시 접속자 수를 유지하고 있어 비교적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사이트다. 여성을 혐오하는 글들이 많이 올라오고 있어 ‘여혐’ 사이트라고 불리기도 한다.
메갈리아(Megalia)는 여성혐오에 대항하는 사이트로 일각에서는 ‘남혐’ 사이트로 부르고 있다. ‘메갈리아’라는 이름은 노르웨이 여성주의 소설 ‘이갈리아의 딸들’과 디시인사이드 내의 ‘메르스 갤러리’에서 따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베 등이 주도하는 여성혐오에 대해 문제의식을 가진 네티즌들이 여성혐오 프레임을 그대로 남성에게도 적용해 거꾸로 보여주는 ‘미러링(mirroring)’을 사회 운동 전략으로 삼고 있다.
‘여혐’ 대 ‘남혐’ 대결구도는 메르스 사태 때부터
일베의 ‘여혐’에 대해 본격적으로 대항하려는 세력이 나타난 것은 지난해 국내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메르스 사태 때부터다. 메르스 공포가 확산됐던 지난 해 5월 말, 홍콩에서 한국인 격리 대상자 중 2명의 여성이 격리 요구를 거부하자 일베를 비롯한 일부 사이트 게시판에 ‘김치녀(한국 여성을 비하하는 말)가 그렇지. 자기만 알아’라는 비방의 글들이 올라왔다. 그러나 이는 소통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오해였음이 드러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여성들을 계속적으로 비방하자 여성들이 발끈했고, 조직적인 대응을 하기 위해 메갈리아 사이트를 개설했다.
일베와 메갈리아의 싸움에 불을 지핀 것은 강남 화장실 여성 살해 사건. 한 여성이 화장실에서 남성에게 살해당하자 일부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사건 현장에서 추모행사를 열었는데, 이를 못마땅하게 여긴 일베 회원들이 추모를 비하하는 글들을 게시판에 올렸다. 이를 본 메갈리아 회원들도 가만있지 않았다. “한국 사회에 팽배한 여성 혐오를 없애자"며 반발한 것. 이들의 싸움은 사건이 발생한 지 70일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온라인상에서 설전을 벌이고 있다.
이어 발생한 것이 바로 한 성우의 티셔츠 사건. 남성을 비하하는 듯한 글귀를 본 남성들이 성우가 활동하고 있는 넥슨 게시판에 이를 비방하는 글들을 올리자 넥슨은 성우를 전격 교체했고, 이에 여성들이 잘못된 처사라며 극렬하게 반발했다. 또한 일부 남성들이 ‘Men don’t need a princess (남성은 공주를 원하지 않는다)’는 문구를 인쇄한 티셔츠를 만들어 메갈리아에 대항하자는 주장이 나오는 등 이들 간의 감정싸움은 통제가 불가능한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왜 싸우나…해결책은 없나
도대체 왜 이 지경이 되었을까? 사회학자 오찬호 박사는 그의 저서 ‘그 남자는 왜 이상해졌을까?’를 통해 한국 남성이 군대를 거치며 몸에 새긴 가부장제를 폭로하고, 여성 인권이 신장되는 현실을 견디지 못하는 그들의 마초성을 고발했다. 다시 말해, 세상이 아무리 변해도 남성이 여전히 모든 것을 책임지고 주도해야겠는데 여성들의 사회 진출이 점점 활발해지자 그 주도권을 상실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여성 혐오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오 박사는 “여자들 때문에 남자들이 과거보다 힘들어졌단 말인가?”라고 반문하면서 “확실한 건 남녀에게 다르게 부여된 권리의 간격이 좁아졌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가족 부양의 비용 자체가 아버지 세대의 경우와는 비교 자체가 되지 않는다. 그래서 분노한다면 그 화살을 여자가 아니라 마땅히 사회에 던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오 박사는 또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사회적으로 경쟁이 치열하고 노동 강도가 센 상황에서 자연스럽게 기업이 선호하는 사람은 강한 남성”이라고 전제하고 “이런 사회 구조 자체가 당장에 바뀌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이렇게 사회 구조가 최악이라손 치더라도, ‘지금의 남녀 차별은 어쩔 수 없는 일이야’하고 체념하고 있어서는 곤란하다. 최악의 사회 구조 속에서도 그 사회를 구성하는 개개인이 돌파구를 찾아야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일베의 한 회원은 “오 박사가 나름 날카롭게 분석한 것 같다”면서도 “갈등의 책임이 남성에게만 있다는 뉘앙스를 풍겨 씁쓸하다”고 말했다. 그는 “‘누구에게 책임이 있다’라고 하기보다는 남성은 여성을, 여성은 남성을 배려하는 자세를 가지는 것이 갈등을 푸는 열쇠가 되지 않겠느냐”고 아쉬움을 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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