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과 이해찬, 그리고 친노의 분화
드디어 등판했다. 설왕설래만 이어졌던 ‘친노계 후보’가 모습을 드러낸 순간이다.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 후보등록(7월27일~28일) 일주일을 앞두고 김상곤 전 경기교육감이 도전장을 내밀었다. 김 전 교육감은 문재인 대표 시절 당 혁신위원장과 인재영입위원장을 지낸 범친노계 인사다. 당 안팎의 반감에 ‘강 건너 불구경’ 할 것 같던 친노가 결국 ‘원외인사’ 김상곤을 택했다는 분석이다.
더욱이 친노계 좌장 이해찬 의원과 가깝다는 점으로막후에서 김상곤을 움직일 것이란 관측도 힘을 얻고 있다. 다만, 친문(親文) 인사들이 추미애 의원과 송영길 의원 측을 돕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친노계 분화 양상도 눈에 띈다. 문재인 전 대표를 위시한 친문과 이해찬 의원을 중심으로 한 일부 친노가 복잡다단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다.
- 김상곤의 등판과 ‘친노계 좌장’ 이해찬의 역할
- 김종인 잡으러 온 김상곤… “김종인式 우경화 더 이상 안 돼”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에 변수가 생겼다. 추미애·송영길 의원 간 양자구도가 예견됐던 당권 경쟁에 김상곤 전 혁신위원장이 막판 도전장을 내밈으로써 ‘3파전 구도’가 형성됐다. 여기에 비주류 대표격으로 이종걸 의원까지 출마의사를 굳힌 것으로 확인되면서 친노와 비노 그리고 중간계 간 혈전을 예고하고 있다.
‘싱거운 경선’이 점쳐졌던 8·27전대에서 가장 큰 변수는 친노계 낙점 후보가 누구냐는 것이었다. 당 안팎의 반감에도 불구하고 친노진영은 여전히 당내 최대 계파를 자랑한다. 122명(정세균 국회의장 제외) 가운데 70여명이 친노로 분류되는 만큼 이들의 조직적 선택이 당권 향배에 결정적인 영향을 줄 것으로 관측돼 왔다.
문재인 전 대표는 논란을 피하기 위해 전당대회와 최대한 거리를 뒀다. 자칫 ‘문심(文心)’ 논란이 일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그렇다고 친노가 움직이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당 핵심 관계자는 “전당대회를 앞두고 물밑에서 친노계 움직임이 활발하다”고 귀띔했다. 드러내지 않았을 뿐이다. 그런 점에서 ‘범친노계’ 김상곤 전 위원장의 등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DJ의 딸’ 추미애와 ‘범친노’ 김상곤
더민주 전당대회는 그간 문 전 대표 측근들이 추미애 의원을 도우면서 무게추가 추 의원에게 쏠리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많았다. 문 전 대표 시절 사무총장을 지낸 최재성 전 의원과 ‘문재인 호위무사’ 진성준 전 의원 등이 추 의원을 적극 돕고 있다. 여기에 문 전 대표 권유로 정계에 입문한 표창원 의원과 양향자 광주 서구을 지역위원장도 추 의원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이 때문에 ‘친노 표심은 추미애’라는 말까지 나돌았다. 추 의원 측 한 인사는 “친노 진영에서 상당수 돕고 있다”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하지만 상황은 급반전했다. ‘진짜 범친노’ 김상곤 전 위원장이 장고 끝에 등판했다. 김 전 위원장은 문 전 대표 시절 혁신위원장과 인재영입위원장을 지내는 등 범친노계로 분류된다. 더민주 핵심 관계자는 “송영길 의원과 추미애 의원 모두 친노와는 결이 다르다”며 “친노 측이 조직적으로 김 전 위원장을 지원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다만 “대놓고 하진 않을 것”이라며 “막후에서 충분히 지지가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친노 패권주의’ 논란에 휩싸일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김상곤의 막후, 그리고 이해찬
김 전 위원장은 당내 세가 없다. 혁신위원장 시절 친노의 힘을 빌려 혁신안을 내놓은 게 전부다. 그마저도 흐지부지 사라졌고, 인재영입도 비상대책위원회 체제가 들어서면서 힘을 잃었다. 뒷받침할 세력이 전혀 없었던 탓이다. 그런 그가 당권에 도전했다. 지지세력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것이 정치권의 대체적 관측이다.
더민주 한 관계자는 “당내 기반이 없다. 혁신위원장 때나 인재영입위원장 때 제대로 일을 못한 것도 이 때문”이라며 “그런 점에서 김 전 위원장을 영입한 친노 측에서 미안한 감정이 있는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다. ‘마음의 부채’가 있다는 얘기다.
정치권 안팎에선 김 전 위원장 막후로 이해찬 의원을 유력하게 점치고 있다. 김 전 위원장을 정계로 이끈 이도 이 의원이다. 두 사람 간 관계는 더민주 내에서도 잘 알려져 있다. 탈당 뒤 복당을 기다리고 있는 이 의원은 당내 최고의 전략가이자 명실공히 친노계 좌장이다. 친문과는 별개로 그를 따르는 친노계 인사 또한 적지 않다.
더민주 핵심 관계자는 “비록 탈당했지만 당내 이 의원의 영향력은 상당하다”며 “그가 만약 김 전 위원장을 지원한다면 판세는 또 다른 반전을 기대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인사 역시 “김 전 위원장이 등판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른 사람이 이해찬 의원이었다”며 “막후에서 김 전 위원장을 지원할 가능성이 크다”고 전했다.
혁신위원장 시절부터 김 전 위원장 주변에선 ‘차기 당권은 김상곤’이란 말이 많았다. 더민주 한 관계자는 “실제 그런 얘기들이 있던 것이 사실”이라며 “전부터 약속이 있었을 수도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최고의 전략가인 이 의원이 김 전 위원장 뒤에 있는 구상도 충분히 그려봄직하다”고 언급했다.
이해찬과 김상곤 ‘공동의 적’
김 전 위원장은 ‘강경 혁신파’로 잘 알려져 있다.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도입 찬성 등 김종인식 우경화에 대한 당내 불만이 적지 않은 상황에서 또 다른 강경파 ‘김상곤 카드’에 정치권이 주목하는 것도 당 노선에 적잖은 변화를 불러올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정치권 한 관계자는 “김종인 체제 들어서면서 당이 우측으로 쏠린 측면이 크다”며 “책임 당원, 특히 호남에서 보면 당의 이러한 모습이 불만스러울 수 있다”고 했다. 더욱이 김 전 위원장은 광주 출신이란 점에서 호남에서의 지지 가능성이 높다. 이에 대해 비주류 측 한 인사는 “친노와 호남을 아우를 수 있다는 점에서 최고의 카드”라고 경계심을 드러냈다.
더민주 내에서 김종인 대표는 이념적으로 우측 끝 편에 위치해 있다. 김 전 위원장이나 친노 진영과는 정치적 이념에서 큰 차이를 보일 수밖에 없다. 여기에 김 전 위원장과 김 대표는 껄끄러운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4·13총선을 앞두고 광주 북구갑에 김상곤 전략공천설이 나돌았을 당시 김 대표는 “친노라는 딱지가 붙어서 광주에서 쉽지 않다. 다른 곳은 몰라도 광주는 결코 안 된다”며 ‘김상곤 전략공천’에 강하게 반대했다.
김 대표는 또 이해찬 의원을 공천 배제함으로써 적잖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이 의원 측의 해명 요구에 김 대표는 그저 “정무적 판단”이라고만 답했다. 이후 이 의원은 탈당을 선언했고 무소속으로 당선됐다. 김종인 체제가 유지되는 지금까지도 그의 복당은 이뤄지지 않았다. 이 의원은 지난 13일 한 강연에서 자신의 복당과 관련해 “더민주에 새 지도부가 들어서면 9월에 복당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결국, 김 대표는 이 의원과 김 전 위원장 ‘공동의 적’인 셈이다.
친노, 그리고 친문의 배타성
2002년 참여정부 출범 이후 2012년 대선까지 견고하게 유지됐던 친노 진영이 차기 대선을 앞두고 조금씩 분화되는 모습도 눈에 띄는 대목이다. 일각에선 문 전 대표를 중심으로 한 친문이 친노와 별개로 움직이면서 이 같은 현상이 두드러졌다고 진단한다. 4·13총선 당시 문 전 대표가 영입한 초선의원 15명을 중심으로 결성된 ‘더벤져스(더민주+어벤져스)’ 모임도 마찬가지다.
문제는 친노 중에서도 비문(非文)이 있다는 데 있다. 당내 넓게 퍼져 있는 계파답게 이들은 다양한 정치적 스펙트럼을 자랑한다. 친문재인, 친안희정, 친이해찬 등이 대표적이다. 친이해찬 그룹은 대선후보 중심이 아닌 정무적 판단을 중시한다는 점에서 앞서 그룹과는 차이를 보인다. 어디든 선택이 가능하다는 의미다.
더민주 한 관계자는 “이해찬 의원은 실용적인 사람이다. 누가 대권과 가까운지 판단하고 전략을 짤 사람”이라며 “그런 점에서 반드시 문 전 대표가 아닌 누군가와도 손을 잡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문 전 대표를 중심으로 한 친문 진영은 이해찬 공천 배제 당시 어떤 언급도 하지 않았다. 이 의원이 이 때문에 문 전 대표 등 일부 친노계 인사에 적잖이 서운했다는 후문이다. 더욱이 김종인 대표는 “이해찬 공천 배제 결정 전날 문 전 대표와 통화했다”고 밝혔고, 친문이자 당 혁신위원을 지낸 최인호 의원(부산 사하갑)은 ‘이해찬 불출마’를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자청했다.
친노계 핵심 관계자는 “친노 진영은 현재 각개약진”이라고 했다. 또 “자가발전 형태로 가고 있다”며 “친노 전체를 하나로 묶어 보는 것은 이제 무의미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친노가 양분되는 현상과 관련해 “문 전 대표 시절 참모들이 이해찬 의원에 대해 ‘시니어’란 인식을 보이기는 했으나 이 의원을 거스를 순 없다”며 이를 강하게 반박했다. 그러면서도 “이 의원이 공천 배제됐을 당시 문 전 대표 측이 이를 문제 삼지 않은 점은 이 의원 입장에서 보면 분명 서운함이 컸을 것”이라며 “그런 과정을 겪으면서 생각도 많았을 것”이라고 전했다.
<정유담 언론인>