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간첩 원정화 “내 딸 지키고 싶다”
“위법수사로 나와 내 딸의 미래 망가져”
[일요서울Ⅰ오두환 기자] 여간첩 원정화. 그녀의 이름에는 ‘간첩’이라는 단어가 꼬리표처럼 따라 붙는다. 2008년 8월 위장탈북한 여간첩으로 검거된 이후 8년이 지났다. 아직까지 많은 사람들은 그의 이름을 잊지 않고 있다. 지난해에도 그녀는 딸을 학대했다는 혐의로 경찰의 조사를 받았다. 하지만 그런 그녀가 이제는 “딸을 지키고 싶다”며 인터뷰를 자청했다.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을까.
간첩 활동한 엄마 때문에 딸은 거친 풍파 겪어
도움 필요한 아이들에게 작은 도움이라도 주고 싶다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원정화씨의 목소리에는 경계심이 가득했다. 그만큼 조심스러웠다. 원 씨와의 전화통화는 1년 4개월 만이었다. 지난해 3월 딸 학대 혐의로 경찰의 수사를 받게 됐을 당시 통화를 했던 것이 마지막이었다. 당시 원 씨는 기자의 전화나 문자조차 부담스러워했다. 그랬던 그녀가 신문사로 직접 전화를 걸어왔다. 딸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했다. 원 씨와의 인터뷰는 27일 밤 9경 군포시 산본동에 위치한 그녀의 아파트에서 진행됐다.
나에게는
사랑하는 딸이 있다
원정화씨에게는 15살된 딸 원하나(가명)양이 있다. 굴곡 많은 그녀의 인생에 유일한 피붙이다. 과거 간첩활동으로 검거됐을 당시에는 아이가 7살이었다. 원씨는 하나 양에 대해 “‘간첩’ 활동을 한 엄마를 둔 덕에 또래 아이들이 겪지 않을 거친 풍파를 겪은 아이다.”라고 말했다. 그녀와의 대화 속에서 제대로 된 가정을 꾸며주지 못한 미안함과 함께 자식을 사랑하는 부모의 마음이 느껴졌다.
인터뷰 당시 하나 양은 집에 없었다. 얼마 전 쉼터에 있던 딸을 친구와 함께 집으로 데려왔는데 인터뷰하기로 한 전날 갑자기 연락이 끊겼던 것이다. 원 씨에 따르면 쉼터에서 집으로 온 하나 양과 친구는 며칠 뒤 인근 모텔로 거처를 옮겼다. 물론 하나 양과 합의해 결정한 것이다.
현재 원 씨는 새로운 가정을 꾸리고 있다. 한족 출신의 남성과 한 집에 살고 있다. 하나양도 새 아버지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지만 요즘같이 무더운 날 20평도 채 안 되는 집에서 에어컨도 없이 여자 3명과 남자 1명이 살기에는 불편한 것이 한둘이 아니었다.
문제는 모텔로 거처를 옮기고 잘 지내던 하나 양이 갑자기 심경의 변화를 일으키고 연락을 끊은 것이다. 현재 하나 양은 2015년 10월에 있었던 사기미수사건으로 법원으로부터 10시간의 수강명령과 보호관찰 1년을 선고 받았다. 원 씨 또한 9시간 수강명령 처분을 받았다.
경찰의 잘못된 수사방식
우리 모녀에게 충격
사기미수라는 죄목은 15살 소녀에게 어울리지 않는 단어다. 하나양은 지난해 10월 또래 친구들과 함께 사기사건에 연루됐다. 도난신고된 신용카드로 물건을 사려다 미수에 그쳤다. 당시 수사 과정에서 하나 양은 마음에 큰 상처를 입었다.
하나 양은 사건 당시 동네 불량청소년으로 알려진 A양으로부터 신용카드를 건네받았다. A양은 하나 양에게 신용카드를 주며 금은방에서 물건을 사 오라고 시켰다. 물건을 사오면 소정의 금액을 대가로 준다는 말과 함께.
하나 양은 A양의 요구대로 사건 장소인 안양에 위치한 롯데백화점 범계점의 한 금은방에 들러 물건을 사기 위해 카드 결제를 시도했다. 하지만 이미 도난카드로 사용정지된 탓에 물건을 구매할 수가 없었다. 하나 양은 결국 빈손으로 와 카드를 A양에게 돌려주고 헤어졌다.
문제는 이후에 발생했다. 절도 신고를 받고 수사에 착수한 동안경찰서 담당형사는 CCTV화면을 확보했다. 하나 양의 모습이 담긴 사진이었다. 담당형사는 하나 양의 모습이 담긴 사진을 망원(정보원)에게 보냈다. 탐문수사를 위해서였다. 또 ‘안양대신말전해드립니다(이하 안대말)’라는 페이스북에도 업로드를 요청했다. ‘안대말’은 페이스북 인기 지역커뮤니티로 ‘좋아요’ 숫자만 34,000명이 넘는다. 그런데 파급효과가 너무 컸다. 단 7시간만 게시됐을 뿐인데 하나 양 친구들을 비롯해 많은 사람들이 하나 양 사진을 본 것이다. 댓글에는 각종 욕설이 난무했다. 하나양은 학교에 가기가 두려울 정도였다. 하나 양은 군포경찰서에 자수를 했지만 충격이 너무 컸다.
딸 사진 페이스북 공개해
범죄자 취급
하나 양은 결국 학교를 자퇴했다. 비록 이름이나 개인 정보 등이 같이 올라가 있던 것은 아니지만 얼굴이 나온 사진이 올라가다 보니 여기저기서 하나 양을 알아보는 사람이 많았다. 원정화씨는 “형을 확정받기 전에 이미 범죄자로 확정돼 CCTV 속 사진이 유출됐으니 아이가 어떻게 학교를 다닐 수 있었겠냐?”며 울분을 터뜨렸다.
또 “내 딸이 도난카드로 물건을 사려고 했던 점은 인정한다. 하지만 그것은 A양의 강요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비록 A양이 주겠다는 돈 때문에 흔들린 점도 있었지만 사진 공개는 어린 딸에게는 너무나 가혹한 일이었다”고 말했다.
또 다른 문제는 경찰이 수사 종료 후 원 씨와 하나 양에게 수사결과에 대해 제대로 통보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담당경찰과 말이 엇갈리기는 하지만 수사결과를 제대로 통보 받지 못한 상황에서 원 씨 모녀는 법원으로부터 소환장을 받았다고 했다.
결국 원 씨는 안양동안경찰서 청문감사실에 민원을 제기했다. 하지만 돌아온 답변은 캡쳐사진을 페이스북에 무단 게재한 것에 대해 “수사목적을 위한 정당행위로 위법성이 인정되지 않아 ‘죄 안됨’으로 내사종결했다”는 것이었다. 사건 진행사항에 대해 제대로 전달되지 않은 점에 대해서는 “피의자에 대한 사건진행상황 통지지침을 이행치 않아 결과 통지를 하지 않은 점은 인정되어 특별교양 조치했다.”고 전달 받았다.
수사기관, 언론 등에
너무나 많은 피해 입어
원정화씨가 딸의 피해사실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유는 더 이상 수사기관으로부터 피해를 받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 때문이다. 간첩이라는 이유로 그녀는 그동안 수사기관, 언론, 일반인들로부터 많은 수모를 겪어야 했다. 처음에는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 생각을 했지만 하루하루 커가는 딸을 보니 ‘이건 아니다’라는 생각이 든 것이다.
지난해 3월 원 씨는 딸을 학대한 혐의로 군포경찰서의 수사를 받았다. 당시 사건을 보도한 기사에 따르면 원 씨는 밤 늦은 시각 인터뷰가 이뤄진 군포시 자신의 집에서 술에 취해 딸 하나 양을 향해 유리컵을 던지고 욕을 하며 “같이 죽자”고 30여분간 공포심을 유발한 혐의를 받았다.
당시 하나 양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긴급 임시보호조치를 발동, 우울증을 앓고 있는 원씨를 정신과병원에서 입원치료 받게 하고 하나 양을 임시보호시설에 위탁했다.
기사에서는 원 씨가 사건에 앞서 자신이 일하던 군포시 한 식당에서 사장 B씨와 말다툼을 하다가 B씨를 폭행한 혐의(상해)로 입건됐고 같은 달 경찰로부터 이같은 사실을 통지받고 격분해 딸에게 화풀이를 한 것으로 조사됐다고 했다.
당시 사건에 대해 원씨는 “술을 마시지 않았다”며 “유리컵을 던진 것도 딸을 향해 던진 것이 아니라 안방에 던졌다”고 말했다. 다만 식당 사장인 B씨와의 말다툼에 너무 기분이 상해 흥분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당시 기사들에는 원씨가 왜 B씨와 싸웠는지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었다.
사건 당시 원 씨는 B씨 식당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B씨는 평소 원 씨에 대해 친절하게 대해줬었는데 사건 당일 갑자기 이것저것 트집을 잡다 일을 그만두고 나가라고 했다고 한다.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해 하던 원 씨는 얼마 전 식당에 들른 손님들이 ‘간첩’이었던 자신을 알아본 이후 B씨의 행동이 변했다는 것을 알고 당일 일당만 받고 나가려고 했으나 B씨는 원 씨의 말을 무시했다. 그러다 말싸움이 됐고 B씨는 일당 6만원을 원 씨 면전에 집어 던졌다. 원 씨는 바로 앞에서 그런 일이 있자 본능적으로 손으로 제지를 했고 그러다 B씨가 쓰고 있던 안경이 바닥에 떨어진 것이다.
원 씨는 당시 상황을 설명하며 눈물을 흘렸다. 간첩이라는 이유로 변변한 직업조차 갖기 힘들어 식당을 전전해야 하는 상황에서 이유도 모르고 쫓겨나는 상황이 어땠을까. 당시 원 씨의 하루 수입은 6만 원이었다. 식당에 나가 몇 시간씩 홀서빙을 하고 설거지를 해야 겨우 벌 수 있는 돈이다. 이마저도 조선족이라고 떼이는 경우가 많다. 간첩 출신이다 보니 처음부터 신분을 떳떳이 밝히지 못해 조선족이라고 하는 경우가 많았고 돈을 떼여도 경찰서에 신고하는 게 쉽지 않다.
정신병원 입원 아니라
강제로 끌려갔다
사건당시 기사를 살펴보면 원씨는 우울증으로 정신병원 입원치료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정신병원 이야기가 나오자 그녀는 “할 말이 많다”고 했다. 답답함에 눈물도 글썽였다.
원 씨는 “정신병원에 입원하던 날은 새로운 식당에 면접을 보러 가는 날이었다.”며 “그런데 당시 담당 형사들이 밥을 사주겠다며 만나자고 연락이 와 면접을 보러 가기 전에 식사를 하기 위해 시내 한 식당으로 나갔다”고 말했다.
평소와 다르게 밥을 먹는 동안에도 아무 말이 없던 형사들이 “면접이 몇 시냐? 시간이 되면 커피도 한잔 하자”고 해 커피를 마시러 이동을 했고 그곳에서 원 씨는 “정신병원 관계자들에 의해 병원으로 끌려갔다.”고 말했다. 기사에서는 단순한 입원으로 보도 됐지만 사실은 강제로 끌려간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원 씨는 정신병원 원장의 도움으로 법원 판결보다 빠르게 병원을 나올 수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당시 담당 형사들에게 들었던 배신감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딸에게 미안함과
책임감 느껴
2008년 ‘간첩’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세상에 알려진 뒤 8년이 시간이 지났다. 하지만 원씨의 삶은 그때와 큰 차이가 없다. 8년의 시간이 흘렀지만 사회에 적응하는 것도 쉽지 않다. 여전히 ‘간첩’이라는 꼬리표는 그녀를 따라 다닌다. 아마 그 꼬리표를 영원히 뗄 수 없을 수도 있다.
7살이던 어린 딸은 모진 풍파를 온몸으로 맞고 있다. 또래가 짊어져야 하는 짐들과 비교하면 너무나 크다. 그래서 엄마로서 더 미안하다. 하루하루 성장해 가는 딸을 보면서 원정화씨는 “미안함과 함께 커다란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 그래서 딸을 위해 양지로 나설수 밖에 없다.”고 전했다.
원 씨는 “주변에서는 제발 가만히 좀 있으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가만히 있다 보니 사실과 다른 말들이 너무나 많이 나돌고 결국 피해보는 사람은 자신과 딸뿐이었다.”고 말했다.
원정화씨와 연락이 끊겼던 딸 하나양은 28일 집에 들어왔다. 쉼터에서 같이 나와 집에서 지내던 친구와 함께 엄마 품으로 돌아왔다. 비록 학교를 자퇴했지만 하나양의 꿈은 경찰이 되는 것이라고 한다. 경찰이 되는 길도 쉬은 길은 아니지만 어린나이에 또래들이 겪지 못할 많은 일들을 겪은 만큼 하나양의 꿈이 꼭 이뤄지기를 응원한다. 원 씨도 “딸을 키우며 새로운 결심을 하고 있다. 딸이 있었던 쉼터를 보니 도움을 필요로 하는 아이들이 많아 작게라도 도움을 주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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