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부조작' 이태양, 저무는 ‘석양’이 되다
급증하는 불법 스포츠 도박 사이트가 승부조작의 연결고리
[일요서울|장휘경 기자] 또 불법 스포츠 도박을 매개로 한 승부조작이 터졌다. 프로야구 NC 다이노스 투수 이태양(23)이 승부조작 혐의로 검찰에 불구속 기소됐다. 4년 전 승부조작 사건이 터진 이후 프로야구계가 다시 한번 승부조작으로 위기에 봉착했다. 올해를 ‘클린 베이스볼’ 원년으로 선포한 KBO(한국야구위원회)는 이번 사건으로 치명적인 내상을 입게 됐다.
지난 2012년 검찰은 프로야구 LG 트윈스 소속이었던 투수 박현준과 김성현을 2011 시즌 경기에서 승부 조작에 가담한 혐의로 검거했다. 이들은 브로커로부터 돈을 받고 초구에 볼 또는 스트라이크를 던지거나 볼넷을 내주는 등의 방식으로 승부조작을 해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KBO 영구 실격이라는 징계도 내려졌다.
2013년에는 프로농구 강동희 동부 감독이 4경기에서 브로커들에 4차례에 걸쳐 4700만 원을 받고 주전 대신 후보 선수를 기용하는 방식으로 승부 조작한 혐의를 받아 기소됐다. 강 감독은 징역 10월에 추징금 4700만 원을 선고 받았다.
지난해에도 전창진 KGC 인삼공사 감독이 불법도박과 승부조작 혐의(아직 확정되지 않음)를 받고 농구계에서 퇴출되는 사건이 터졌다. 비슷한 시기 국가대표가 포함된 10여명의 프로농구 선수들이 무더기로 불법 스포츠도박을 한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았다.
이번 이태양 선수는 지난해 특정 경기에서 상대팀 선수에게 일부러 포볼을 주는 등 브로커와 짠 대로 볼 배합을 하는 수법을 통해 경기를 조작한 뒤 브로커로부터 수천만 원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잊을 만하면 승부 조작 등 불법 행위에 적발되고 있는 상황의 배경에는 불법 스포츠 도박 사이트가 도사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시장의 규모는 경찰의 대대적인 단속에도 불구하고 이를 비웃듯 매년 급성장하고 있다. 짧은 기간에 큰 수익을 내기 위해 인위적인 승부조작을 자행하는 브로커와 선수들이 포함된 사례가 자주 일어나고 있는 것.
점점 증가하는 불법 스포츠 도박 시장의 규모
불법 스포츠 도박 사이트 시장의 매출 규모는 지난해 7974억 원으로, 전년(4600억 원) 대비 73.3% 상승했다. 2013년 매출 규모가 783억 원이었던 점을 고려하면 2년 사이 10배 이상 증가한 것. 이는 국민체육진흥공단이 수사 의뢰한 불법 베팅 사이트들의 매출을 합한 것으로, 대다수의 불법 사이트가 음지에서 성행하는 점을 고려하면 그 규모는 더욱 클 것으로 추정된다.
불법 스포츠 도박 사이트에 사람들이 몰리는 것은 이들 사이트가 다양한 방식의 상품을 출시하고 있는 데다 배당률이 합법 스포츠 도박보다 매우 높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국내 스포츠 도박 사업에 대한 규제가 많은 것도 불법으로 몰리는 이유 중 하나. 합법 스포츠 토토의 게임당 구매 한도는 1인당 10만 원에 불과하지만, 불법 도박 사이트에서는 100만 원까지(제한이 없는 곳도 있음) 참여할 수 있다. 환급률 역시 스포츠 토토의 50%, 프로토가 50~70%으로 제한되는 반면, 불법 사이트에서는 베팅금의 90%까지 돌려받을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합법적으로 도박 사이트에 투자하려던 투자자들도 불법 도박 사이트 개설에 눈을 돌릴 수밖에 없다.
투자사의 한 관계자는 “합법적인 도박 사이트라고 할지라도 자칫 도박 사이트에 투자했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기 때문에 대부분 기관들이 투자를 꺼린다”며 “게다가 정부 또한 도박 사이트에 대한 단속 의지가 강하기 때문에 만약 도박 사이트들이 온라인 사행성을 부추긴다는 판단을 할 경우 이에 대한 규제 또한 강화될 것이라는 우려를 하지 않을 수 없다”고 토로했다.
국민체육진흥공단의 한 관계자 역시 “합법적인 사행산업 시장이 경쟁력이 없기 때문에 투자자나 베팅하려는 사람들이 오히려 불법 시장에 매력을 느낄 수 있다고 본다”며 “그렇기 때문에 불법 도박에 대한 단속은 더욱 강화하면서 장기적으로는 합법적인 시장의 비율을 점차 높이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한 “스포츠 도박을 생계수단으로 하지 않고 하나의 게임으로 즐기려는 분위기 조성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불법 스포츠 도박 사이트의 경우 가짜 명의의 이른바 ‘대포통장’을 통해 참가금액을 끌어모은 뒤 배당금 지급 없이 사이트를 폐쇄하고 잠적하는 사례가 많아 참가자들이 피해를 입을 가능성이 매우 높아 이에 대한 당국의 대책 마련이 시급한 실정이다.
경찰이 불법 스포츠 도박을 포함 인터넷 도박과 사실상의 ‘전쟁’을 선포하면서 정부차원의 ‘불법 도박’ 근절을 위한 행보를 본격화한 뒤 나름대로 실적을 올렸지만 증가하는 불법 스포츠 도박 범죄 행위를 막기에는 역부족이다.
운동선수들은 왜 도박에 쉽게 빠질까
운동선수들이 쉽게 도박에 빠지는 이유는 승부에 고도로 집중한 이후 찾아오는 공허함과 허탈감 때문이다. 스피드스케이팅 국가대표팀 감독을 역임한 제갈성렬 씨는 “경기를 마치게 되면 마약을 하고 싶을 정도로 허무한 마음이 든다”며 “이런 선수들이 마음의 안정을 찾기 위해 도박을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엘리트 선수들만 키우는 시스템도 도박에 대한 유혹을 키우는 한 부분. 외부와 단절된 폐쇄적 환경에서는 운동에만 전념하게 되니 선수들이 정상적인 교육을 받을 권리는 사실상 박탈된다. 따라서 운동이 끝나도 합숙이라는 제약에 막혀 자유로운 여가를 즐기기 어렵다.
국가대표 출신의 한 선수는 “합숙소에서 생활하다 보면 시간을 보내기 위해 가장 먼저 접하는 게 고스톱이나 포커 같은 카드게임”이라며 그렇게 카드게임에 익숙해지면 다음에는 자연스럽게 도박으로 간다”고 털어놓았다.
특히 이런 환경에서 자란 선수들이 갑자기 많은 돈을 벌면 더 큰 도박에 빠질 위험이 커진다.
허용진 정신과 의사는 “사실 도박에 빠진 선수들도 따지고 보면 피해자일 수 있다”면서 “개인적인 일탈로 몰아가기보다는 잘못된 관행과 환경을 바꾸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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